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는 네이버, 추월당한 다음…"AI 전환 골든타임 놓쳐" 경고등

배현정 2024. 8. 24.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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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토종 포털
19세기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다면, 21세기 디지털 세상에선 구글 제국의 낮과 밤이 따로 없다. 통계조사기관 스탯카운터에 따르면, 7월 기준 전 세계 91%가 구글 검색 망으로 연결돼 있다. 지역별로는 구글이 유럽 검색 망의 91.3%, 아시아의 90.9%, 아프리카에선 96.6%를 지배한다. 전 세계가 구글의 디지털 세상에서 정보를 얻고 답을 찾는 셈이다.

‘구글 천하’에서 자국 검색엔진이 의미 있는 영향력을 가진 국가는 전 세계 3곳에 불과하다. 사실상 정부가 구글 침투를 막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이다. 이 중 러시아 얀덱스는 지난달 사업을 포기하고 자산을 러시아 컨소시엄에 넘기는 절차를 마무리했다. 얀덱스는 1990년대 후반 나스닥에 상장하며 ‘러시아의 구글’로 불렸지만,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여파로 인터넷 공간의 통제권이 러시아 정부로 넘어갔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한국은 검색 시장 1위를 토종 기업이 사수하고 있는 특이한 국가다. 하지만 방심할 순 없는 상황이다. 인공지능(AI)을 앞세운 글로벌 빅테크의 공세에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 데다, 티몬·위메프 사태로 되살아난 플랫폼 규제 움직임에도 몸을 사리고 있다. 웹로그 분석 사이트 인터넷트렌드에 따르면 이달 7일 기준 국내 웹 검색 시장의 점유율은 네이버가 54.3%로 부동의 1위다. 다음으로 구글(37.6%), 마이크로소프트(MS) 빙(3.8%), 다음(3.1%)이 각각 2∼4위를 차지했다.

10대 85% “유튜브 활용 정보 탐색”
문제는 네이버와 다음이 버티는 국내 검색시장에서 구글과 빙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이다. 구글과 빙의 점유율을 합치면 41.4%다. 두 회사의 합산 점유율은 8월 들어 일일 기준 40%를 지속적으로 넘어섰다. 카카오의 다음은 이미 빙에도 따라잡혔다. 검색엔진으로서 존재감이 약해진 다음은 ‘야후처럼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위기론마저 나오고 있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네이버의 1위 수성도 위태롭다. 올해 첫날 국내 검색엔진 시장의 점유율은 네이버 62%, 구글 28.3%였다. 이때 두 회사의 격차는 33.7%포인트였다. 그런데 불과 7개월여 만에 점유율 차이는 16.7%포인트로 좁혀졌다. 올 들어 구글이 10%포인트 가까이 성장하는 동안 국내 1위 네이버는 -7.7%포인트 역성장한 탓이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검색엔진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핵심 키워드는 AI다. 구글과 MS가 생성형 AI를 검색서비스에 도입하면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MS는 지난해 초 오픈AI와 대대적인 파트너십을 발표하고 오픈AI의 챗GPT를 빙에 탑재했다. 구글은 지난해 5월 대화형 AI ‘바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 AI를 앞세운 글로벌 빅테크의 공습에 국내 포털은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하반기 거대언어모델(LLM) AI인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했지만, 시장 반응은 미온적이다. 다음은 대화형 AI 서비스를 선보이지 못했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빅테크의 AI 공습에서 눈길을 끄는 점은 또 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최고경영자)는 대화형 AI 바드의 발표 당시 “한국어와 일본어는 영어와 전혀 다른 종류의 언어이기 때문에 도전적인 과제”라며 한국어와 일본어 버전을 깜짝 공개했다. 영어를 기반으로 번역된 문장보다 그 나라의 언어로 주고받은 대화는 이용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 자국어 기반 토종 포털의 차별화는 힘을 잃게 된다. 정연승 단국대 교수는 “한국은 시장 규모는 작지만 혁신적인 문화의 중심이 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주목하는 시장”이라며 “토종 포털의 위기는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국내 포털의 ‘신뢰도’도 약화하고 있다. 네이버는 2002년 ‘네이버 지식iN’, 2003년 네이버 블로그와 네이버 카페 서비스를 내놓으며 다양한 정보와 커뮤니티 제공으로 국내 검색시장의 최강자가 됐다. 그러나 이제는 과도한 광고와 연계된 블로그와 카페글 등이 검색 신뢰도를 낮췄다는 비판에 직면해있다. 신뢰도가 최우선인 전문지식 검색에선 네이버가 구글에 크게 밀린다는 진단도 나왔다. 지난해 디지털 마케팅 플랫폼 나스미디어에 따르면 ‘전문·학술 자료 검색 시 구글을 선호한다’는 이용자(16.8%)는 네이버(8.7%)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전문가 “해외 진출 돕는 정책 필요”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검색 행태도 달라졌다. 데이터 플랫폼 오픈서베이에 따르면 ‘최근 1주일 내 정보 탐색 시 이용한 플랫폼’으로 10대의 85.4%가 유튜브를 꼽았다. 영상 검색에 환호하는 건 꼭 10대만도 아니다. 7월 기준 국내 MAU(월 활성 이용자) 1위 앱은 유튜브(4580만 명), 2위 카카오톡 (4500만 명), 3위 네이버 (4309만 명) 순이다.

지난 파리 올림픽 중계방송의 하이라이트 콘텐트 선호도 역시 1위가 유튜브(57%), 2위가 네이버(20%), 3위가 인스타그램(8%)이었다. 김현경 서울과기대 교수는 “플랫폼에서 이동 자체가 쉽고 비용이 들지 않기에 더 재미있고, 즐거운 서비스를 찾아 즉각 이동하는 멀티호밍(다수 플랫폼을 이용하는 현상)이 대세”라며 “국내 포털에서 다른 서비스로 이동했다면 그만큼 검색 효용성이 낮아졌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규제 리스크도 발목을 잡고 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플랫폼을 규제할 이른바 ‘플랫폼법’을 추진 중인데, 토종 기업 역차별만 낳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포털 때리기와 규제 리스크가 시장을 옥죄면서, 플랫폼 생태계는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신규 채용도, 신규 투자도 말라가고 있다. 올해 카카오는 신입 공채를 진행하지 않았다. 규제보다 국가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의 AI 개발업체인 AIPRM은 한국이 미국의 AI 기술을 따라잡기까지 약 447년이 필요하다고 예상했다. 규제 리스크에 몸을 사리는 사이 “AI 전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들려온다. 이대호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국 플랫폼이 경쟁력을 갖춘 곳으로 규모를 확대하고 해외 진출을 돕는 방향의 장려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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