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동자들의 땀·눈물·분투… 끈질긴 투쟁의 빈칸을 메우다
직공의 임금 삭감 비판했던 강주룡
크레인 위서 고공농성 벌인 김진숙
‘공순이’라 불리며 무시당하던 여공들
여성 주도의 민주노동조합 운동 조명
체공녀 연대기 1931∼2011/ 남화숙/남관숙 옮김/후마니타스/2만원
강주룡은 바로 격동하는 동아시아와 국제적 투쟁의 그물망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당시 식민지 조선은 중요한 분기점을 맞고 있었다. 전쟁을 앞둔 일제는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한 가운데, 주요 기업들은 대공황을 이유로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을 주도했다. 강주룡을 비롯한 섬유 고무공장 여성 노동자들은 기존 노동운동 경험과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영향을 받으며 자본가들에게 맞섰다. 일제와 자본가들 역시 여성의 투쟁이 불온 세력의 배후 조종으로 촉발된다는 소위 ‘배후 담론’을 펼치며 첨예한 대결을 이어갔다.
특히 언론은 강주룡의 말솜씨를 주목했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강주룡은 자신이 일하는 평원고무에서 임금 삭감이 관철되면 평양 시내 고무산업 전체의 임금 삭감으로 이어질 것이며 따라서 2000여명 고무 직공의 생활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공장 측이 선언한 임금 삭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그의 일장 연설에 현장에 있던 한 개신교 장로는 눈물을 지었고, 평양 지식인들은 달변에 놀라움을 표했으며, 한 시인은 그를 ‘여투사’라고 추앙하는 수필을 썼다. ‘체공녀(Women in the sky)’ 강주룡의 탄생이었다.
결국 과거 전평운동을 비롯해 수십 년에 걸친 노동운동의 기반 위에 조방 여성 노동자들의 쟁의는 이듬해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의 공포로 이어졌고 노조는 노사관계에서 기업 측의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받게 됐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아울러 조방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노조원들로부터도 ‘여동지’로 존중받는 위치에 서게 됐다.
요컨대, 책은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 두 어려운 과제를 성취한 한국의 성공에는 여성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 분투가 자리하고 있음을 규명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한국 민주노조 운동의 ‘큰언니’ 격인 이철순이 여성 노동운동가 8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자 ‘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에서 외친 목소리를 거대한 메아리로 만든다.
“엄혹했던 시절 이름도 빛도 없이 노동운동을 일구어 온 그대들. 그때 그대들이 없었더라면 87년 대투쟁이 있었을까, 이땅의 민주화가 이만큼이라도 가능했을까, 오늘날의 민주노조 운동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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