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작품은 늘… 지역색에 지워졌다 [무너지는 지역 연극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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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봉사'였던 학재는 그날 무대 위에서 울었다.
"내 일을, 내 지역에서 할 수 없다는 건 너무 슬픈 얘기 아닌가요? 제가 정약용, 단종, 정순왕후를 자꾸 창작 공연을 통해 끄집어내는 이유는 우리 지역을 발전시키고 싶기 때문이에요. 대학로가 아닌 곳에서 지역의 이야기로 일말의 끈을 놓지 않고 남양주의 힘이 되겠다는 것, 그 꿈을 가지고 저는 지역에서 연극합니다"라던 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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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지원서도 창작극은 배제 “특별한 문화요소 만들고 싶다”
#3장: 2002년 평일의 어느 날. 연출가 겸 배우이자 극단 마당 대표인 김학재(57·남양주)는 무대에 오를 준비를 했다. 관객은 단 두 명이었지만 ‘한 명이라도 공연을 보러 오면 변동 없이 진행한다’는 신조를 버릴 순 없었다.
‘심봉사’였던 학재는 그날 무대 위에서 울었다. 중간에 모든 관객이 나간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해야 돼, 말아야 돼?” 하는 사이 결국 공연이 멈췄다. 보는 이가 없으니까.
‘재미없어서 가셨나보다, 우리 진짜 열심히 해야 된다’고 단원들과 서로를 토닥이며 반성하던 때, 두 관객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엄마와 딸이란다. “저희 둘을 위해 공연을 해주시는 게 너무 미안해서… 그런데 다시 들어가서 보기엔 더 미안해서…”라며 꽃바구니와 빵을 건넸다.
그렇게 학재는 다시 한 번 울었다. 지역 연극에 보답하리라 다짐한 계기이기도 했다.
“사실 지역 연극은 남들이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너 어디서 활동하냐?’ 했을 때 ‘남양주’라고 하면 ‘먹고 살겠냐?’ 하는 거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 성공하려면 상업화가 돼야 하는데 저는 지역 연극에서 절대 상업화가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음식점으로 예를 들면 유명한 ‘맛집’이 있어야 근처에 비슷한 가게들이 생기고 다 같이 장사가 잘되는데 지역 연극은 그런 구조가 아니거든요. 서울엔 ‘대학로’가 있지만 경기도엔 그런 여건이 마땅치 않아요."
그의 말마따나 경기도에서 오픈런(open run·상시공연)으로 진행되는 작품을 떠올리려 해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정기적으로 막을 여는 아동극이 있다 쳐도 대개 서울발(發) 작품이었다.
“경기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들의 창작 연극은 어떠한 ‘임무’에 맞춰져 있어요. 정부나 지자체 요청에 맞춰서 특정 축제에 선보일 수 있는 공연이라던지 하는 식이죠. 거기에 제가 상업극을 가지고 갈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제가 순수예술로 남양주의 지역색을 살려서 정약용 공연을 한다면 누가 보러 올까요?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게 경기도에서 오픈런 공연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이유가 되죠.”
이와 같은 이야기는 경기도에서 활동하는 여러 극단 관계자들도 공통적으로 했다. 지역 연극 공연은 정부 및 지자체나 문화기관 등의 예산을 지원받아 이뤄지는 형태가 많은데, 이때 예산이 ‘지역색 있는 공연’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창작극’은 지원 대상에서 다소 배제돼 있다는 설명이었다.
학재는 본인을 두고 ‘연극만 고집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아닌 ‘겉핥기식 연극인’이라 표현했다. 연극만을 바라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생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지역 연극은 살아 있어야 된다”던 그다.
“내 일을, 내 지역에서 할 수 없다는 건 너무 슬픈 얘기 아닌가요? 제가 정약용, 단종, 정순왕후를 자꾸 창작 공연을 통해 끄집어내는 이유는 우리 지역을 발전시키고 싶기 때문이에요. 대학로가 아닌 곳에서 지역의 이야기로 일말의 끈을 놓지 않고 남양주의 힘이 되겠다는 것, 그 꿈을 가지고 저는 지역에서 연극합니다”라던 학재. ‘고집 있는 연극인’ 그 자체였다.
점점 줄어드는 연극 관객은 “우리가 자처한 것”이라던 그는 “그래도 지역 연극은 매력 있어요”라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정약용 체험연극: 정약용의 다섯 가지 직업>(2023년作)에 이어 내년에는 정약용 선생의 생가를 중심으로 연극제 하나를 만들고 싶다는 기대도 품는다.
“ 남양주만이 가질 수 있는 특색, 그리고 남양주만의 특별한 문화 요소를 하나씩 만들고 싶어요. 먹고 살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을 하는 게 제가 연극을 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연극은 저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해요. ‘연극이 나를 떠나는구나’ 싶을 때 제가 ‘내가 떠나보내줘야지’ 하는 생각을 품으며 활동하는 중입니다.”
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박채령 기자 cha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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