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도서관] 풀벌레마저 지친 무더운 여름밤… 잠든 세상 살피는 건 누구일까요

이태훈 기자 2024. 8. 24.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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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자

한여름 밤, 무엇 때문에 깼니?

데버라 홉킨슨 지음 | 케나드 박 그림 | 최지원 옮김 | 책상자 | 56쪽 | 1만7500원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다. 풀벌레도 더위에 지쳐 노래를 멈춘 밤, 더위에 뒤척이다 잠든 아이는 문득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뭐가 잠을 깨운 걸까. 아이는 궁금해져 살금살금 걸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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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을 표현하는 단어들의 힘이 뭉근하다. 입체감을 과장하지 않는 간결한 그림체와 어우러져, 읽는 이의 마음도 고요한 여름 밤처럼 평화로워진다. 아이가 부엌을 지날 때 고양이가 등을 대고 잠든 식탁 위는 서늘하다. 뒷문을 열고 맨발로 나간 정원, 풀잎 위 이슬은 또르르 굴러 아이의 발을 적신다. 낯선 아이가 나타나자 귀를 쫑긋 세운 토끼의 수염은 파르르 떨리고, 나뭇잎들은 바람에 사락사락 소리를 내며 비단 손수건처럼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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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잠에서 깬 걸까? 나무는, 고양이는, 토끼는, 갑자기 컹컹 짖는 옆집 강아지는 왜?’ 꽃밭 속에 들어가 허수아비처럼 양팔을 벌려 본다. 부드러운 바람이 땀에 젖은 아이의 머리칼을 살랑살랑 흩날린다. 밤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자 바람이 그친다. 구름이 멈추고, 나뭇잎은 잠잠해지고, 토끼도 수풀 속으로 사라진다.

아이의 뒤로, 환한 빛이 부엌을 지나 계단을 타고 따라 들어온다. 노르스름하고 신비로운 달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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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깨닫게 된다. 고양이, 식탁 의자, 뒤뜰로 난 쪽문, 이웃집 개 흰둥이, 뜰에 나온 아이, 마을의 모든 집들까지…. 책의 첫 장부터 조금씩 아이보리색으로 번지며 여름밤의 세상을 물들이던 건 소근대듯 고요하게 다가온 달님의 빛이었다. 짙은 자주색과 녹색 위주의 색조가 팔레트 위에 물감을 풀 듯 한여름 밤의 색깔과 분위기를 책 속에 풀어놓는다. 천천히 음미하면 더 많은 것이 보이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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