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숲 오아시스' MoMA, 조각 정원 [이한빛의 미술관정원]
[뉴욕=뉴시스] 이한빛 미술칼럼니스트 = 건물 속에 품은 정원을 ‘미술관의 심장’이라고 칭하는 곳이 있다. 바로 미국 미술관의 자존심,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이하 MoMA)다. MoMA의 조각정원의 공식 명칭은 애비 앤드리히 록펠러 조각정원(Abby Aldrich Rockefeller Sculpture Garden)이다. 미술관 설립을 주도한 3명의 주요 기부자 중 한 명인 애비 록펠러의 이름을 땄다. 미술관이 현재 부지에 오픈한 1939년부터 함께 하며 뉴욕의 가장 사랑받는 녹지공간으로 꼽힌다. 그 배경에는 정원을 채운 수많은 주인공들이 있다.
미술관의 탄생 그리고 세 명의 여자
아버지인 코넬리우스 뉴턴 블리스(Cornelius Newton Bliss)는 내무부 장관을 지내기도 한 섬유업의 거상이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부족 한 것 없이 성장한 릴리는 탁월한 안목으로 예술품을 컬렉션한 것으로 유명하다. 임종이 다가오자 자신의 소장품 150여점을 MoMA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중엔 폴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릴리의 기증 덕분에 MoMA는 그럴듯한 현대미술관으로의 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메리 설리반은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수학하며 미술을 전공한 뒤, 미술교사로 활동했다. 우연한 기회에 유럽에 다녀오고 나서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에 빠져들었고 이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했다. 애비 록펠러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으로 꼽히는 록펠러가의 안주인이었다. 록펠러 1세의 며느리로, 존 록펠러 주니어와 결혼했다.
마찬가지로 현대미술을 좋아했고 특히 동시대 미국작가들의 작업에 관심이 많았다. 시쳇말로 ‘미술에 미친’ 여장부 셋이 모여 미술관을 만든 것이 MoMA의 시작이다. 1929년 11월 7일, 대공황의 신호탄이 된 주식 대 폭락 사건(월가의 붕괴)으로부터 불과 9일만에 5번 애비뉴 57번가 핵셔빌딩에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MoMA의 보물들
탄탄한 재정 지원에 힘입어 MoMA에는 ‘보물’이라는 단어가 다 담아내지 못할 정도로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한 작품들이 모였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클로드 모네 ‘수련’ 연작,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앙리 마티스의 ‘댄스’, 프리다 칼로 ‘자화상’,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 잭슨 폴록의 ‘One: Number 31, 1950’등 교과서에서나 만나는 작품들이 각 층 곳곳에 포진해 있다.
막강한 컬렉션 덕분일까, 미술관의 프로그램과 운영 덕분일까. 개관 후 수십년 만에 MoMA는 현대미술의 성지가 됐다. 2022년 기준 방문객만 270만명이다. (코로나 이전 280~300만명에 달했고, 거의 회복한 상태다.) MoMA에서 전시는 ‘흥행보증수표’다. 컬렉션은 물론 30만권에 달하는 도서관 소장 도서(정기 간행물, 작가 개인 아카이브 제외), 매년 수 천 명이 참여하는 교육프로그램까지 MoMA는 현대미술 연구와 교육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때문에, 동시대 작가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전시해 보고싶은 꿈의 장소가 된지 오래다.
하루만에 설계된 조각정원
급조(?)된 정원이지만 당시의 사진을 보면 아방가르드한 느낌도 든다. 중요한 전시도 많이 열렸다. 40년대와 50년대엔 실물 크기 집이 정원에 전시됐다. 1949년엔 브로셀 마이어가 디자인한 방 2개주택이, 1950년엔 그레고리 에인이 설계한 집을 선보였다.
이렇듯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만들어진 조각공원은 미술관이 성장하면서 함께 성장했다. 1953년에는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있었다. 미술관 이사장이던 데이비드 록펠러가 (급조한 정원 대신 제대로 된 정원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 필립 존슨(Philip Johnson)에게 재설계를 요청했고, 현재까지 이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존슨은 이 공간을 ‘지붕 없는 방’(roofless room)으로 컨셉을 잡고 크게 4개 구역으로 나눴다. 계단을 통한 단차, 분수와 풀, 나무와 잡목을 통해 공간을 구분했다. 가림막도 울타리도 없지만 공간이 자연스레 나뉘며 관객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존슨은 늘 이 공간에 ‘질서’를 부여하고 싶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좋아했던 건축 공간은 이탈리아의 피아짜(piazza, 광장)이었는데 이를 미술관에서 구현했다는 평가도 있다.
벌거벗은 남녀 커플들이 점령한 정원, 쿠사마 야요이 뉴욕을 점령하다
그래서일까, 1953년 이후 정원은 현대미술에서 가장 급진적인 실험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쿠사마 야요이의 ‘죽음을 깨우는 정원의 대합창’이다. 1969년 8월 야요이는 조각 정원의 분수대에 나체의 남녀 커플 여럿을 배치하고 서로 껴안고 교감하도록 지시했다.
분수대엔 프랑스 조각가 아리스티드 마이욜(Aristide Maillol)의 ‘더 리버’(The River)가 설치되어 있었고, 공교롭게도 해당 작품도 누드였다. 누드 조각상 위에 누드 신체가 더해진 관경은 장난스럽지만 동시에 충격적인 이미지다. 쿠사마는 이 ‘해프닝’이라고 명명한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MoMA가 살아있는 예술가들의 활동이 더 필요하다며 ‘죽은 예술의 저장소’라고 비판했다. 충격적인 퍼포먼스가 전국 일간지 ‘데일리 뉴스’의 1면을 장식하며 비난 여론이 비등했는데, 그로부터 약 30년 가까이 지난 1998년 MoMA에서 열린 ‘러브 포에버: 쿠사마 야요이 1958-1968’전에선 작가의 기념비적 행적으로 평가됐다. 30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아이러니다.
이후 조각 공원은 다양한 시도를 품었다. 70년대에는 재즈 공연과 댄스 공연이 헨리 무어의 동상 앞에서 펼쳐졌고, 2007년엔 리처드 세라의 거대한 철판 조각 작품 2점이 약 1년간 정원을 장식했다. 피에르 휘게는 스위스 작가 막스 웨버의 여성 누드 조각을 캐스트 한 뒤, 머리에 꿀벌집을 설치하고 도시 양봉을 하기도 했다(2015). 아티스트 듀오 피터 피쉴리와 데이비드 바이스(Peter Fischli and David Weiss)는 자신들이 큐레이터가 되어 정원을 큐레이션 했는데, 눈사람을 만들어 냉동고에 넣고 ‘1년 내내 녹지 않는 눈사람’ 이라는 환상을 현실로 가져왔다(2018). 최근엔 흑인 여성 작가로 최초로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 대표로 선정됐던 사이먼 레이의 대형 조각상을 설치했다.
이렇듯 MoMA의 조각 정원은 시대와 호흡하며 끊임없이 박동하고 있다. ‘미술관의 심장’이라는 설명이 단순한 메타포가 아닌 셈이다. 현대미술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기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미술의 영역’을 뛰어 넘는다는 데 있다. 작가가 어떻게 배치하고 읽어내고 맥락을 부여 하느냐에 따라 일상이 예술이 되기도, 예술이 일상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유연하게 변화하고 진화하는 예술 경험은 화이트 큐브 보다는 휴식처이자 야외 전시장, 자연, 건축, 역사가 동시에 존재하는 조각 공원에 더 잘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예술이 일상생활에 파고들고 조화를 이루는 것, 현대미술이 가장 바라는 지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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