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합작 ‘기적의 드라마’
한국인이 세운 교토국제고가 일본 고교야구 최정상에 섰다. 교토(京都)국제고는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고시엔(甲子園) 구장에서 열린 106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에서 도쿄 간토다이이치(關東第一)고와 연장 10회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2대1로 승리했다.
교토국제고는 9회까지 0-0으로 맞서다 10회초 연장 승부치기에서 안타·볼넷·희생플라이 등을 묶어 2점을 먼저 냈다. 승부치기는 2018년부터 고시엔에 도입된 제도로 무사 1·2루 상태로 공격을 시작한다. 교토국제고는 10회말 간토다이이치고에 1점을 내주고 2-1로 쫓겼지만 2사 만루에서 좌완 에이스 니시무라 잇키(17)가 삼진을 잡아내며 우승을 확정 지었다.
교토국제고는 교토 히가시야마구에 있다. 1947년 재일 동포들이 돈을 모아 세운 민족 학교 ‘교토조선중’이 뿌리다. 교토조선중은 1990년대 무렵 재정난이 닥치고 학생 수가 급감하자 한국 외교부, 재일대한민국민단 등 동포 단체들과 상의해 일본 학교로 전환하기로 했다. 2003년 일본 정부 인가를 받았고 이듬해 일본인들에게 문을 열었다. 학교 이름도 교토국제중·고교로 바꿨다. 현재 재학생 159명 중 70%가 일본인이라고 한다. 일본 정부도 매년 1억3000만엔(약 12억원)가량을 지원하고 있다. 전체 운영비의 30% 수준. 한국 정부가 연 약 16억원(40%)를 보태고, 수업료와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야구부 역시 당시 일본인 학생들을 모으기 위한 방편이었다. 1999년 야구부 창단 이후 일본 남학생 대다수는 야구부에 들어오려고 입학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고시엔 출전 야구부원들도 다 일본인이다. 여학생들은 당시 드라마 ‘겨울연가’ 등이 일으켰던 ‘1차 한류 열풍’ 영향을 받았고 최근엔 K팝 등 한국 대중문화를 동경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교토국제고 야구부는 처음엔 악전고투를 거듭했다. 1999년 같은 지역 학교와 치른 첫 경기에서 0대34 대패를 당했다. 당시 투수가 1명뿐이었다고 한다. 백승환 교장은 “첫 승리를 거둔 건 (창단) 4년 만인 2003년”이라고 전했다. 그런 야구부가 2021년부터 교토 내 70여 학교를 제치고 고시엔에 나가기 시작했고, 지난해까지 5년 연속 프로야구 신인 선발 선수를 배출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젠 고시엔 우승이라는 쾌거도 썼다. 교토 지역 고교가 (여름) 고시엔을 제패한 건 1956년 헤이안고 이후 68년 만이다.
교토국제고 주변에선 야구부 신화 배경엔 현 고마키 노리쓰구(41) 감독 헌신이 자리 잡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고마키 감독은 교토국제고 인근 교토세이쇼고 야구부 출신이다. 바로 1999년 교토국제고에 34대0 굴욕패를 안겼던 그 학교다. 당시 고마키도 선수였다. 고교 졸업 후 은행원으로 일하던 고마키는 지인 권유로 교토국제고 코치를 맡게 됐다. 갑작스러운 감독 사임으로 2008년부터 감독을 맡아 팀을 이끌었다. 원래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지만 한국(덕수중)에서 야구 유학을 온 신성현(34·현 두산 전력분석원)이 그의 열정을 불태웠다. 박경수 전 교토국제고 교장은 “(고마키 감독은) 신성현 선수의 끈기와 ‘헝그리 정신’을 보고 ‘이런 선수가 있다면 계속 지도하고 싶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다”면서 “결국 그 순간이 교토국제고 야구부를 지금에 이르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지금은 일본인 선수가 대부분이지만 그때는 일본어가 서툰 한국인 선수가 많았고 고마키는 ‘손짓 발짓’을 써가며 선수들을 가르치려 애썼다”고 전했다. 긴장을 풀게 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선수 하나하나에 맞춘 개별 훈련법이 교토국제고 야구부 약진 비결이라는 분석이다.
박 전 교장은 2017년부터 지난봄까지 재임했다. 교육부 공무원 출신으로 주오사카 한국 영사관에서 근무했을 때 인연이 교토국제고로 안내했다. 그는 부임과 동시에 야구부 개혁에 나섰다. 20년 이상 된 버스를 교체했고, 매일 아침 요리사를 고용하고 식사를 제공했다. 화장실·목욕탕 등 낡은 시설과 글러브 등 훈련 장비도 바꿔줬다. 이는 야구부 지원자들을 늘리는 효과를 낳았다. 이번 고시엔에서 에이스로 활약한 2학년 좌완 니시무라 잇키도 교토가 아닌 시가현 출신이다. 한국 프로야구 KIA 구단은 지난 3월 훈련 공 1000여 개를 교토국제고에 기증한 바 있다.
이날 고시엔 구장 3루 관중석에는 2800여 명 교토국제고 응원단이 자리 잡고 경기 내내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교토국제고 재학생은 100여 명 정도였고, 나머지는 교토 지역 다른 학교 학생들이었다. 빨간 유니폼을 맞춰 입고 트렘펫·드럼 등 악기로 응원곡을 흥겹게 연주하던 80여 명 규모 관악단은 교토국제고 인근 교토산업대부속고 학생들이었다. 지역을 대표해 나간 교토국제고를 성원하기 위해 자진 출격했다. 교토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산타다 쇼(11)군은 “친구 10여 명과 기차를 타고 왔다”며 “야구 연습을 열심히 해서 나중에 교토국제고에 꼭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가 끝나고 이날 낮 12시 30분쯤 양팀 야구단과 관객 3만여 명으로 인산인해를 이룬 고시엔 구장에 교토국제고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졌다. 고시엔 대회는 경기 후 이긴 학교 교가를 틀어주는 관례가 있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6번째 고시엔 구장에 울린 교가였다. 이날 35도 안팎 불볕더위 아래 혈전을 벌인 교토국제고와 간토다이이치고 선수들은 각각 1루와 3루에 도열해 엄숙하게 교토국제고 교가를 들었다. 교토국제고 선수들은 우렁하게 교가를 따라 불렀고, 3루 관중석 교토국제고 재학생 100여 명은 일제히 ‘KOKUSAI(고쿠사이·일본어로 국제) 2024′란 모교 이름이 빨갛게 새겨진 응원 타월을 흔들었다. 교토국제고 2학년 후지모토 우치소라는 “2021년 교토국제고가 고시엔에 처음 진출했던 경기를 보고 입학했다”며 “그라운드 동료도, 벤치 선수도, 응원석 우리들도 모두 한마음으로 싸웠다”고 했다. 3학년 응원단장 야마모토 신노스케는 “우리의 팀워크가 일본 전국 1위로 이어졌다”며 “졸업 전 우승을 보게 해준 동료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교토국제고 (여름) 고시엔 진출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21년 첫 출전 때 4강 신화를 썼고 이듬해엔 1회전에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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