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 현미경 대고 들여다본 아픈 현대사… 꺾이고 짓밟혀도 역사는 전진한다[리뷰]

김현희 기자 2024. 8. 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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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NEW

[스포츠한국 김현희 기자] 영화 '행복의 나라'는 10.26 대통령 암살 사건과 12.12 사태를 관통하는 재판을 모티브로 다룬 픽션이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서울의 봄' 등에서 10.26과 12.12를 다룬바 있지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가려져있던 인물들을 재판을 통해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은 '행복의 나라'가 처음이다. 

'행복의 나라'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10.26 이후의 최악의 정치 재판 스토리를 통해 유일한 군인 신분으로 당시 첫 공판이후 단 16일 만에 최종 선고를 받은 박흥주 대령을 모티브로 스토리를 끌어간다. 추창민 감독은 '행복의 나라'를 통해 "역사의 또 다른 줄기에 초점을 맞춰보면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연출 의도를 밝힌바 있다. 

영화는 박흥주 대령이 모티브가 된 정보부장의 수행비서관 박태주(이선균)과 그를 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변호사 정인후(조정석), 위험한 야욕을 위해 부정 재판을 주도하는 거대 권력의 중심 전상두 합수단장(유재명) 세 인물을 중심으로 관객들을 향해 지난 역사 속 중요 사건들을 다시 한번 세밀히 들여다보고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도록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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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후는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의 변호를 맡아 혼신의 힘을 다하지만, 그의 의지와 달리 불공정하게 진행되는 재판 과정에 분노를 터뜨린다. 또한, 그는 전상두의 권력에 끝까지 맞서 싸우지만 결국 권력 앞에 무너지며 처절한 모습을 보인다. 이에 전상두는 정인후를 처참히 무시하고, 정인후는 "왕이 되고 싶으면 왕을 해. 하지만 사람은 죽이지 마"라고 일침을 가하며 울분을 토한다.

이러한 연기를 통해 조정석은 이제껏 본적 없는 묵직한 연기를 선보인다. 현재 조정석은 지난달 31일 개봉한 영화 '파일럿'을 통해 유쾌하고, 코믹연기를 선보이지만, '행복의 나라'를 통해 조정석의 극과 극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중은 '한계 없는, 장르에 국한 되지 않은 배우' 조정석을 직접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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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주는 대통령 암살 사건에 관련된 인물 중 유일한 군인 신분으로 불합리한 단심제를 통해 판결이 확정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강직함을 잃지 않는 인물이다. 특히 군인으로서 역할과 상관의 명령 사이에서 갈등하는 다층적인 인물로 등장해 영화를 보다 입체적으로 만든다.

'행복의 나라'는 故이선균의 유작이다. 이에 그가 작품에 등장한 것만으로도 대중에게 먹먹함을 선사한다. 이와 동시에 그는 박태주를 연기하면서 차분하지만 내면에서는 울음을 삼키는 심도 깊은 연기를 표현해 더욱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다. 더불어 마지막 장면에서 이선균은 조정석에게 "내가 자네에게 진 빚이 많아"라며 재판장을 떠난다. 이는 마치 그의 마지막 인사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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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두는 오로지 자신의 야욕을 위해 부정 재판을 주도하며 군부 집권을 이어가기 위해 군사반란을 일으킨 주동자로, 막강한 권력을 쥔 인물이다. 해당 인물을 연기한 유재명은 대사가 아닌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과 광기 어린 옅은 미소 등을 통해 역대급으로 살기 어린 연기를 선보인다. 더불어 그는 극 중 모든 정치 세력을 휘어잡은 뒤 정인후에게 "나 정도면 자격 있잖아"라며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정당화 하고자 한다. 이에 유재명은 인간의 존엄성을 가벼이 여긴, 야만적인 인물을 자신만의 연기 스타일로 보다 디테일하게 표현했다.

영화에서 대통령 암살 사건의 재판이 러닝타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작품 속 법정과 군사 재판 과정은 제2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 중 보이는 재판 테이블은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진한 갈색의 나무로 만든 재판 테이블에 재판인들이 앉아 있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분위기를 압도한다. 또한, 피고인으로 재판장에 선 박태주는 법정 한 가운데 서서 스탠드 마이크 하나로 증언한다. 이는 존중 받지 못하는 피고인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더불어 변호인단과 참모총장, 전상두가 모이는 접견실 또한 인상 깊다. 해당 세트는 마치 1970년대를 그대로 복원해 놓은 것 같은 질감과 탁상, 의자 등이 해당 시대적 배경을 잘 표현해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이렇듯 '행복의 나라'는 스토리 뿐 아니라 시대적 환경을 디테일하게 표현함에 따라 현실감 넘치게 나타났고, 이를 통해 대중에게 역사적 사건과 더불어 해당 시대의 기록을 다시금 기억 할 수 있는 효과를 불러 일으켜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스포츠한국 김현희 기자 kimhh20811@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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