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사람들] ⑩ "와, 공기 달다" 초등학생이 감탄한 해마루촌 관광해설사(끝)
"전쟁통에 고향서 쫓겨난 부친 위해 입주 결심, 소원 못 이루고 돌아가셔"
[※ 편집자 주 = 비무장지대(DMZ) 남쪽에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이 설정된 지 올해로 70년이 됐습니다. 민통선을 넘는 것은 군사적인 목적에서 엄격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6월부터 민통선을 넘나들며 생활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토요일 송고해 왔습니다. 이번은 마지막 10번째 기사입니다.]
(파주=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와, 공기 달다', 경기도 용인에서 온 초등학생이 DMZ 관광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한 말인데 아직도 잊히지 않네요. 어린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신기했어요. 우리 마을을 그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약 10년 전 어느 해 5월의 봄날을 떠올리며 조봉연(67) 해마루촌 농촌체험마을 위원장은 눈빛을 반짝였다.
그는 "해마루촌은 사람이 50년간 살지 않았던 지역이고 지금도 개발이 제한돼 있다"면서 "환경은 자연 그대로 보존돼 있고, 유적지에도 사람의 발길이 별로 닿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경기 파주 민통선 마을의 '막내' 격인 해마루촌의 제1대 이장을 지낸 조씨는 약 20년간 이곳의 생태환경과 역사 유적을 홍보하는 데 앞장서 왔다.
'동의보감'의 저자인 허준 선생의 묘와 덕진산성 등 민통선 내 알려지지 않았던 관광자원을 홍보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직접 DMZ 관광버스에 올라 해설사로 수많은 관광객을 만나기도 했다.
지난 16일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해마루촌에서 그를 만나 민통선 마을에 입주하게 된 계기와 정착 이후의 이야기 등을 들어봤다.
해마루촌은 2001년 파주시 장단군 실향민들을 5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면서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야심 차게 탄생했다.
유럽의 전원마을을 방불케 하는 번듯한 집들의 모습과 상공에서 보면 높은음자리표를 그대로 닮은 마을의 형상은 그 자체로 평화와 희망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한국전쟁으로 고향에서 쫓겨난 이들의 애환이 집마다 있었다. 조씨의 집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들은 스스로를 '실향민'이 아닌 '소개민'이라고 칭한다. 일상에서는 잘 쓰이지는 않는 말인 '소개(疏開)'란, 공습이나 화재 등에 대비해 주민이나 시설물을 분산하는 것을 가리킨다.
1951년 군부대에서 소개조치를 내려 이곳 주민들이 단체로 트럭에 실려 파주시청 인근의 금촌 피난민 임시수용소로 옮겨졌다.
작전상 잠깐 마을을 벗어나는 것으로 믿었던 주민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망연자실했다. 살던 집들이 다 불태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후의 일이다.
조씨는 "북한 땅도 아닌데 고향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에 아버지께서 매우 한스러워하셨다"면서 "나중에 더 연로해지셔서는 '고향에서 살고 싶다'가 아닌 '고향에서 죽고 싶다'는 소원을 계속 말씀하셨었다"고 전했다.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는 부친 아래서 자란 조씨는 해마루촌이 생기기 전 마을 인근 선산에 미군 사격장이 들어선다는 얘기에 '미군 스토리사격장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며 투쟁가로 나서기도 했었다.
사격장이 만들어지고 이제는 1년에 허락된 단 4번만 묘소에 들어갈 수 있다. 이조차 '싸움'으로 힘들게 얻어낸 결과였다.
한국군에 고향을 빼앗기고, 미군에는 선산을 빼앗기다시피한 그의 집안에서는 해마루촌 입주가 부친의 한을 푸는 유일한 열쇠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그 소원을 들어드리려고 민통선 내에 거주한다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입주 신청을 했다"면서 "그런데 부친은 해마루촌 정식 입주 직전 돌아가셔서 결국 한을 못 풀어드렸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해마루촌에 입주한 뒤 조씨는 임진강과 임진강의 유일한 섬인 초평도를 낀 아름다운 경관에 반해 이를 알리고자 부단히 애를 썼지만, 외지인의 숙박이 웬만해선 허용되지 않는 민통선 마을의 특성과 지뢰제거 작업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탓 등에 한계를 자주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해마루촌 '1호' 집인 조씨는 주택 2층에 한때 DMZ농촌체험 숙박객을 받았다가 이제는 접었다. 또 조씨의 자택 뒷마당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는데, 바로 뒤편이 미확인 지뢰지대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웃한 민통선 마을인 통일촌이 'DMZ 안보관광지'로 자리를 굳건히 한 반면, 'DMZ 생태관광지'로 발돋움하려던 해마루촌은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에도 불구하고 돌파구가 필요한 듯 보였다.
추진되던 관광사업의 중단과 심각해지는 고령화 등으로 마을의 농구장과 축구장은 이용하는 이가 없이 방치돼 있었고, 활력을 잃은 듯한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해마루촌 공식 입주 이후 마을에서 탄생한 새 생명은 딱 1명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곳이 고향인 사람들로 한정해 마을에 60가구가 입주하긴 했는데, 평생을 다르게 살아오다가 다시 한데 모여 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주민 중 농사를 짓지 않고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경우가 많아 일부는 현재도 도시와 이곳을 왔다 갔다 하며 지낸다.
조씨는 "상황이 그렇다 보니 마을에 실제 거주하는 사람은 100명 남짓이다"라며 "마을이 생기고 나서 초반에는 뭐든 활성화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못하고, 다들 나이가 많아져 뭔가를 하려고 나서는 사람도 없다"고 털어놨다.
실향민 1세대에 이어 2세대마저 노령인구로 편입되면서 실향민 마을로 탄생한 해마루촌이 소멸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생태관광'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적인 면도 있다. 생태를 보존하려면 사람의 간섭이 적어야 하는데, 관광사업을 추진하면 이는 어불성설이 되어버린다.
조씨는 "마당에 심어놓은 사과나무 한 그루에도 약을 치지 않으면 새와 꿀벌이 다 파먹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건 남지 않는다"면서 "분단으로 인해 보존된 이 아름다운 자연에 해를 최대한 끼치지 않으면서 마을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다 같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겨울이면 국제적 보호조인 두루미, 재두루미, 독수리 등이 찾아와 풍경을 채우고, 여름에는 청호반새와 파랑새가 재잘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는 마을은 또 다른 의미로의 '보존'이 필요해 보였다.
su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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