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10만 'MZ 픽' 식당 있는 제주 마을에 '메밀 전도사'가 산다
마을 조합 꾸려 메밀 생산부터 식당까지…제주메밀 홍보에도 박차
[편집자주] 지역마다 특색이 담긴 향토음식과 전통 식문화가 있다. 뉴스1제주본부는 토요일마다 도가 지정한 향토음식점과 향토음식의 명맥을 잇는 명인과 장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향토일(鄕土日)이라는 문패는 토요일마다 향토음식점을 소개한다는 뜻이다.
(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한라산 해발 500m,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이 '메밀'로 들썩이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 메밀을 생산·조달하고, 가공공장을 운영해 식당을 만들어내더니 이 작은 마을은 전국에서 한해 10만명이 몰려드는 관광명소가 됐다.
제주 향토음식장인 강상민 대표가 주축이 된 한라산아래첫마을 영농조합법인이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아 이뤄낸 성과다. 서귀포시 안덕면 광평리에서 나고 자라 농업인의 삶을 꾸려가던 강 대표는 2015년 '죽어가는' 마을에 덜컥 위기감을 느낀다.
강 대표는 "젊은 친구들이 다 나가는 상황에 뭔가 준비를 해야 한다는데 조합원들 의견이 모였다"며 "제주에 깊숙이 뿌리내렸지만, 활용을 잘 못하는 메밀을 소재로 해보자고 결심한 게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처음 식당문을 열었을 때는 고전했지만, 2020년 재정비해 문을 연 '한라산아래첫마을'은 시작부터 오픈런은 물론 인터넷에서는 예약 팁까지 전수되는 'MZ픽' 맛집이 됐다. 강 대표가 고안한 '비비작작면'이 대히트를 친 덕이다. 비비작작은 어린아이가 낙서하듯 그리는 모양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조합이 직접 재배한 메밀로 뽑아낸 수제면에 제주산 나물과 들깨, 소고기 등 고명을 얹고 들기름을 넣어 비벼먹는 음식인데 한라산을 형상화한 모양과 형형색색 담음새가 뜻밖에도 '인증샷' 문화에 딱 들어맞았다.
인증샷을 찍은 후엔 음식에 담긴 뜻을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강 대표는 비비작작면 안에 제주 제사 고유 풍습인 '반'을 담아냈다.
강 대표는 "어렸을 때는 동네 제삿집을 왕래했는데 가면 동그란 쟁반에 고기 한 점, 떡 하나, 과일 하나를 골고루 나눠준다"며 "팔십 먹은 할머니, 할아버지도 뱃속 아기도 공평하게 반을 나눠 가지는데 이 문화를 음식에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조합은 식당뿐 아니라 연간 약 100톤의 메밀을 조달하고, 메밀쌀·메밀가루·메밀차를 제조하면서 1차·2차·3차 산업을 융합한 '6차 산업'의 선례로도 이름을 알렸다. 강 대표는 2022년 농림축산식품부 선정 농촌융복합산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메밀신화가 전해 내려오는 곳, 메밀음식 가짓수가 가장 많은 곳 바로 제주다.
돌이 많아 척박하고, 여름이면 수차례 태풍이 몰아치는 섬에서도 '그냥 뿌려놓으면 잘 자라는' 메밀은 제주인들을 살게 하는 고마운 곡물이었다. 메밀조배기(수제비)는 산후조리식으로 쓰였고, 사람이 죽으면 저승 가는 길에 먹으라며 입에 메밀떡을 하나 물려줬다. '메밀로 태어나 메밀로 죽는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강 대표는 이렇게 제주만이 가진 메밀 이야기를 널리 알리는 데도 열심이다. 제주민속촌에 전국 유일의 '메밀문화원'을 열어 강의부터 생소한 메밀 요리법을 가르치는 교실까지 운영하고 있다.
강 대표는 "제주 농경신 자청비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올 때 가져온 게 메밀씨앗이라는 신화가 있는데 이건 전 세계에서 제주가 유일하다"며 "제주에서 메밀이 가진 의미, 타지역·나라와의 생산량 비교 등 메밀과 관련한 것들을 소개하는 강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는 국내 최대 메밀 생산지이지만, 인지도는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강원도 봉평에 밀린다. 지난해 소비자 4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메밀하면 떠오르는 지역'으로 62.6%가 '강원도'를 꼽았을 정도다.
강 대표는 앞으로 제주 메밀을 더 열심히 알리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지금 제주 메밀 생산량 대부분이 봉평으로 가는데 그게 너무 아깝고 부가가치도 적다. 메밀을 우리가 매입하고 가공하면 좀 더 농가에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만큼 공장 규모를 더 키우려고 한다"며 "무엇보다 메밀에 대해 사람들이 아직 많이 모르다 보니 제주뿐 아니라 메밀 자체를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 기사는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의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oho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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