동해에 뜬 '대왕고래'…과학자들이 말하는 영일만 유전 개발
동해 심해에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판단된다." 여름의 시작부터 대한민국은 뜨겁게 술렁였다.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을 통해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한다고 발표한 직후 관련 기업의 주가는 급등하고 기사가 수백 건 쏟아졌다.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 이슈의 출발점은 분명 과학이다. 그러나 이후 불거진 여러 논란에는 과학이 쏙 빠져있다. 빈자리를 채워 넣기 위해 관련 분야를 수십 년간 연구해 온 연구자 5인을 만났다.
동해에 대왕고래가 떴다. 윤석열 대통령은 6월 3일 국정브리핑에서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가 나왔다"면서 "지금부터는 실제 석유와 가스가 존재하는지 실제 매장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탐사 시추단계로 넘어갈 차례"라고 발표했다. 영일만 앞바다의 개발 후보 지역에는 '대왕고래'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왕고래 후보지는 영일만에서 38~100km 떨어진 해역이다. 이곳은 깊이 1km 이상의 심해로 아직까지 한반도 인근 해역에선 심해 석유·가스 시추에 성공한 적이 없다. 정부는 성공 가능성을 강조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 기업에 물리 탐사 심층 분석을 맡겼는데 대왕고래 후보지에는 140억 배럴(약 2조 2258억 리터)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거다.
윤 대통령은 "이는 심해 광구로는 금세기 최대 석유 개발 사업으로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110억 배럴보다도 더 많은 탐사 자원량"이라고 말했다.
이날 브리핑에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실제로 탐사 시추에 들어가 어느 정도 규모의 매장이 돼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올해 12월부터 실질적인 탐사가 시작될 수 있다고 보고 있고 내년 상반기에는(탐사 시추)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왕고래 후보지에 실제로 석유나 가스가 매장돼 있다면 2035년부터는 실제로 상업적인 시추가 시작될 거라는게 정부의 설명이다.
● 체크포인트 1. 원래 한국은 '기름 한 방울 안 나오는 나라'가 아니다
'기름 한 방울 안 나온다'던 한국에 석유나 가스가 대량 매장돼 있을 거란 정부의 발표 이후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국내 에너지 자원 및 해양퇴적학 전문가들은 모두 "동해 심해에 석유나 가스가 묻혀 있을 거란 발표가 그리 새롭지는 않다"며 담담했다.
실제로 한국은 2021년 말까지 세계 95번째 산유국이었다. 울산 남동쪽 58km 지점의 '동해-1 가스전'에서 2004년부터 가스가 고갈된 2021년 말까지 석유와 천연가스를 상업적으로 생산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대왕고래 후보지는 심해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유전과 다르다.
이근상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는 7월 5일 과학동아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석유는 과거 얕은 바다에 살던 생물이 죽어 화석이 된 것이므로 그동안 석유 탐사를 할 때는 주로 수심 200m 내외의 대륙붕 지역에 집중했다"면서 "그러나 지각변동 과정에서 대륙붕에 있던 석유가 심해 땅속으로 옮겨가는 등 심해에서도 석유가 발견될 가능성이 제시됐고 1970년대 유럽 대륙 북쪽의 북해 유전을 필두로 본격적으로 심해 석유 개발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유가가 상승하는 가운데 비교적 채굴이 쉽던 대륙붕의 유전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점차 심해나 극지방처럼 과거에 탐사하지 않았던 곳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 현재 전세계 트렌드다. 한국도 그동안 2012년 '주작' 후보지를 비롯해 2015년 '홍게' 2021년 '방어'에 이르기까지 심해 석유·가스전 후보지 총 세 곳에서 탐사 시추를 진행했다.
그러나 세 후보지 모두 고배를 마셔야 했다. 지난 7월 서울대에서 만난 최종근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주작 후보지의 경우 석유가 매장돼 있을 만한 구조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고 홍게 후보지에는 천연가스가 아닌 이산화탄소가 매장돼 있어 실제 개발로 이어지지 못했다"면서 "방어 후보지는 지층 내에 이상 고압대가 발견돼 시추를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 체크포인트 2. 탐사 시추 성공률 '20%'의 의미
산업통상자원부의 자료에 따르면 대왕고래 후보지의 탐사 시추 성공률은 20%다. 동전을 던질 때 한 번 앞면이 나왔다고 다음번엔 반드시 뒷면이 나올 거라고 장담할 순 없다. 탐사 시추도 마찬가지다. 20% 확률을 시추공 5개를 뚫을 때 한 번은 반드시 성공한다고 해석해선 안된다. 모든 시추공에서 석유나 가스가 발견되지 않을 가능성도 여전히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20%라는 숫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20%는 새로운 지역을 대상으로 탐사 시추를 진행할 때 '보통의 리스크'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수치"라고 했다.
신규 유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시추 성공률을 해석하는 데 활용하는 '오티스-슈나이더만 척도'를 봐도 그렇다. 이 척도에선 시추 성공률이 0~5% 일 때는 아주 높은 리스크, 5~12.5%일 때는 높은 리스크, 12.5~25%일 때는 보통의 리스크, 25%~50%일 때는 낮은 리스크, 50%가 넘으면 매우 낮은 리스크로 구분한다.
이 교수는 "통상 탐사 시추 성공률 25% 안팎을 유망한 후보지의 전형적인 성공률로 본다"고 말했다. 20% 성공률은 석유나 가스가 발견되지 않을 리스크가 크게 높지도 낮지도 않다는 뜻이다. 다만 탐사 시추 성공률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6월 10일 공개한 카드뉴스에서 "성공률 20%는 통상적인 석유탐사 성공률에 비해 양호한 확률"이라면서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탐사 성공률은 16%였다"고 했다.
하지만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석유·가스전 개발 분야는 불확실성이 큰 분야라 탐사 시추 성공률이 5%더라도 대량 부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시추를 하기도 하고 성공률이 30%더라도 예상되는 자원량이 적으면 시추를 안 할 수도 있다"면서 "선택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지난 7월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난 최경식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역시 "탐사 시추 성공률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되는 분야라 어떤 정해진 공식이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가이아나 광구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거기가 16%이고 우리가 20%이니 좋다고 판단하는 건 오해의 여지가 많은 판단이에요. 탐사 시추 성공률이란 개념과 실제 상업 시추 가능성이란 개념도 다릅니다. 탐사 시추 결과 석유나 가스가 확인됐다고 하더라도 심해 시추의 경제성을 고려해 실제 개발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 체크포인트 3. 탐사 시추, 성공하더라도 시작일 뿐
심해 시추는 특히나 더 철저한 경제성 평가가 필요하다. 시추에 필요한 비용이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최종근 교수는 "일단 바다 심도가 깊어서 고사양의 시추선을 써야 한다"면서 "시추선을 빌리는 비용인 용선료가 하루에 55만 달러(약 7억 5880만 원)가 넘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시추 과정도 복잡하다. 망망대해 위 움직이는 배 위에서 시추 파이프를 내린다. 심해저까지 1km, 그다음 석유가 묻혀있는 지층까지는 보통 2km 정도 더 파야 한다. 이때 시추공의 직경은 불과 20~30cm다. 시추 파이프 아래엔 시추 비트가 붙어 있다. 이 시추 비트가 회전하며 암반을 '갈아' 지층에 구멍을 낸다. 이때 발생하는 암석 파편은 시추액을 통해 빼낸다.
최경식 교수는 "바다 표면과 아래엔 서로 다른 해류가 흐른다"면서 "시추 파이프가 해류의 움직임에 의해 파손되지도 않고 정밀하게 위치를 조절할 수 있어야 안정적으로 사고 없이 시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해의 해양학적 조건이 대륙붕과는 비교가 안 되는 난이도를 갖고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심해 탐사 시추의 높은 난도를 극복하고 성공률 20%의 벽을 넘어 석유나 가스가 발견되면 다음 단계는 뭘까. 임종세 해양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다음은 평가 작업이 진행된다"면서 "기술적인 평가와 경제성 평가가 종합적으로 이뤄지고 이를 통해 평가된 매장량을 바탕으로 개발 계획을 수립한다"고 설명했다.
개발 계획이 승인되면 생산 시설을 설계해 설치한 다음 시험 생산을 거쳐 상업적인 생산이 진행된다. 탐사 시추를 앞둔 지금은 그야말로 시작에 불과하다. 시작 단계에서 벌써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대왕고래 후보지를 두고 전문가들은 "부담스럽기도 의아하기도 하다"고 말한다. 최경식 교수는 2021년 방어 후보지 탐사 시추를 예로 들며 설명했다.
"2021년 당시 방어 후보지에서 실제 시추가 시작되면 경제 효과가 30조 원이 될 거란 보도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주식시장이 술렁이고 뉴스가 쏟아지진 않았죠. 어차피 추정치란 걸 아니까요. 지금 대왕고래 후보지가 이렇게 이슈가 되는 이유는 같은 종류의 발표를 대통령이 직접 해서 생긴 무게감 때문이에요. 외신의 경우엔 큰 관심도 없고 단신으로 처리했거든요. 현재 거론되는 매장량은 추정치일 뿐이니까요. 다만 이렇게 이목이 쏠린 기회에 국내 전문가 양성의 필요성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 체크포인트4. '탄소중립' 시대에 석유·가스전 새로 개발해도 될까
6월 3일 윤 대통령의 국정브리핑 직후 국내 환경단체들은 일제히 성명서를 내며 "기후위기를 가속할 동해 석유·가스전 개발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국정 브리핑 당일 성명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서 2021년 이후로 새로운 석유와 가스 개발이 이뤄져선 안된다고 밝혔다. 나아가 2022년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미 개발이 시작된 화석연료도 40% 이상이 채굴을 중단해야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 이하로 제한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 실패를 가져올 동해 석유·가스전 개발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
환경단체 '플랜1.5'는 같은 날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가 주장한 140억 배럴의 규모를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환산할 경우 약 47억 7750만 톤(t)이 된다"면서 "현재 대한민국의 탄소 예산인 33억 t의 약 1.4배에 달하는 수치로 탄소예산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셈"이라고 했다.
동해 석유·가스전 개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확고하다. 이 교수는 "에너지 자원 확보와 관련해서 에너지 안보, 지속 가능성, 에너지 평등 세 가지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한국은 에너지 안보 지수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데다가 높은 유가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불안정한 국제 정세 탓에 안정적인 에너지 자원 확보가 시급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경식 교수는 "현재 우리가 기후변화를 앞두고 에너지 전환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여전히 산업의 근간이 되는 석유나 가스 개발을 소홀히 해선 안된다"면서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화석연료 확보 두 가지 트랙을 함께 두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정은 사회의 몫이다. 우리는 비슷한 사례를 2023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이슈를 겪으며 겪은 바 있다. 그뿐인가,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할지 코로나19 방역 단계는 얼마나 조여야 할지, 과학이 뉴스에 드러나는 순간마다 결정은 사회의 몫이었다. 다만 과학은 '팩트'로서 결정에 근거를 제공한다.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 이슈에 대한 과학적 팩트를 정리했다. 이제 사회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한반도 바다에 석유가 있다면, 육지엔 '하얀 석유' 리튬이 있다
수요가 탐사를 부른다. 이범한 한국지질자 원연구원 희소금속광상 연구센터장은 7월 6일 "2010년 이후 국내 광물 자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리튬, 티타 늄 등 그간 (매장량)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던 광물에 대한 추가 탐사 및 시추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중 리튬은 이차전지의 주요 원자재로 '하얀 석유'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7월 11일 국내 리튬 유망 광상 12개 지역에 대한 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센터장은 "특히나 울진과 단양 지역의 경우 리튬 매장 잠재성이 높아 지화학적 연구와 함께 시추를 통한 매장량 평가 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평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원장은 보도자료에서 "이번 국내 리튬 자 원의 탐사 결과는 그동안 해외에 의존했던 핵심 광물 공급망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한다는 큰 의미를 가진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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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8월호, [과학으로 뉴스읽기] 동해 심해에 140억 배럴 석유 ·가스가?
[김소연 기자 leci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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