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남에게 보이지 마라”… 편지에 담긴 양반의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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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집 '숙재집'으로 잘 알려진 19세기 조선 유학자 조병덕이 그의 가족에게 보낸 편지다.
체면과 명분을 빼면 시체인 조선 시대 양반이지만, 편지라는 내밀한 공간에서는 부끄러운 '속살'을 내보인 셈이다.
신간 '1700통 편지로 읽는 양반의 초상'은 조병덕이 가족에게 보내는 1700여통을 통해 몰락한 유학자가 겪는 막막한 생계와 빚 걱정, 속 썩이는 아들에 대한 꾸지람, 만성 신경성 설사로 고생하는 처지, 위계질서가 무너진 사회에 대한 한탄 등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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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통 편지로 읽는 양반의 초상/하영휘/궁리/2만5000원
“접때 가마꾼 삯 중 아직 덜 준 것이 많다고 했구나. 양반이 신용을 잃으면 안 되는데 내게 3냥밖에 없어 보낸다. 6냥 중 나머지 3냥도 곧 보낼 생각이지만, 들어올 데가 없어 몹시 걱정이다. 어제 네가 네 형에게 보낸 돈은 인편이 없어 못 부쳤다고 한다. 지금 도로 보낸다. 여기 두면 반드시 다른 곳에 써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147쪽)
단순히 몰락한 양반의 비루한 생활상을 들여다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정조가 사망하고 순조가 즉위하던 해(1800년)에 태어난 그는 세도정치기와 맞물려 부패와 민란으로 들끓는 사회를 살았다. 안으로는 홍경래의 난과 진주민란이, 밖에서는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입(병인양요)하며 조선이 뒤흔들린 시기다. 그의 편지에 자주 등장하는 ‘세변(世變·세상의 변괴)’이라는 단어 등을 통해 그가 바라본 시대상도 읽을 수 있다. 조병덕은 “나라와 사람이 제구실을 못 하는 것은 모두 삼강오상의 도가 쇠퇴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 공부와 학문을 닦는 것을 구분하며 과거 공부는 양반이, 학문을 닦는 것은 유자(유학을 공부하는 선비)가 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모두 벼슬과 과거 공부에만 몰두하면서 학문과 “독서종자가 말랐다”고 탓한다.
조병덕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편지를 고이 간직했기에 1700여통의 편지는 현재까지 이어졌다. 조선시대 개인의 서간문으로는 최대 분량이다. 이 때문에 책은 문집, 권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저술 및 편집된 ‘조선왕조실록’, 역사학자의 주관적인 사관과 구별되는 가족 간 편지 ‘가서(家書)’로서 높은 가치를 가진다.
2008년 ‘양반의 사생활’로 출판되기도 했던 책은 16년 만에 도판, 원문 탈초, 해석 등 본문 체제를 달리해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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