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에어매트…7층서 뛰어내린 2명 못 구했다

이보람.손성배.신혜연.이영근 2024. 8. 24.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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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호텔 화재 7명 사망
22일 화재가 발생한 부천시의 호텔에서 소방 관계자들이 깨진 창문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천 호텔 화재 사고는 미스터리의 연속이다. 지난 22일 오후 일어난 불로 7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부천 호텔 화재 수사본부는 23일 오전 경기도 부천 원미구 소재의 이 호텔에서 현장 감식을 진행했다. 우선 발화 장소로 지목된 810호 객실은 불이 났을 당시 투숙객 없이 비어있는 상태로 파악됐다. 투숙객 한 명이 들어갔다가 호텔 측에 “타는 냄새가 난다”며 객실 변경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점에 비춰 수사본부는 실화(失火) 가능성보다 누전이나 ‘에어컨 스파크’ 등 전기적 요인에 의해 불이 났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게다가 스프링클러는 아예 없었다. 해당 호텔은 9층에 객실 64개를 보유한 중형급인데도 2003년 준공돼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다. 2017년 개정된 건축 소방법상 2층 이상·연면적 500㎡ 이상, 높이 13m 이상 건축물은 반드시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지만 이전에 건축된 건물은 적용되지 않는다. 스프링클러 미설치는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마침 문이 열려 있던 810호에서 나온 유독가스와 연기는 좁은 복도를 타고 거리낌 없이 퍼질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대피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천 호텔 화재 사망자 7명은 모두 이 호텔 7~8층에 머무르고 있었다. 5명은 객실과 복도·계단 등에서 연기에 질식해 사망했다. 나머지 2명은 7층(807호)에서 소방당국이 설치한 탈출용 에어매트 위로 뛰어내리다가 숨진 것으로 파악돼 논란이 일었다.

김영옥 기자
소방당국은 22일 에어매트를 호텔 주차장 출입구 근처에 설치했다. 가로 7.5m·세로 4.5m·높이 3m 크기로, 10층(30m) 이하에서 뛰어내려도 살 수 있도록 제작된 인명 구조 장비다. 공기가 주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126㎏이나 나간다.

7층 객실에 있던 남녀 2명은 불길과 연기가 퍼져 상황이 급박해지자 차례로 에어매트 위로 뛰어내렸다. 먼저 몸을 던진 여성이 건물 방향 안쪽 에어매트 가장자리로 떨어졌다. 이 순간 에어매트가 마치 딱지처럼 뒤집혔고 여성은 퉁겨져 바닥에 부닥쳤다. 곧바로 남성이 뛰어내리다가 에어매트가 뒤집히며 생긴 빈 공간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일각에선 처음부터 에어매트가 제대로 설치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김경진 기자
이번에 뒤집힌 에어매트는 지난 2006년 지급됐다. 공기안전매트의 사용 가능기한은 7년이다. 이에 대해 경기소방 관계자는 “에어매트의 사용 가능 기한이 지났어도 심의를 받아 재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과 같이 고층에서 에어매트를 사용하는 것이 애초부터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동현 가천대 소방방재학과 명예교수는 “공기안전매트는 높이가 올라갈수록 뛰어내리면 정확한 위치에 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높은 건물에서는 최후의 구조 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실제 현행 소방청 고시에서도 5층 높이 수준인 15m 이하 용도의 공기안전매트에 대해서만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의 성능인증이 이뤄지고 있다. 그 외 규격의 공기안전매트의 경우 민간시험 인증기관을 통한 자체 성능시험 등을 거쳐 판매된다. 소방청의 소방장비표준규격 역시 16m 이하 높이에서 사용되는 매트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다만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고층 건물에서 불이 났고 별다른 구조 대안이 없을 때 에어매트라도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 남녀 2명은 구조될 기회를 안타깝게 놓쳤지만, 바로 앞 객실 806호에 투숙했던 20대 여성은 기지를 발휘해 극적으로 생존했다. 이 여성은 병원 실습을 위해서 부천을 찾은 지방 소재의 한 대학 간호학과 학생이다. 그는 취재진에게 “방문을 열어보니 복도 전체가 회색 연기로 가득 차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며 “밑에서 불이 난 것 같아 내려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화장실로 들어가 수건으로 입을 막으면서 샤워기 물을 틀어 머리 쪽에 댔다고 한다. 결국 기절했지만, 화재 이후 수색에 나선 소방대원에 의해 구조됐다. 이 여성의 모친은 “딸이 간호학과 수업 등을 통해서 일산화탄소가 물에 녹는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렇게 행동했다”고 설명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이 간호학과 학생의 대처 방법에 대해 “열기와 연기를 조금이나마 차단하는 효과는 있었을 것”이라며 “최선의 선택은 아니지만,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화마(火魔)에 휩싸여 숨진 7명의 유족은 각각 부천 성모병원·순천향병원 등으로 황급히 모였다. 한 사망자의 어머니는 “아니야, 아니야 우리 애가 아니야”라며 주저앉았다. 급히 달려온 친구는 “나랑 오늘 운동하기로 했잖아. 여기 있으면 어떡해”라며 눈물을 쏟았다. 그런 친구의 등을 어머니가 다독여 주기도 했다. 한 유족은 “사고 당시 (소방에서) 사다리차를 신속하게 동원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오열했다.

이보람·손성배·신혜연·이영근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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