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살아야 할 마지막 이유
[김동식의 기이한 이야기]
발전 눈부신 딥페이크 기술
논란의 연예인들 떨고 있다
이른 낮, 회의실 문이 여러 차례 거칠게 열렸다. 이번 비상대책회의에 들어서는 사람마다 똥 씹은 얼굴이다. “그 자식 때문에 진짜!” 새 영화에 수백억 원을 투자한 최 이사의 욕설은 너무나도 타당했다. “아니 김 감독은 그 새끼 그런 거 몰랐어?” “제가 배우 사생활까지 알 도리가 있겠습니까? 알았으면 절대 캐스팅 안 했죠.” “아오 씨! 마약까지 터졌으면 이젠 완전히 끝난 거잖아. 안 그래?”
최 이사는 혹시 아닐 수도 있느냐는 기대로 담당자를 바라봤지만, 시선을 느낀 담당자는 고개를 떨궜다. “아무래도 그렇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개자식! 약쟁이 새끼가 영화는 왜 찍냐고! 하다 못해 반 년만 더 기다렸다가 잡혔으면 얼마나 좋아?” 긴 한숨을 내쉰 최 이사가 김 감독에게 물었다. “편집으로 어떻게 안 되려나? 그 왜 옛날 그 영화는 주연이 연기를 너무 못해서 분량을 5분으로 줄인 적도 있잖아.” “그놈을 편집하면 영화가 1시간도 안 남아서… 차라리 다시 촬영하는 게 낫습니다.” “미쳤어? 주인공 바꿔서 다시 찍자고? 장난하나!”
최 이사가 펄펄 뛰자 김 감독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다시 찍자는 게 아니라,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다면 살릴 수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니까 뭐 다른 방법 없냐고. 다들 뭐라도 말 좀 해봐, 어?” 모두 눈치만 보고 아무 말도 못 하던 그때, 이곳에서 가장 어린 양 매니저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제가 알아본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요.” “뭔데?” “주인공 얼굴만 다른 배우로 덮어씌우는 건 어떨까요?” “구체적으로 말해 봐.” “딥페이크 영상처럼 얼굴만 바꿔서 덮어씌우는 겁니다. AI 기술이 지금 엄청나게 올라왔습니다. 자연스럽게 나올 겁니다.”
“흠.” 양 매니저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대중들도 지금 우리 영화사 사정을 잘 알지 않겠습니까? 동정표를 받을 수 있는 불쌍한 포지션이죠. 오히려 마케팅 포인트가 될 수도 있습니다.” “비용은?” “당연히 전체 다시 찍는 것보다는 현저히 적게 듭니다. 마케팅 비용을 따로 빼서 찍는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최 이사가 제법 그럴듯하다는 생각으로 턱을 매만질 때, 김 감독이 다급히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근데 어떤 배우가 자기 얼굴만 빌려주겠습니까? 자존심이 있을 텐데요.” “욕심 내는 배우가 한 명은 있을 겁니다. 분명 화제가 될 테니까요.”
최 이사가 양 매니저에게 물었다. “현실적으로 계산해보지. 대충 얼마나 들 것 같나?” “촬영 장소는 상관없습니다. 크로마키로 얼굴만 딸 거니까요. 카메라도 몇 대 필요 없을 겁니다. 배우 몸값이랑 AI 작업비만 추가하면 되겠죠. 혹시 연기에 도움이 된다면 상대 배역들도 기꺼이 재촬영에 도움을 줄 겁니다.” “당연히 나와서 도와야지. 어때? 김 감독도 그게 편하지?” 김 감독은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최 이사는 한숨 돌렸다는 듯 의자 뒤로 몸을 파묻으며 손가락을 두들겼다. “어디 보자, 대략 3억이면 되나? 일단 해보자고. 잘하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겠어.”
최 이사가 희미하게 미소까지 짓자, 상황 정리가 끝난 분위기였다. 회의실의 모두가 안도하는 듯했는데, 오직 김 감독의 표정만 심각했다. “저기, 딥페이크를 영화에 쓰는 건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왜?” “우리 영화가 AI 딥페이크를 도입한 최초의 영화가 되는 건데, 그건 솔직히 총대를 메는 행위이잖습니까? AI 배우 문제는 몇 년 전부터 할리우드에서 꾸준히 시위 중인 문제고, 요즘은 국내 배우들도 반대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영화판에 난다 긴다 하는 배우들도 죄다 반대 서명에 참여했는데, 격렬한 저항에 부딪히지 않겠습니까?” “우린 명분이 있잖아 명분이! 배우들 눈치 볼 필요가 뭐가 있나? 그러게 딥페이크에 밀리기 싫었으면 애초에 마약을 하지 말았어야지! 걸핏하면 경찰서 들락날락. 다 자기들이 자초한 일이라고!”
결국 국내 최초의 AI 딥페이크 영화는 제작이 추진됐다. 얼굴용 배우를 섭외하고, 덮어쓰기 작업이 진행됐다. 그렇게 작업이 마무리될 때쯤, 환장할 소식이 들려왔다. “뭐라고? 마약 투약 건이 혐의 없음으로 나왔다고?” 원래 누명을 쓴 건지 대단한 변호사를 쓴 건지 뭔지는 몰라도, 주연 배우가 결국 논란에서 자유로워진 것이다. 영화 개봉만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또다시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원본대로 가느냐, 아니면 딥페이크 버전을 내느냐.
“됐어. 딥페이크가 더 흥행할 것 같으니까 그냥 그렇게 가자고. 어차피 그 자식 이미지도 안 좋으니까. 그리고 괜히 또 증거 나와서 뒤집히면 어떻게 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최 이사의 판단은 현명한 것이었다. 실제로 영화는 크게 흥행했으니 말이다. 개봉 첫날, 관객들은 놀랍도록 자연스러운 AI 딥페이크 수준에 만족했고, 배우들은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창백해졌다. AI로 대체되지 않을 그들의 유일한 명분은 도덕성뿐이라는 것을 처절히 깨달으며.
※픽션입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Interview] “S. Korea’s leap to middle power hinges on fair distribution and growth” says the former PM
- [에스프레소] 그때 제대로 사과했다면
- [특파원 리포트] 디샌티스가 내친 功臣 품은 트럼프
- [백영옥의 말과 글] [380] ‘비교지옥’을 끝내는 적당한 삶
-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62] 스위스 아미 나이프
- A new dawn for Yeoseong Gukgeuk and its unwavering devotees
- “인간은 사회의 짐, 사라져”... ‘고령화’ 질문에 폭언 쏟아낸 AI챗봇
- 트럼프 2기 앞두고…美, TSMC에 9조2000억원 보조금 확정
- 러 반정부 세력 견제하려...강제수용소 박물관 폐쇄
- 한국야구, 일본에 3대6 역전패… 프리미어12 예선 탈락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