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냄새 난다”는데 확인 안 해…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지난 22일 경기 부천 호텔 화재로 숨진 7명은 인근 장례식장 3곳에 분산 안치됐다. 23일 부천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50대 양모씨는 딸을 잃은 슬픔에 계속 눈물을 닦았다. 딸 김모(28)씨는 화재 당시 7층에 투숙했다. 7층은 불이 처음 난 층이다. 양씨는 딸의 마지막 목소리가 계속 귓속을 맴돈다고 했다. 김씨는 마지막 순간 어머니 양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호텔에 있는데 불이 났어. 더 이상 통화를 못 할 거 같아. 엄마가 내 몫까지 잘 살아야 해.”
김씨는 객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김씨는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공시생’이었다고 한다. 사고 전날인 21일이 아버지 생신이었지만 김씨는 함께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던 아이인데 창창한 나이에...” 어머니 양씨는 울먹이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투숙객도 있었다. 7층에 투숙한 대학생 A씨는 욕실에 들어가 물을 뿌리면서 1시간을 버틴 끝에 구조됐다. A씨는 젖은 수건으로 연기가 들어오는 문 틈새를 막은 뒤 욕실에 숨어 샤워기로 물을 계속 뿌렸다고 했다. 강원도 춘천에 사는 A씨는 이날 부천의 한 대학에서 실습 교육을 받기 위해 호텔에 묵었다고 한다.
이번 화재는 평일 오후 신도시 한복판 호텔에서 발생했다. 투숙객과 목격자들은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았는데도 인명 피해가 큰 이유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불은 지난 22일 오후 7시 39분쯤 호텔 7층 810호 객실에서 처음 발생했다. 이 호텔은 객실 번호가 7층이 800번대, 8층이 900번대다. 검은 연기가 삽시간에 퍼지면서 7층과 바로 위층인 8층에 인명 피해가 집중됐다. 사망자 7명도 전부 7·8층에 투숙했다. 7명 중 3명은 7·8층 객실, 2명은 8층에서 7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쪽에서 각각 발견됐다. 나머지 2명은 건물 밖에 설치한 에어매트 위로 뛰어내리다 숨졌다.
밖으로 뛰어내린 2명을 제외한 사망자 5명은 모두 질식사했다. 소방 당국은 “화재 신고를 받고 5분 뒤 구조 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7층 내부는 이미 연기가 가득했다”며 “처음 불이 난 810호 문이 열려 있어 연기가 급격하게 확산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소방은 810호에 배정된 투숙객이 “방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고 해 호텔 측이 방을 바꿔준 사실을 확인했다. 소방 관계자는 “이 투숙객이 나오면서 객실 문을 닫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호텔 측도 원인을 확인하는 등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벌집처럼 좁은 호텔 구조도 피해를 키웠다. 사고 호텔은 사람 2명이 겨우 마주 보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복도가 좁았다고 한다. 객실 창문도 작아 연기가 빠져나가기 어려웠다고 소방 당국은 전했다.
건물 양쪽에 계단이 있었지만 검은 연기가 가득 차 이용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크다. 소방 관계자는 “7·8층 투숙객 중에 스스로 탈출한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불이 난 호텔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은 것도 피해가 커진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2017년 6층 이상 건물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했는데 이 호텔은 그전인 2003년 준공됐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 호텔은 이름은 호텔이지만 모텔”이라며 “대부분 모텔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고 설치돼 있더라도 실내 흡연 때문에 꺼놓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9~2023년) 숙박 업소에서 발생한 화재 사망자는 32명이었는데 모텔에서 숨진 사람이 15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날 소방과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은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현장 감식을 실시했다. 소방 당국은 처음 불이 난 810호 객실에서 타는 냄새가 났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누전이나 에어컨 과열 등 전기적 요인으로 불이 났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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