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에 필수"…미·중·러 스텔스 전략폭격기 경쟁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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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전폭기 개발전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중국·러시아 등 3대 핵보유국의 차세대 스텔스 전략폭격기 개발 경쟁이 뜨겁다. 전략폭격기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함께 핵전쟁을 수행하는 3대 무기체계다. 적진 깊숙이 침투해 핵폭탄이나 미사일·순항미사일 등 공대지 무장으로 적의 군사 시설과 요충지의 인프라 등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요구 제원에는 공중급유 없이 장거리를 운항하는 능력과 대규모의 폭탄·발사체 적재 능력이 포함된다.
냉전이 끝나면서 관심 밖으로 밀렸던 핵무기 운반 수단인 전략폭격기는 최근 신냉전이 시작되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새로운 핵전력 확보 경쟁이 스텔스 전략폭격기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스텔스 전략폭격기는 개발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그만큼 군사적인 장점이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적진 깊숙한 곳까지 은밀하게 침투해 상대의 조기대응체계와 방공망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핵전쟁 상황에서 적의 심장부나 전쟁 수행능력이 집중된 지역에 최대한 접근해 핵탄두를 장착한 정밀유도 폭탄이나 순항미사일 등을 발사한다면 전쟁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다. 스텔스 기술 외에도 냉전 이후 확보된 공중발사드론(ALE)과 인공지능(AI) 등 각종 첨단 기술을 복합적으로 적용한다면 가공할 ‘전쟁 기계’가 탄생할 수도 있다.
스텔스 전략폭격기 개발의 선두주자는 단연 미국이다. 2014년 핵무기를 싣고 장거리를 날아가는 차세대 스텔스 폭격기인 ‘장거리타격폭격기(LRS-B)’ B-21의 개발에 나섰다. 미 공군은 2010년 당시 가격으로 대당 5억5000만 달러에 이르는 B-21 스텔스 전략폭격기를 최소 100대, 최대 200대 구매를 계획했다.
개발사인 노스럽 그러먼은 지난해 첫 시험비행을 한 데 이어 올해 안에 본격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89년 첫 시험비행을 하고 97년 첫 도입한 B-2 폭격기의 뒤를 이을 신형 전략폭격기가 35년 만에 처음으로 나오는 셈이다. 미국은 핵 폭격 능력의 우위를 유지하고 핵전쟁 억지력을 계속 확보하기 위해 초고가의 스텔스 전략폭격기를 선택한 것이다.
미 공군은 2027년부터 B-21을 실전 배치해 2040년까지 B-1과 B-2를, 그 뒤에는 B-52H까지 차례로 대체할 예정이다.
중국은 스텔스 공중 전력의 확대에 관심이 크다. 2017년에 최고속도 마하 2의 스텔스 전투기 J-20의 도입을 시작했으며, 올해 안에 300대 배치를 완료할 것으로 관측된다. 아음속 스텔스 전략폭격기인 시안 H-20 개발도 완료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양회 기간 중에 “곧 공개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니 연내 실물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전 배치는 2025년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랜드연구소는 시안 H-20이 전투행동반경 최소 8500㎞에 적재량 최소 10t의 대형 스텔스 폭격기일 것으로 추정한다.
중, H-20 손에 쥐면 한·일 안보 큰 위협
H-20 전략폭격기가 중요한 것은 중국이 추구해온 반접근·지역거부(A2/AD: Anti Access, Area Denial)라는 서태평양 영역지배전략과 관련이 크기 때문이다. A2/AD는 근해 적극 방위 전략으로, 해양세력 항공모함 등의 중국 인근 접근을 막고 이 지역을 지배 영역으로 삼는 것이 목표다. 태평양을 미국과 반분해 서태평양을 자신의 세력권으로 삼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중국이 H-20 스텔스 전략폭격기를 손에 넣으면 대만·한국·일본·인도차이나반도·싱가포르·괌이 포함된 2도련선 서쪽 전체를 공격 범위에 넣게 된다. 한·일과 미국령 괌이 중국 폭격기의 사정권에 들어가기 때문에 지역 안보 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한국·일본도 이에 대응할 무기와 대응 체계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도 스텔스 전폭기 투폴레프 PAK DA를 2027년 도입하기로 하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서방의 경제·전략물자 제재로 개발 진행에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미 저만큼 앞서가고 있는 미국을 그냥 볼 수 없다며 스텔스 전략폭격기 개발을 국가적 우선순위에 두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기술과 파괴력, 그리고 은밀성까지 갖춘 스텔스 전략폭격기는 권위주의 지도자의 업적으로 내세우기에 그저 그만이기 때문이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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