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악의 구조… 그 집이 무서운 이유[정보라의 이 책 환상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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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이 있는 8월이고, 여름은 귀신 얘기의 계절이다.
조예은 작가의 '적산가옥의 유령'은 이 시기에 딱 맞는 공포 추리 스릴러다.
'적산가옥의 유령'은 여러 장르의 미덕을 갖춘 매력적인 작품이다.
대부분 관광지가 되었으므로 휴가철 끝자락을 이용해서 둘러본 뒤에 '적산가옥의 유령'을 읽는다면 더욱 생생하고 무시무시한(?)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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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일본에서 지내다가 사회생활에서 느끼는 차별과 어쩔 수 없는 타자라는 외로움 등이 쌓여가자 귀국한다. 그리고 어렸을 때 지냈던 ‘붉은 담장집’에 돌아가 살기로 한다. 이 집은 일제강점기 근방에서 유명했던 일본인 사업가가 소유했던 주택으로, 광복 후 외증조모가 소유했다가 주인공에게 물려준다. 그런데 외증조모는 주인공에게 무조건 증여한 게 아니라 반드시 1년간 그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주인공은 ‘붉은 담장집’에서 지내면서 꿈과 환각, 현실을 오가는 상태가 되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의문의 사건들을 겪게 된다.
언제나 잠겨 있던 별채의 문이 저절로 열리고 정체불명의 눈동자가 주인공을 바라보는 장면은 전형적인 공포 소설의 전개다. 독자는 주인공과 외증조모의 관점을 번갈아 들여다보며 이 귀신의 정체는 무엇이고 가네모토가 대체 어떤 짓을 저질러서 그 긴 세월 귀신이 별채를 떠나지 못하는지 추리한다. 이렇게 보면 줄거리는 고전적인 한국형 귀신 이야기의 구조를 따르는 추리 미스터리의 특징을 띤다.
별채의 사건들이 주인공에게 닥쳐오는 위험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작가는 악당의 음모를 폭로하고 앞으로 일어날 또 다른 음모와 사건을 막는 데 집중하는 스릴러 장르의 특성도 능숙하게 활용한다. 공포,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의 정교한 문법 속에서 시종일관 으스스하고 몽환적이며 불길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독자를 사로잡는다. 그러면서 건조하고 냉정한 문체와 이에 대비되는 따뜻하고 섬세한 심리 묘사가 인상적이다.
주목할 것은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통찰이다. 과거 일본제국 사람이 식민지인 조선 사람에게 저질렀던 착취와 학대의 구조는 현재 한국인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다른 나라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 불안정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지르는 사기와 살인 등 범죄의 구조와 나란히 비교된다. 그래서인지 범죄의 배후를 밝히고 유령의 한을 풀어준 뒤에도 작품의 쓸쓸한 분위기는 더욱 깊어질 뿐이다.
개인적으로 경북 포항 구룡포에 있는 일본인 가옥 거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분위기를 떠올리며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적산가옥은 현재 인천, 전북 군산, 포항, 부산 등 주로 항구 지역에 남아 있다. 대부분 관광지가 되었으므로 휴가철 끝자락을 이용해서 둘러본 뒤에 ‘적산가옥의 유령’을 읽는다면 더욱 생생하고 무시무시한(?)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정보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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