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기일 놓쳐 전지 하루 5000개 속도전…정밀 절단 필요한 재료를 작두로
23명이 숨지고 9명이 다친 경기도 화성의 아리셀 공장 참사는 ‘무리한 공장 가동이 빚은 인재’라는 수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6월 24일 사고가 일어난 지 60일 만의 결론이다. 불량품을 정품으로 둔갑시킨 정황까지 드러났다.
경기남부경찰청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사고 수사본부는 23일 박중언(35) 아리셀 공장 운영총괄본부장과 안전보건관리 담당자 A씨(48)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별도로 고용노동부는 박 본부장의 아버지인 박순관 아리셀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박중언 본부장과 파견 업체 메이셀의 경영책임자 B씨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파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번 수사로 경찰이 입건한 피의자는 총 18명이고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구속영장을 신청한 피의자는 모두 4명이다.
경찰에 따르면 아리셀은 지난 1월 11일 방위사업청과 2·4·6·8월 총 4번에 걸쳐 34억원(30만6000여 개) 상당의 리튬전지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아리셀은 2월분을 정상 납품했으나 4월분 납품을 위한 국방기술품질원 품질 검사에선 ‘규격 미달’ 판정을 받았다. 이때 국방기술품질원은 아리셀 측의 수검용 전지 바꿔치기를 적발했다. 수사 과정에서 국방기술품질원 품질 검사를 위해 봉인한 샘플 시료 전지를 별도 제작한 수검용 전지로 바꿔치기하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도 확보됐다. 경찰은 “2021년 최초 군납 물량 수검부터 수검용 전지를 별도 제작해 검사를 통과시켰다”는 관계자 진술까지 확보했다. 아리셀이 각 군에 수년간 납품한 리튬 1차전지가 이런 ‘꼼수’로 통과한 불량품일 수 있단 의혹이 나온다.
수검용 전지 바꿔치기 적발로 납기일을 지키지 못한 아리셀은 5월 1일부터 매일 약 70만원씩 지체상금(遲滯償金)을 부담하게 됐다. 이에 6월 납기를 앞두고 아리셀은 ‘일일 5000개 생산’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 목표 설정을 박 본부장이 하고 중간 간부가 생산 직원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경찰은 이런 무리한 제조 공정과 비숙련공 대거 투입으로 제품 불량률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우레탄 망치로 리튬전지 케이스를 억지로 결합하고, 발열 전지까지 양품화한 뒤 납품했다고 한다.
정밀한 절단이 필요한 데도 작두로 리튬전지 재료를 잘라내 발열과 폭발 화재를 야기했다는 의심도 제기됐다. 게다가 참사의 전조 증상이 있었고, 위험 환경이 개선되지 않아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단 점도 확인됐다. 참사 이틀 전인 6월 22일 발열전지 1개가 폭발해 불이 났으나 생산라인을 계속 가동했다는 내용이다. 이때 폭발한 전지가 아무런 조치 없이 참사 당일 오전 9시19분쯤 3동 2층으로 옮겨졌고 1시간10분 뒤 큰불이 났다.
화재가 발생한 3동 2층 방화 구획을 허가 없이 해체한 건축법 위반 혐의도 포착됐다. 사고 발생 시 긴급조치 및 대피요령 등에 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비상구는 전지 트레이 등의 물건으로 막혀있어 희생자들이 제때 대피하지 못한 점도 조사 결과 드러났다. 사고 당일 오전 10시30분3초쯤 최초 폭발 이후 적잖은 시간이 있었지만, 출입구 반대편에서 대부분의 희생자가 나온 점이 이를 반증한다. 실제 출입문으로 대피한 마지막 직원의 대피 시각은 최초 폭발 이후 37초가 흐른 10시30분 40초쯤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화재 원인 및 인명 피해를 키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수사하던 도중 군납전지 납품 관련 업무방해 혐의를 인지했다”며 “장기간 조직적으로 이뤄진 납품 비리에 대해선 집중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성배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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