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억대 부동산 사기’는 어떻게 가능했나[오마주]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사기꾼 집단이 있습니다. 리더, 협상가, 정보원, 법률 담당, 서류 위조사, 사칭 배우를 캐스팅하는 수배사 등으로 구성됐습니다. ‘지멘시’(지면사·地面師)라 불리는 이들은 타인의 부동산을 자기 것인 양 서류를 위조해 제삼자에게 팔아 거액을 챙깁니다.
물론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사기 대상은 어수룩한 개인이 아니라 탄탄한 부동산 회사니까요. 지멘시들은 외부 활동이 많지 않은 주인이 가진 땅, 개발 부지가 필요한 부동산 회사 정보를 먼저 물색합니다. 땅 매물이 나왔다는 거짓 정보를 슬쩍 흘린 뒤, 땅 주인을 사칭할 ‘배우’를 캐스팅하고, 땅 소유를 입증할 서류와 인감을 정교하게 위조합니다. 땅 주인 역을 할 ‘배우’는 아마추어이기에, 구매자와의 만남은 최대한 뒤로 미룹니다. 마음 급한 구매자에게 땅을 넘길 듯 말 듯 애간장을 태우게 한 뒤, 땅 소유권을 넘기는 척하고 돈을 받습니다. 관공서에서 ‘계약은 무효’라는 회신이 올 때쯤 지멘시들은 돈을 챙겨 어딘가로 사라진 뒤입니다.
넷플릭스 7부작 시리즈 <도쿄 사기꾼들>은 지난 5월 한국에도 출간된 신조 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사기 수법이 어이없을 정도로 대담해서 믿기가 힘든데, 놀랍게도 2017년 일본의 대형 건설사인 세키스이하우스가 토지거래 사기 피해를 본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합니다. 당시 사기꾼 일당은 도쿄 번화가인 JR고탄다 역 인근 료칸 부지의 주인 행세를 하며 55억 엔을 챙겼습니다.
지멘시 일당은 구매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부추깁니다. 매물 정보가 아직은 널리 퍼지지 않았음을 암시하면서도, 곧 또 다른 구매자가 나타나 협상을 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기회가 사라진다는 것이죠. <도쿄 사기꾼들>에는 크게 봐서 두 개의 피해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1화에서 워밍업하듯 소규모 건설회사를 대상으로 한 사기가 나온 뒤, 나머지 6화에서는 업계 최고 수준의 부동산 회사를 상대로 100억 엔대(한화 약 900억 원) 사기를 치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피해자들은 모두 야심만만한 부동산 개발업자입니다. 도쿄 중심부 알짜배기 땅을 구매해 화려한 개발 계획으로 큰 이윤을 남기려는 것이죠. 사기꾼들은 피해자의 크게 부풀어 오른 야심을 노립니다.
일본 사회에서 부동산 사기는 2차대전 직후 사회가 혼탁하고 관공서가 혼란에 빠져있던 시기 처음 발생했다가,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버블 경제 시대 다시 나타났고, 2010년대 중반 도쿄 올림픽 개최 확정 이후 개발붐이 일면서 다시 증가했다고 합니다. 일확천금에 대한 달아오른 욕망이 범죄의 배경이 된 겁니다. 부동산 사기는 ‘버블기 범죄’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도쿄 사기꾼들>은 범죄자가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정교한 사기 계획, 실행 과정의 돌발 변수, 이를 임기응변으로 극복하는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오션스 일레븐>이나 <도둑들> 같은 ‘하이스트’ 장르라 할 수 있겠지만, 범죄가 성공했을 때 쾌감보다는 찜찜함이 남습니다. 하이스트 장르에선 범죄자가 더 강하고 돈 많은 범죄자를 골탕 먹인다면, <도쿄 사기꾼들>의 피해자는 욕심은 많을지언정 범죄자는 아니니까요.
관록 있는 배우 도요카와 에츠시가 지멘시의 리더 해리슨 야마나가 역으로 기억에 남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는 고급 위스키를 즐기는 취향,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쓰는 품위를 갖췄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엔 끔찍한 폭력을 불사하는 혐오스러운 모습도 보여주는 인상적인 악당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걸어 다니는 상처 같다”고 표현한 아야노 고가 지멘시의 교섭 담당 다쿠미 역을 맡았습니다. 부동산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다쿠미는 해리슨의 제안으로 지멘시 일당에 합류하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인물입니다.
하이스트 지수 ★★★★★ 범죄가 성공하기까지의 숨 막히는 긴장감
거품과 욕망과 범죄 지수 ★★★★ 범죄는 욕망을 먹고 자란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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