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찻집 대신 냉면집 가는 평양 사람들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2024. 8.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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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라이브러리 속의 모던 경성]평안도 출신 작가 김남천의 ‘냉면예찬’, 꿩고기 냉면이 최고
평안도 출신 작가 김남천은 '잔칫날 환갑날 생일날 제삿날 장례날 길사 경사 흉사를 물론하고 이 국수를 때로는 냉면으로 때로는 온면으로 먹어왔다'고 썼다. 냉면은 평안도 사람들의 일상 그 자체였다.

‘속이 클클한 때라던가 화가 치밀어오를 때 화풀이로 담배를 피운다던가 술을 마신다던가 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런 때에 국수를 먹는 사람의 심리는 평안도 태생이 아니고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도박에 져서 실패한 김에 국수 한냥푼을 먹었다는 말이 우리 시골에 있다. 이렇게 될때에 이 국수는 확실히 술의 대신이다.

나같이 술잔이나 다소할 줄 아는 사람도 속이 클클한 채 멍하니 방안에 처박혀있다간 불연듯 냉면 생각이 나서 관철동이나 모교(毛橋·모전교)다리 옆을 찾아갈 때가 드물지 않다.그런 때 거리에서 친구를 만나 ‘다(茶)나 마시러 갈까?’하면 ‘여보, 다(茶)는 무슨 다(茶), 우리 냉면먹으러 갑시다’하고 앞서서 냉면 집을 찾았다.’ (김남천, ‘평양잡기첩’2, 조선일보 1938년5월29일)

냉면집들은 대개 간판 옆에 종이다발을 길게 늘어뜨린 막대기를 꽂았다. 면발을 표현한 것인데, 갈개발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1936년3월9일자에 실린 아지노모토 광고. 회사측은 아지노모토를 넣어 냉면 육수를 만들면 맛이 좋아지고 경제적이라고 선전했다.

◇엄동의 냉면 맛, 일품

평안남도 성천 출신으로 평양고보를 나온 작가 김남천(1911~1953)이 1938년 5월 ‘평양잡기첩(帖)’을 여섯 차례 신문에 연재했다. 그중 두 차례가 냉면 얘기다. 평안도 사람들은 거리에서 친구를 만나면 찻집 대신 냉면집을 찾는다는 게 눈길을 끈다.

냉면은 요즘 여름 음식으로 환영받지만 이북 사람들은 겨울에 즐겨 먹었다는 얘기는 꽤 알려져있다. 김남천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냉면은 어느 계절에 먹는 음식일까? 평양이나 평안도 일대에선 점심이나 밤참은 언제나 냉면이니 사절(四節·사계절)을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이것을 애호하는 셈’이라면서도 제철은 겨울이라고 했다.

‘웬만큼 국수 맛을 아는 사람은 엄동에 오히려 냉면 맛을 향락한다. 혀를 울리는 찌르르한 ‘전동치미’국에 국수를 풀어놓고 도야지 비계 같은 흰잔디쪽위에 다대기를 얹은 것을 훅훅 들이키는 맛이란 아닌게 아니라 다른 계절에선 찾아볼 수 없는 훌륭한 미각이다.’

평안도 성천 출신 김남천은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어른들의 냉면 그릇에서 여나문 오리를 끊어 이가 서너개 나나 마나한 입으로 모밀로 만든 이 음식물을 받아 삼킨 것이 아마도 내가 냉면을 입에 대어 본 처음일 것'이라고 썼다. 조선일보 1938년 5월29일자

◇꿩고기 냉면, 못 먹어본 이는 냉면 논할 자격 없어

김남천은 ‘국수 꾸미’(국수위에 올리는 고명)로 꿩고기를 제일로 쳤다. 꿩고기 냉면을 먹어보지 않으면 냉면을 거론할 자격조차 없다고도 했다.

‘무엇무엇하여도 냉면에는 꿩(雉)이상 가는 것이 없다.꿩고기를 쳐서 동치미국에 먹어본 적이 없는 이는 냉면에 대하여 용훼(容喙·참견)할 자격이 없다. 꿩은 겨울에 나는 동물이다. 냉면 맛이 겨울에 나는 것은 이 때문도 아닌가 한다. 꿩고기쳐서 냉면을 먹어보지 못한 겨울은 나에게 있어선 지극히 불행한 겨울이다.’(이상 ‘평양잡기첩’3, 조선일보 1938년5월31일)

이정도면 냉면 ‘원조 논객’에 이름을 올려도 될 것같다.

◇보리밥만 먹다 돌아간 선친 떠올라 냉면 못 먹어

평양 냉면은 20세기 초 ‘전국구 음식’으로 널리 퍼졌다. 1917년 9월 최남선이 주재하던 잡지 ‘청춘’에 단편 ‘냉면 한 그릇’이 실렸다. 현상문예 당선작이었다. 상금은 50전. 당시 냉면 두세 그릇 값이다.

‘흐릿한 날이 우중충하게 저물어간다. 서대문안 어느 냉면집 방에는 수삼인의 손(손님)이 냉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앉았다’로 시작한 단편은 시골 출신 김승종이 서울에 일보러 왔다가 냉면 한그릇 먹는 얘기다.

김승종은 경성 토지조사국에서 일하며 야학교를 다녔으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귀향했다. 모친과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서였다. 모처럼 서울에 올라온 그가 저녁 겸 냉면을 먹으러 들어왔다가 거친 보리밥만 먹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라 수저를 놓고 나온다는 얘기가 전부다.

필자는 훗날 조선·동아·시대일보 3대 민간지 사회부장을 지낸 유광렬(1899~1981). 필명으로 유종석을 썼다.1910년대에 들어서면 서울에 냉면집이 자연스럽게 등장할 정도였다.

냉면 먹고 21명이 식중독에 걸렸다는 기사. 여름철이면 종종 볼 수있었다. 조선일보 1933년 7월23일자 기사

◇베스트셀러 ‘조선요리제법’에 등장

방신영이 1917년 출간한 근대식 요리책 ‘조선요리제법’(신문관)에도 냉면 만드는 법이 실려있다. ‘조선요리제법’은 판을 거듭하며 불티나게 팔린 일제시대 최고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다.

‘좋은 무김치 말국을 대접에 부어놓고 국수를 더운 물에 잠깐 갔다가 건져 물을 빼서 대접에 담고, 이제 맛있는 무김치와 배와 편육과 제육편육을 채쳐넣고 잠깐 섞은 후에 또 이 위에 여러가지 채친 것을 남겼다가 위에 뿌리고 또 알고명을 채치고 표고버섯 석이를 채쳐 기름에 볶아 뿌리고 실백을 뿌린 후에 설탕을 뿌려서 먹나니라.’

알듯 말듯한 옛날 어휘가 곳곳에 등장한다. ‘말국’은 ‘국물’, ‘알고명’은 계란을 풀어서 프라이팬에 얇게 부쳐 가늘게 채를 썰거나 네모나 마름모 모양으로 잘게 썬 고명, 즉 요즘말로 ’지단’이다. 마지막에 설탕을 뿌려 먹는다는 설명이 이채롭다. 요즘은 거의 없어졌지만 냉면에 설탕을 뿌려먹는 관습은 꽤 오래 이어졌다.

냉장시설이 시원찮던 시절, 냉면은 식중독 온상이었다. 냉면 육수를 검사했더니, 대장균이 득실거린다는 결과를 보도한 조선일보 1935년 8월23일자

◇대장균 꿈틀거리는 냉면

냉면이 각광받는 여름철 신문에 가장 많이 등장한 기사는 식중독이다. 냉장시설이 변변찮던 시절, 고명으로 얹은 고기나 육수가 상해 집단 식중독을 일으키는 경우가 잦았다.

‘4일 오후 1시로 3시까지 사이에 부(府)내 장별리 협성면옥에서 점심으로 냉면을 사다먹은 사람 전부가 급격한 구토설사를 일으키어 대소동을 연출중이다. 목하 평양서 위생계에서 냉면재료 전부를 운반하여다가 검사중인바 자세한 원인은 아직 알 수없으나 ‘소-다’의 분량이 많았든지 고기가 변했든지 채소가 불결하였던 관계인 듯하다 한다.’ (냉면중독으로 삼사십명이 중태, 조선일보 1933년7월6일)

‘더위를 따라 음식물이 썩기 쉽고, 썩은 것을 먹고는 중독이 빈발하는 이때에 시내 청엽정 3정목 83번지 민윤기(34)가 경영하는 해동루에서도 20일 오후1시경에 냉면을 먹고 중독이 된 사람이 모두 21명이라는 바….’(냉면먹고 21명 중독, 조선일보 1933년 7월23일)

기사에 따르면, 해동루는 2년전에도 윤성관 냉면집이라는 옥호로 영업하다 식중독 환자 20명이 발생하고 그 중 3명이 죽어 해동루로 이름을 바꿔 영업하던 중이었다. 경찰은 상한 돼지고기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냉면 식중독 원인으로 대장균을 거론하는 기사까지 등장했다.

‘여름의 음식은 무엇이나 위험하나 냉면과 어름과자에 더 위험률이 많다는 결과를 보게 되었다. 평양서에서는 냉면과 어름과자를 평남위생가에 보내어 시험해본 결과 어름과자는 118건 중에서 안전한 것은 겨우 7건, 냉면은 106건 중에서 50건이량 호할 뿐 남은 숫자의 것은 대장균이 꿈틀거리고 있어서 시험관의 눈을 둥그렇게 만들었는데, 어름과자는 마치 병균배양액과 같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평양서에서는 영업자에게 엄중 경고를 발하는 동시에 유감이 없도록 하리라 한다.’(위험한 빙과와 냉면!, 조선일보 1935년8월23일)

식중독 위험이 아무리 높아도 무더위에 입맛 잃는 여름철, 냉면의 인기를 떨어뜨리진 못했다.

◇MZ세대의 ‘냉면논쟁’

백발의 실향민이나 중년 이상의 ‘추억 음식’인 줄만 알았는데 MZ세대 젊은이들까지 ‘냉면 논쟁’이 치열하다. ‘이 희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백석 ‘국수’중)맛이 요즘 취향인 모양이다.

그래도 부모님이 평안도 출신이거나 가족력으로 북쪽과 연(緣)이 닿는 사람 앞에선 냉면 맛을 입에 올리지 않는 게 좋다. ‘네가 냉면 맛을 알어?’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백석,이효석, 채만식 외, 100년 전 우리가 먹은 음식, 가갸날, 2017

박현수, 경성맛집산책, 한겨레출판, 2022

유종석(유광렬), 냉면 한 그릇, 청춘 제10호,1917년 9월

방신영, 萬家必備 조선요리제법, 신문관,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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