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슐랭 스타들] ② 정식당, 익숙함 속에 새로움이란 숨결을 불어넣다

이정수 기자 2024. 8. 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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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 김밥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재료를 재해석
평양냉면, 고로쇠 등 이용한 신메뉴도 선보여
“한식의 매력은 그 메뉴마다의 ‘개성’에 있어”
임정식 정식당 셰프가 서울 강남구 정식당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큰 용기를 수반한다. 특히 파인 다이닝 업계에서는 말이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한다는 것은 단순 영감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상상과 현실은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의 메뉴가 탄생하기 위해선 맛은 물론, 심미적인 요소, 가격 등 수십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셰프의 열정과 고뇌다.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기 위해 똑같은 재료라도 수백, 수천 번의 조리법을 활용한다. 또한 양을 0.1g마다 바꿔가며 그 맛의 차이를 기록하기도 한다. 그렇다 해서 언제나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그럴 경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번거로운 과정이지만 모든 셰프들에겐 거쳐야 할 ‘잔혹한 숙명’이다.

그 고뇌의 흔적이 가장 잘 느껴지는 곳 중 하나는 미슐랭 2스타의 정식당이다. 임정식 셰프가 이끄는 이곳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돌하르방, 김밥 등을 재해석한 메뉴로도 유명하다. 국내 파인 다이닝 업계의 1세대로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명맥을 유지 중이기도 하다. 미국에선 ‘정식 뉴욕(2스타)’이라는 이름으로도 한식을 소개하고 있다.

임정식 셰프는 고뇌를 즐길 줄 아는 셰프다. 그리고 그 손에서 탄생한 메뉴에도 자부심이 있다. 새로운 메뉴를 소개하는 그의 목소리에선 힘이 느껴진다. 권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가 고통을 감내했던 것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자신의 요리를 ‘자신(自信)’있게 권할 때, 바로 그때가 그의 지난 고뇌들이 비로소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이번에 그가 새롭게 선보인 메뉴는 평양냉면과 고로쇠 물을 이용한 디저트다. 평양냉면을 즐기지 못하는 이들은 그 간의 슴슴함을 꼽는다. 정식당의 평양냉면은 다르다. 진한 고기 육수에 간을 맞춰 입문자도 즐기기 편하다. 특히 위에 듬뿍 올라간 호주 태즈메이니아산 트러플이 육향과 만나며 그 존재를 향긋하게 알린다.

정식당의 이번 여름 신메뉴인 평양냉면. 면 위에 고명으로는 호주 태즈메이니산 트러플이 뿌려져 있다. 왼쪽부터는 양지 수육과 더덕 김치, 계란말이, 방아 부추전, 물김치 등이 놓여져 있다. /정식당

곁들일 반찬들도 있다. 양지 수육과 더덕 김치, 계란말이, 방아잎과 부추로 만든 전, 그리고 물김치다. 양지 수육은 젓가락이 닿기가 무섭게 결대로 찢어진다. 더덕 김치는 아삭하고 새콤 매콤해 수육과 잘 어울린다. 계란은 폭신하며 마찬가지로 트러플이 올라가 고소함이 그 배다.

방아잎을 이용한 부추전은 그동안 쌓인 고기 향을 한 번에 씻겨 내려준다. 면과 함께 곁들면 방아 특유의 향이 혀끝에서 아른거린다. 입안에 응축된 맛들이 내려가며 마치 다시 새롭게 메뉴를 시작하는 기분마저 든다. 이어 시큼한 물김치는 메뉴가 끝났다는 아쉬움을 은은히 달래준다.

고로쇠를 이용한 디저트는 두 가지 코스가 준비돼 있다. 먼저 울릉도에서 채취한 고로쇠 원물을 맛보는 게 첫 과정이다. 달콤하고 은은한 나무 향이 깔리는 것이 우리가 아는 고로쇠 그 맛이다.

이어 그 고로쇠를 이용한 소스와 함께 나무를 형상화한 디저트가 함께 나온다. 그 옆에 소스가 어우러지며 마치 나무에서 고로쇠가 새어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런 첨가물 없이 한나절 이상 고로쇠를 졸여낸 소스는 짙은 갈색을 띠고 있다. 그 맛은 캐나다의 메이플 시럽과 비슷하다. 따라서 이름도 ‘울릉 메이플’이다. 고로쇠 특유의 홍삼 향이 마스카포네 치즈, 달콤한 화이트 초콜릿 등과 어우러지며 마치 건강해지는 기분마저 든다.

그는 아직 개척해 보고 싶은 한국의 식문화가 많다고 했다. 특히 여러 반찬을 함께 곁드는 문화가 가장 욕심난다고 했다. 이번 평양냉면의 시도도 그 일환 중 하나다. 이 외에도 만두, 김치 등 그의 시선에 포착된 음식들이다. 익숙한 음식을 어떻게 풀어낼지, 그의 다음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정식당의 새로운 메뉴 '울릉 메이플'. 울릉도에서 채취한 고로쇠를 아무런 첨가물 없이 끓여낸 소스를 마스카포네 치즈, 화이트 초콜릿, 피스타치오 등으로 만든 나무 모양의 디저트와 함께 만들어 먹는 것이 특징이다. /정식당

―정식당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달라.

“정식당은 2009년 1월 14일 개점했다. 올해로 15년이 지났다. 정식당은 한국 사람들이 매일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 문화를 요리로 재밌게 풀어내고자 하는 레스토랑이다.”

―정식당을 운영하며 어려움은 없었는지?

“시기가 좋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리만 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는 등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운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당시 한국 정부는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여러 지원 사업을 했는데, 이 덕에 언론의 한식에 대한 열기도 높았다. 오픈하자마자 여러 매체들이 취재를 오면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됐다.”

―정식당은 뉴욕에도 지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정식 뉴욕도 처음엔 어려움이 많았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사람들의 소비가 얼어붙은 것도 그러하지만 비자 문제도 생겨 레스토랑이 오픈한 후 6개월간 내가 미국을 들어갈 수도 없었다. 또한 주변 반응도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런 우여곡절 속에서 이제는 2스타에 올라 감회가 새롭다.”

정식당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김밥'. 바삭한 김부각 안에 소고기 등 속재료와 함께 버무린 밥이 들어가 있다. 함께 나온 트러플 소스와 곁들여 먹으면 된다. /정식당

―정식당에서 추구하는 한식이 궁금하다.

“각 메뉴마다의 개성을 살리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먹는 음식에 대해 편하게 생각하는 감이 있다. 따라서 여기에 색다른 경험을 드리기 위해 고급화, 재미 요소를 메뉴에 넣으려고 한다. 정식당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맛있는 김밥’도 그렇게 탄생했다. 보통 김밥의 경우 싸놓고 난 한참 뒤에 먹어서 식감이 무른 감이 있다. 이를 바삭하게 먹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또한 시각적인 요소도 음식에선 중요하기에 그 형태에도 세심한 신경을 썼다. 아마 맛있는 김밥이 사람들 입맛을 잡은 이유로는 맛있는 것도 한몫했지만, 한국의 감성을 건드렸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감성을 건드리는 것이 왜 요리에서 중요한가.

“고객과의 공감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 정식당에서 사랑받았던 돌하르방에서 착안한 디저트도 그러하다. 돌하르방은 제주의 ‘심벌(Symbol)’로도 유명하다. 한국인은 돌하르방을 보면 제주를 떠올린다. 제주에 들려 조그마한 미니어처 돌하르방을 샀는데, 이 틀대로 한번 디저트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 많은 분들이 재밌게 봐주시더라. 여기서 얻은 교훈은 익숙한 음식이라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선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감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돌하르방에 착안해 만든 정식당의 디저트. /정식당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메뉴들은 무엇이 있는가.

“평양냉면과 고로쇠 물을 이용한 디저트인 ‘울릉 메이플’이다. 정말 기대해도 좋다. 손님 반응도 ‘역대급’이다. 평양냉면은 기존 평양냉면인 듯 아닌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따라서 고기와 잘 어울리는 트러플을 곱게 갈아 육수 위에 올리기로 했다. 이어 곁들일 수 있는 양지 수육, 방아 부추전 등 여럿 준비했다. 앞으로의 시그니처 메뉴가 될 예감이 든다. 해외엔 찬 국물 요리가 드물기에 신기해하는 반응도 많다.”

―고로쇠 메뉴는 어떤 것인가.

“새로운 미식의 경험을 주고 싶었다. 보통 고로쇠는 건강 목적으로 많이 마시질 않나. 이것을 비틀어보고 싶었다. 고로쇠를 한번 극한으로 졸여보니 정말 상상치 못한 결과물이 나왔다. 고로쇠의 단맛과 향이 극대화되며 메이플 시럽과 비슷한 맛이 나더라. 처음에 고로쇠 물을 그대로 드셔보길 권한 후, 이어 그 시럽이 어우러지는 디저트를 내온다. 함께 먹으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한식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

“각 나라의 식문화가 고유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식의 독특한 매력은 음식의 ‘마무리’를 셰프가 아닌 고객 스스로가 한다는 점이다. 서양 음식의 경우 한 접시에 음식이 담겨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은 한 음식을 시켜도 여러 반찬이 한꺼번에 같이 나온다. 메인 메뉴와 곁들어 먹을 반찬을 고르는 것부터 그 양을 조절하는 것도 손님 스스로가 한다. 손님 스스로 원하는 맛을 찾아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식문화가 아닐까.”

임정식 정식당 셰프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한식의 현재 위상은 어떠하다고 생각하는가.

“10년 전과 비교하면 매우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13년 전 미국에서 레스토랑을 오픈할 때만 하더라도 한식당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젠 뉴욕에 가면 한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한식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해외에 덜 소개된 메뉴가 한식엔 많다.”

―정식당이 미슐랭 2스타를 올해도 받았는데 소회가 궁금하다.

“식당이 여전히 운영되고 있음에 감사하다. 한국의 식문화가 빠르게 변하는 데 15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난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훌륭한 직원들을 이끌고 손님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은 날 기쁘게 한다.”

―다음 염두에 두고 있는 메뉴가 있다면 무엇인가.

“사실 만두도 선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기성 시판 만두들이 너무 잘 돼 있더라 (웃음). 좀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그렇지만 힌트를 주자면 우리 일상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메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익숙하지만 약간의 변화를 주어 좀 더 재미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철학이다.”

☞임정식 정식당 오너 셰프는

▲정식당 現 오너 셰프 ▲정식 뉴욕 現 오너 셰프 ▲SEA 現 오너 셰프 ▲곰탕 LAB 오너 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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