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살고 보자” 침체 길어진 대형 회계법인, 채용 줄이고 지방 中企 공략도

정민하 기자 2024. 8. 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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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먹거리 떨어지고, 노는 사람은 늘어난 ‘빅 4′
먹거리 찾다 찾다 “지역 中企 사장님도 고객으로 모시자”
넘치는 인력에 올해 신입은 10명中 6명만 채용하기로

시장 침체가 길어지면서 일감이 대폭 줄어든 대형 회계법인이 그간 중소형 회계법인의 먹거리였던 지방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자문 서비스로도 손을 뻗었다. 신사업 발굴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실상은 수요 감소 속에 일거리를 하나라도 더 따내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부 중소 회계법인 사이에선 골목상권 침해라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그래픽=손민균

24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주요 회계법인인 삼일PwC는 최근 지역 거점 인수합병(M&A) 센터를 설립하고, 지방 중소기업에 M&A·자금 조달 등 여러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내년엔 지역 중소기업이 손쉽게 관련 정보를 얻고 전문가 자문을 받을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삼일PwC는 이종석 파트너, 심양규 파트너 등 센터장 2명을 포함해 총 30여명의 분야별 전문가를 배치했다.

삼정KPMG도 지난 5일 실시간으로 M&A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KPMG M&A 센터’ 온라인을 개설했다. 매도인은 온라인 센터에 매물 정보, 매수인은 업종과 규모, 구조 등을 고려한 구체적인 인수 조건을 등록한다. 삼정KPMG M&A 전문가는 이 같은 정보를 활용해 기업가치평가 및 실사, 거래 자문 등 종합 M&A 자문과 함께 1대1 전문가 매칭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 회계법인이 이런 플랫폼을 앞다퉈 내놓은 배경엔 장기화된 업황 부진과 유휴 인력 활용 필요성이 있다. 경기가 하락세를 타면서 기업들이 돈주머니를 닫자 M&A 딜 수와 규모가 꺾였고 컨설팅 수요도 감소했다. 그러자 2년 전 경기 호황 때 앞다퉈 영입했던 인력 대부분이 놀게 됐고, 대형 회계법인은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1000억원 이하의 작은 딜에도 모조리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간 대형 회계법인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지방 중소기업 경영자까지 공략하게 된 것이다.

일각에선 대기업 격인 대형 회계법인이 골목상권까지 넘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대형 회계법인은 오히려 모두가 ‘윈윈(win-win)’할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현재 ‘빅4(삼일·삼정·안진·한영)’를 제외한 회계법인은 글로벌 및 전국 네트워크와 전문성이 필요한 M&A 자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치 않다”면서 “지방 회계법인도 M&A 센터 생태계에 들어와서 글로벌 및 전국 정보를 공유하면서 전문성을 키우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겉으론 윈윈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다르다. 대형 회계법인이 남아도는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자잘하다고 여겼던 분야에도 손을 뻗은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올해 빅4 채용 목표 인원은 대략 810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최근 3년 평균보다 약 25% 줄어든 규모다. 이는 역대 최대인 올해 공인회계사(CPA) 시험 최소 합격 인원(1250명)에 비해 445명 적다. 이 격차가 400명 이상으로 벌어진 것은 최근 10년 내 처음이다. 빅4는 공인회계사 2차 시험 합격자 발표가 나오는 다음 달 최종 채용 규모를 정할 예정이다.

그간 빅4 회계법인은 당해 공인회계사 합격자 수보다 더 많은 인원을 채용해 왔다. 공인회계사 시험 최종합격자는 회계법인과 기업 등에서 2년간 수습 기간을 거쳐야 정식 전문 자격을 얻는다. 빅4 회계법인은 주요 기업 감사를 비롯해 실무 경험 기회가 많아 일종의 사관학교 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 업황이 꺾이며 지난해부터 공인회계사 합격자보다 225명 적게 채용하는 등 분위기가 달라졌다. 회계법인들은 인건비 비중이 크다.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일감은 계속 줄어드는데, 신규 회계사는 계속 늘고 퇴사는 줄어 인사 적체가 심각하다”면서 “밸류업(가치 상승)처럼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거나 인공지능(AI)처럼 글로벌 트렌드가 바뀔 때마다 앞다퉈 조직을 구성하는 등 크고 작은 먹거리를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경쟁이 심화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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