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 AI, 글로벌 경제 주권국·종속국 가를 것"

오유진 2024. 8. 24.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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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토종 포털
2022년 생성형 인공지능(AI)인 ‘챗GPT(ChatGPT)’의 등장은 전 세계 플랫폼 기업에 긴장을 불어넣었다. 검색엔진 시장을 지배하던 구글의 점유율이 주춤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메타의 ‘라마’, 앤스로픽의 ‘클로드’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생성형 AI를 연달아 내놓으면서 플랫폼 시장에선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지난달 IT 리서치 업체인 가트너가 매년 내놓은 신기술 보고서인 ‘AI 하이프사이클’에 ‘소버린 AI’를 포함한 배경이다.

소버린 AI는 ‘주권을 확보한 인공지능’으로 자체 인프라, 데이터, 인력 및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사용해 AI를 구축한 국가의 역량을 의미한다. 수년 내 AI 시대가 본격화되면 소버린 AI를 보유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의 차이가 크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소버린 AI가 국가의 패권을 결정짓는 21세기 신무기가 될 것이란 게 업계의 진단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개발 중인 생성형 AI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네이버 5년간 AI 투자 1조, MS는 작년 13조
김명주 교수는 “막대한 데이터 등 한국이 가진 강점을 적극 활용할 때”라고 강조했다. 최기웅 기자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 KT는 믿음 등을 생성형 AI 시장에 내놨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AI 경쟁이 본격화하면 국내 포털 시장이 수년 내 외국 기업으로 완전히 대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22일 만난 김명주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장(서울여대 정보보호학부 교수)은 “소수의 빅테크가 시장을 장악하지 않도록 우리만의 AI 역량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며 “정부 주도의 AI 컨소시엄을 꾸려 글로벌 틈새시장을 노리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 때”라고 답했다.

Q : 소버린 AI가 왜 중요한가.
A : “AI가 예상보다 빠르게 고도화하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챗GPT, 제미나이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이 개발한 생성형 AI 기술이 사실상 글로벌 플랫폼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데, 향후 이런 기술을 스스로 개발하고 운영할 능력이 없는 국가는 패권 경쟁에서 밀려날 것이다. 산업혁명 과정에서 기술을 가진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 그래서 AI 주권 즉, 소버린 AI를 확보하려 경쟁하고 있다. 소버린 AI의 유무는 향후 글로벌 경제의 주권국이냐, 종속국이냐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Q :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A :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생성형 AI는 ‘학습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출력물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데이터에 차별과 편견이 담겨있다면 결과물 또한 왜곡된 내용이 나온다. 과거 챗GPT에게 ‘독도는 어느 나라 땅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영토 분쟁이 진행 중이라는 답변이 나온 것도 편향된 데이터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우리나라의 가치관과 역사를 제대로 학습하고, 반영하는 우리 고유의 AI(소버린 AI)가 필요한 이유다.”

Q : 주요국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A : “가장 투자가 활발한 곳은 역시 생성형 AI의 본국인 미국이다. 미국은 지난해 874억 달러(약 116조원)를 AI에 투자, 전 세계 AI 투자액의 62%를 차지하고 있다. 기업 중에서는 GPU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가 소버린 AI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타국과의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인도인데, 엔비디아와 인도는 인도어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개발하는 ‘소버린 AI 이니셔티브’를 발표해 개발 협력을 진행 중이다. 디지털 전환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은 오픈AI와 협력 관계를 구축해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자체 기술로 소버린 AI를 확보하려는 시도도 병행한다. 일본 정부는 고성능 생성형 AI를 개발하는 소프트뱅크에 내년까지 474억엔(약 4300억원)을 투자, 일본어 모델을 채택한 소버린 AI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AI 기본법 등 제정, AI 산업 진흥 필요
주요 AI기반 검색 엔진

Q : 규제·법과 같은 무형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A : “통상 신기술이 나오면 대중적으로 확산된 뒤 그를 통제하기 위한 규제와 법이 등장하는데, AI의 경우 규제와 법이 먼저 등장한 느낌이다. 선진국이 규제를 통해 AI 시대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가 깔린 셈이다. 영국은 지난해 런던 포럼에서 인공지능안전성연구소(AISI)를 영국에만 설립하겠다고 선언했고, 미국은 AI 생성물에 삽입하는 워터마크를 상무성이 직접 제작해 배포하겠다고 발표했다. ‘AI 분야의 지도자가 되는 사람은 세계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라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말이 현실화하고 있다.”

Q : 우리나라 상황은 어떤가.
A : “삼성·네이버·KT·LG·SK·카카오 등 개별 기업이 각개전투하고 있다. 한국 IT 기업은 언어 장벽 등으로 가뜩이나 해외 진출이 까다로운데, 투자 자체도 규모가 작다. 네이버의 경우 소버린 AI를 신규 먹거리로 삼아 투자하고 있지만,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비교하면 투자액과 체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네이버는 지난 5년간 AI에 1조원을 투자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13배에 달하는 100억 달러(약 13조3000억원)를 지난해 오픈AI에 투자했다. 현실적으로 접근하자면 이미 시장을 장악한 빅테크 플랫폼을 뒤집기란 역부족인 상황이다.”

Q : 정부는 2030년 AI 세계 3대 강국을 선언했다.
A : “아직 갈 길이 멀다. AI 강국으로 가려면 정부의 역할도 필수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이 세우고 있는 AI 장벽을 개별 기업이 어떻게 넘을 수 있겠나. 정부가 나서줘야 한다.”

Q : 정부의 역할은.
A : “AI 기본법 등을 제정해 AI 산업을 진흥해야 한다. 일부 주장처럼 특정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은 적합하지 않다. 막대한 세금을 투자하기보다는 외자 유치, 기업 간 협업 등을 조율하는 컨소시엄을 만들어 AI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져주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논의 중인 국가AI위원회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계가 만들어지면 기술은 부족하나 자체 언어와 문화를 가진 국가로의 수출도 가능할 것 같다.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K-컬처 등을 활용하면 중동이나 아시아·아프리카 국가와 손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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