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폭발로 최후를 맞은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 [역사&오늘]

김정한 기자 2024. 8. 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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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8월 24일,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만 연안에 위치한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 인근 도시들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중 가장 큰 피해를 본 도시는 폼페이였다.

폼페이는 엄청난 양의 화산재에 덮여 완전히 매몰됐다.

이어서 화산쇄설류는 모든 것을 태우고 부수며 폼페이를 순식간에 파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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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 폭발
폼페이 최후의 날. (출처: 카를 브률로프, 유화(1830), 러시아미술관,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79년 8월 24일,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만 연안에 위치한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 인근 도시들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중 가장 큰 피해를 본 도시는 폼페이였다.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은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용암을 분출했으며, 인근 지역을 뒤덮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폼페이는 엄청난 양의 화산재에 덮여 완전히 매몰됐다. 화산재는 공기를 차단해 시민들을 질식사시켰다. 이어서 화산쇄설류는 모든 것을 태우고 부수며 폼페이를 순식간에 파괴했다.

폼페이는 오랜 시간 동안 잊혀졌다가 18세기 중반 우연히 그 비극적인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다. 카를로 제바는 1748년 폼페이 발굴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인물로, 폼페이 유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체계적인 발굴 작업을 추진했다. 또한 주세페 피오렐리는 석고를 이용해 화산재에 묻힌 사람들의 모습을 복원하는 기법으로 폼페이 발굴에 크게 기여했다.

발굴 작업이 진행될수록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화산재에 묻혀 있던 건물들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거리에는 마차 자국과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심지어 화산재 속에서 굳어버린 사람들의 모습까지 발견돼 당시의 공포스러운 순간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발굴된 유적들은 폼페이 시민들의 생활상도 상세하게 보여줬다. 화려한 벽화로 장식된 주택, 다양한 상점, 공중목욕탕, 극장 등은 고대 로마인들의 문화와 기술 수준을 가늠케 했다. 또한 빵집에서 발견된 빵이나 과일, 주점에서 발견된 포도주 등은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됐다.

폼페이 유적은 고대 로마 시대의 도시 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박물관과 같다. 폼페이 발굴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새로운 유적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이는 또한 자연재해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은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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