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률 고작 6.6%… ‘역할’ 잃은 경기도 연극 [무너지는 지역 연극④]

이연우 기자 2024. 8. 24.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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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남은 道보다 ‘두배’ 넘어... 티켓값·공연량도 ‘평균~평균 아래’
지원금 있지만 내용·대상 한정적... 지역色 갇혀 독창·대중성 부족도
전문가 “창작 활동 위한 환경 시급”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혜화역 일대에 수많은 소극장이 자리하고 있다. 곽민규PD

 

#4장: 지역 연극 속에는 지역 문화가 촘촘히 감겨 있다. 고양지역에서 행주대첩을 소재로 한, 용인지역에서 처인성을 배경으로 한, 수원지역에서 정조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나오는 것처럼 ‘지역색’이 강하다는 게 지역 연극의 장점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지역 이야기’에 갇혀 있다 보니 독창성이나 대중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지적한다. 수많은 연극이 뜨고 지길 반복하는 상황에서 지역 연극이 관객 옆에 오래 남아있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part1. 경기도 공연 관람객 6.6%만 ‘연극’ 선택

23일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센터)에 따르면 센터는 지난 4월 '빅데이터 기반 공연 관람 행태 분석 보고서'를 통해 2022년도 공연 시장의 장르 특성 및 소비행태를 분석하고, 향후 공연 관람계를 내다봤다.

공연 관람객 중 연극 관람객 비중. 엄민서기자

이 중 ‘연극’ 통계만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먼저 서울에서 공연을 본 관객 100명 중 13명은 연극(13.7%)을 본 것으로 조사됐다. 경남(13.7%)도 마찬가지였다. 뒤이어 충남 공연 관람객의 11.3%가, 대전 공연 관람객의 10.5%가 ‘연극’을 봤다고 답했다.

반면 경기도에선 공연을 본 관객 100명 중 6명만이 연극(6.6%) 장르를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양음악(28.5%)과 무용(6.7%) 공연의 관람객보다도 연극의 인기가 적었다.

엄민서기자

티켓 구입가격은 연극(5만6천507원)이 한국음악(4만131원)보다 1만원가량 비쌌다. 뮤지컬(12만2천784원)이나 서양음악(7만9371원), 무용(6만9841원)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었다.

전체적으로 ▲부산(평균 13만329원) ▲서울(11만3천595원) ▲울산(10만690원) 지역의 공연 티켓 값이 상위권이었고, ▲경북(2만9181원) ▲광주(3만5천345원) ▲전남(5만774원) 지역이 하위권이었다. 경기도(6만7천305원)는 중간 정도였다.

대부분의 공연이 수도권에 집중된 가운데 특히 연극은 80% 이상이 서울에 몰려 있었다. 비수도권의 공연량은 매우 적은 편이지만 그나마 인천, 광주, 전남 등에선 서양음악, 한국음악, 무용 등이 약진하는 상태였다.

경기도 연극은 관람객 수도, 티켓 가격도, 공연량도 크게 돋보이는 부분 없이 ‘평균~평균 아래’ 수준에 머무르는 실정이었다.

지난해 11월 수원특례시 정조테마공연장에서 열린 '무예 뮤지컬 더 북'에서 배우가 열연하고 있다. 이 공연은 정조테마공연장 개관 기념작이다. 경기일보DB

■ part2. 대학로에 뺏기고, 지역 한계 갇히고

경기도 내에서 유독 연극의 인기가 낮은 이유는 뭘까.

첫 번째로는 ‘서울과의 원활한 접근성’이 꼽힌다. 타 시·도와 비교했을 때 경기도는 서울로 이동하기 편하기 때문에 ‘대학로’에 지역 연극인과 관람객을 뺏기고 있다는 의미다.

연극인 입장에선 서울로 가야 더 많은 활동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관람객 입장에선 서울 작품이 더 퀄리티가 높다는 인식이 있다는 게 연극계의 시선이다.

두 번째로는 ‘작품 내용의 한계성’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는 정부 및 지자체, 문화기관 등의 연극 관련 ‘예산’ 문제와도 연결된다.

현재 상당수 지역 극단이 재정 문제로 작품 활동을 하기 어려워 특정 사업·공모 예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데, 이 예산의 대상과 지원금이 무척 한정적이라는 주장이다. 사업·공모에서 요구하는 작품 주제가 ‘지역’에 초점 맞춰져 한정적이라는 볼멘소리도 더해진다.

경기도에서 소극장을 운영하는 한 연출가는 “소규모 극단은 돈이 없어서 1년에 작품 하나를 선보이기도 힘들다. 외부에서 예산이 수반된다면 연간 최대 4개 정도 할 수 있는데 그 예산을 받으려면 사실상 ‘순수 창작극’은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사업을 알리는 작품, 지자체 행사에서 공연할 작품 등 주제가 정해져 있고 거기에 ‘지역색’이 더해져야 메리트가 된다. 즉 지역 이야기가 담겨야 예산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라며 “지역 문화를 우선시하는 건 좋지만, 문제는 그러한 작품을 지속적으로 공연하기엔 ‘유료 관객’이 모일 소재가 아니라 단편에 그치고 끝난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제42회 대한민국연극제 용인 행정감독이자 한국연극협회 경기도지회 사무처장인 주승민 극단 오픈런씨어터 대표가 지역 연극과 관련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곽민규PD

■ part3. “그럼에도 지역·극단 매력 살리며 고군분투”

관객들의 무관심 속 연극계는 ‘예산 지원’ 틀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연극계 내부에서는 지역 명소를 배경으로 하고, 역사적 사건을 소개하고, 특정 인물을 조명하는 가운데 최대한 ‘내 극단만의 매력’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충남에는 충청도 사투리로만 쓰여진 연극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가 있고, 제주에는 4·3사건을 다룬 연극 <바람의 소리>가 있는 것처럼, 그게 지역 연극이 현재를 버텨내고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주승민 극단 오픈런씨어터 대표(제42회 대한민국연극제 용인 행정감독·한국연극협회 경기도지회 사무처장)는 “아무래도 지역에는 각자의 지역을 대표 콘텐츠로 내세운 공연들이 많다”면서 “특히 경기도의 경우 지역별, 극단별 강한 특색이 있기 때문에 다채로운 지역 공연들이 수없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경기도에도 행주대첩(고양), 처인성(용인), 정조대왕(수원) 등을 메인으로 만든 작품들이 쏟아진다는 설명이다.

주 대표는 “보통 극단들은 정기공연을 통해 본인 극단이 추구하는 방향과 목적을 담는 작품을 선보이는데 그 외엔 지역에서 원하는 콘텐츠의 작품을 많이 제작하고 있다. 예산 확보를 위한 목적극 성향의 작품이 나오고 있다는 의미”라며 “그렇다고 그게 잘못 됐다고 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지역 예산으로는 지역민을 위한, 지역 콘텐츠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으니 어느 정도의 제한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정기공연이 아니어도 연극인의 창작 활동을 보장하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한층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국 최초로 공연예술 작품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한 강경호 플레이슈터 대표가 연극인들의 자생력을 높이기 위한 고민 등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곽민규PD

■ part4. 연극을 기록하는 자들

이토록 힘겹게 탄생하는 지역 연극, 어쩌면 ‘한 번의 무대’로 사라지는 휘발성과 일회성을 가진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편집을 통해 남는 영상물은 OTT 등에 남을 길이 있지만,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현장성의 공연은 기록할 수 있는 플랫폼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이다.

연극을 하나하나 지키는 게, 연극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게, 차세대 연극인을 키워나가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연극을 남기는 자들’이 있다.

경기지역 안에선 공연판 넷플릭스로 불리우는 ‘경기아트온(ON)’이 사실상 유일무이하다. 경기아트센터가 제작한 예술인 지원 공연영상 콘텐츠 플랫폼으로 누구나 무료로 즐길 수 있다.

특히 ‘플레이슈터’도 대표적이다. 플레이슈터는 2020년 1월부터 연극 등 작품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제공해왔던 전국 최초의 공연예술 플랫폼이다. 다양한 작품을 영상으로 제작해 체계적으로 아카이빙을 관리하며,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은 창작자들과 배분한다.

강경호 플레이슈터 대표는 “정부·지자체 예산 등의 지원금 말고도 공연예술인들이 자생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고 싶었다”며 “보존되지 않는 공연예술을 기록하기 위해 ‘감히 내가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극 활동을 했던 그는 “연극이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선, 왜 사라지면 안 되는지에 대한 이유부터 생각하고 싶다. 만약 연극의 수요도, 공급도 없다면 그땐 없어지는 게 맞다. 이유 없는 쇠퇴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화성의 이화뱅곳민들레연극마을을 언급하면서 “민들레연극마을이 품앗이 공연예술축제를 여는 것처럼 지역에선 마을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연극을 키워나가고 있다. 예전에 ‘교양예술’로만 여겨지던 연극이 이젠 ‘지역 커뮤니티’ 개념으로 달라진 것”이라며 “무대에 있어야만 예술로 인정받는 게 아니지 않나. 저희는 그러한 공연예술계의 변화상을 남기고 싶었다”고 전했다.

강 대표는 “베토벤 곡을 국립 오케스트라단이 연주한다고 해서 버스킹(Busking·거리 공연)하지 말란 법이 있나. 어떠한 경로건 베토벤 곡을 즐기면 되는 것”이라며 “그 곡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 작곡가도, 연주가도, 악기도 덩달아 파급효과로 관심을 받을 거다. 제가 공연예술계에서 바라는 것도 그런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박채령 기자 cha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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