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간에 아슬아슬 서 있던 20대, 눈앞에서…잔상에 괴롭던 경찰관이 한 일[베테랑]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2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 지난 4월12일 서울 서초구 한 아파트 15층 난간에 20대 대학생이 올라섰다. 동 트기 전인 오전 4시 잿빛 하늘. 우뚝 선 사람 실루엣만 보였다.
"한 남성이 뛰어내리려고 한다"는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소방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다. 소방은 혹여 학생이 뛰어내릴 경우를 대비해 에어매트 설치에 나섰다. 주민들이 귀가해 잠든 시간이라 주차장은 꽉 차 있었다. 차량을 빼고 에어매트가 들어갈 만한 자리를 확보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에어매트에 40%쯤 공기가 주입됐을 때였다. 좁은 난간에 위태롭게나마 서 있던 학생이 떨어졌다. 학생은 심정지 상태로 사망했다. 눈앞에서 투신한 학생을 본 경찰관은 온종일 잔상을 봤다. '차량을 빼고 에어매트를 설치하는 동안 옥상에 올라가 설득했다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자살 기도자도 '위기협상' 대상이라고 정의했다. 대개 인질강도·납치·감금·테러 사건에 투입하는 위기협상 전문요원을 자살 기도 사건에도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연이어 자살 사건이 벌어진 그달에 김 과장은 경찰서 내 위기협상팀의 역할과 편제를 다시 구성했다. 서울경찰청 위기협상 외래강사로 활동하는 서초서 강력5팀장과 논의에 나섰다. 자살 사고가 발현된 구조대상자를 설득하는 대화 기법 교육을 마련했다. 교육받은 위기협상 전문요원은 6월 중순부터 현장에 투입하기로 했다.
김 과장은 먼저 현장에 출동한 순찰차와 소방차의 경광등을 모두 껐다. 구경하던 시민들은 물론 경찰관과 소방관을 학생 시야에서 사라지게 했다. 자살기도자에게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요소를 제거하고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그리고는 자살 기도자 대응에 특화된 위기협상 전문요원 2명을 현장에 투입했다.
아파트 아래 에어매트를 설치하고 각각 형사과, 여성청소년과 소속 요원인 두 사람이 조심스레 난간에 접근했다. 하지만 A군이 좁은 공간 끝에 걸터앉아 있어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요원들은 A군에게 좋아하는 음식 등을 소재로 대화를 유도하고 '누나' '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하면서 신뢰를 쌓았다. 거부 반응을 보이던 A군은 점점 대화에 동참하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여청과 소속 요원은 A군이 아래쪽 1층을 바라볼 때마다 "○○아, 누나 봐야지. 누나 여기 있어"라고 말하며 주의를 돌렸다. 그러면서 "누나가 ○○이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라고 다독였다. A군은 그러자 "스스로 넘어가겠다"며 난간 안쪽으로 다가갔다. 요원이 A군에게 "고마워, 누나 여기 있어"라며 틈 사이로 손을 내밀자 A군이 그 손을 잡았다.
자살 기도자에게 특화해 협상 기법을 교육받은 경찰이 설득에 나서자 구조대상자가 아래로 뛰어내리는 일을 원천 차단할 수 있었다. 김 과장은 "범인을 검거했을 때 느끼는 뿌듯함과 생을 마감하려고 작심한 사람을 구조했을 때 느끼는 뿌듯함이 다르다"며 "사람을 구조할 때 느끼는 뭉클함은 정말 따뜻한 감정이었다"고 말했다.
서초서 범죄예방대응과는 이달 초 '리마인드 교육'을 진행했다. 어떤 장구가 추가로 더 필요한지, 상황별 대처 요령 등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관련 자격증도 취득하면 좋겠다"는 말에 요원들은 눈이 초롱초롱해져 의욕을 드러냈다. 요원들은 수사연구원이 주관하는 위기협상전문과정도 순차적으로 이수할 예정이다.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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