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형자가 겪는 고통 지나치면 교화보다 적개심 더 키울 우려
[정 변호사의 ‘죄와 벌’] 숨 막히는 과밀 교도소
사람들은 대개 죄를 지은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일에만 관심을 둔다. 나도 판사일 때 그랬다. 그러다 법무부에서 일하면서 교도관들을 만나보니 이들은 정반대로 수용자들을 언젠가는 사회로 돌려보낼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 이들에게 배운 것 중 하나가 ‘교도소는 감옥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감옥은 수형자를 도망가지 못하도록 가두어 두는 곳인 반면 교도소는 과학적, 합리적 방법으로 수형자를 ‘교화’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교도소를 ‘감옥’이라고 부르면 교도관들이 달가워하지 않는다. 감옥은 오로지 고통을 주는 것이 목적이었던 구시대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무리 죄인을 교도소에 오래 보내더라도 사형수나 무기수가 아닌 이상 그들은 영원히 교도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사회로 돌아와서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게 된다. 그러니 감옥에 오래 보내는 것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사회로 돌아왔을 때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교도소에 들어간 사람이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을 낮출 수 있을까. 사람들은 대체로 교도소 수형자들이 상당한 고통을 겪으면서 지내기를 바라는 것 같다. 갚아야 할 죗값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같은 입장이다. 교도소 생활이 결코 편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피해자의 인권이나 감정이 범죄자의 인권이나 감정보다 더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이 그저 고통을 겪게만 하는 것이 왕도일지, 그들이 아니라 선량한 시민들을 위해서 보다 이로운 길인지는 조금 다각도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령, 수형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는 요즘같이 더운 여름이다. 감방에는 선풍기가 한 대 정도 있는데 새벽에는 끈다. 더위가 더 문제가 되는 이유는 현재 교도소가 심각한 과밀수용상태이기 때문이다. 2023년 8월 기준 교도소 정원은 4만9600명인데 실제 수용인원이 5만8133명으로서 수용률이 117.2%다. 현재 대략 1평(3.3㎡)이 조금 넘는 4㎡ 면적의 거실에 2명이, 3평 남짓한 거실에 5~6명이 지낸다. 거실 안에 화장실도 있어야 하므로 실제 생활공간은 더 좁다. 잠을 잘 때도 옆 사람과 딱 붙어서 자기 때문에 서로 쳐다보면 불편해서 두꺼운 종이로 칸막이를 만들어놓고 자기도 한다. 여름에는 사람이 열과 냄새를 뿜어내므로 사람이 존재 그 자체로 미워진다고들 한다. 그러니 쉽게 짜증이 나서 수형자 간에 다툼도 많아진다. 과밀수용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도소를 더 지어야 하는데 교도소를 반기는 곳이 없어 어렵다. 교도소가 덥다, 좁다 하는 말은 국민들에게 분노만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교도관들의 말을 들어보면 과밀수용이 심하면 교정 프로그램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수형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이 지나치게 크면 우리 사회나 정부에 대한 적개심이 커져서 출소하자마자 범죄를 저지를 유인이 높아진다고도 한다.
필자가 구유고슬라비아 전범을 재판하는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유엔 국제형사재판소(ICTY)에 파견 근무를 할 때 이런 말이 있었다. “헤이그에는 두 개의 힐턴이 있다, 하나는 시내에 있는 진짜 힐튼 호텔이고, 또 하나는 유엔의 감옥인 UNDU(UN Detention Unit)을 가리킨다. UNDU의 독방에는 침대·책상·세면대·화장실·TV·컴퓨터가 있고, 일과 중에는 수감자들이 다른 수감자들과 휴게실에서 TV를 보거나 농구를 하거나 영어나 컴퓨터 강좌를 듣거나 취미활동을 한다. 각 층에 공중전화가 있어서 수감자 가족 등에게 전화를 걸 수도 있다. 면회는 한 달에 7일간 가능한데 1회 면회는 8시간까지 허용된다(우리나라는 10분이다). 배우자가 오면 한방에서 같이 지낼 수도 있어 수감 중에 아이를 얻은 피고인도 있다. ‘인종청소’와 같은 제노사이드를 저질러서 결국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스릅스카공화국의 전 대통령 라도반 카라지치가 자신이 먹는 음식이 거의 다 전자레인지로 데운 것이라 건강에 해롭기 때문에 자연식을 달라는 신청을 해서 열린 재판을 직접 지켜보기도 했다(결과는 물론 기각).
호텔 같은 노르웨이, 심리 치료하는 독일
한편, 독일의 슈발름슈타트 교도소에서는 수형자에 대한 집단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리치료 전문가가 인도하는 가운데 10명 안팎의 수형자들이 함께 모여서 충돌과 갈등이 일어나는 상황을 상정하고 역할극을 하거나 그 상황에 대한 의견이나 감정을 서로 나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자기가 앉으려고 하는 의자에 무례하게 발을 올려두고 있을 때 그에게 분노를 표출하거나 위협하지 않고 의자에 앉는 것을 한 명씩 돌아가면서 시도하게 하고 그의 행동에 대해 다른 수형자들이 소감을 말하도록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범죄자 가족이나 피해자의 입장도 생각해보도록 한다.
노르웨이·유엔·독일 교도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런 시스템을 우리가 그대로 도입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피해자 가족은 극심한 고통에 평생 시달리는데 살인범은 최신식 시설에서 편하게 지내는 것이 ‘정의’의 관점에서 옳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수준의 교도소는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죄인을 교도소에 오래 보내고 고통을 가하기만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가령 교도소에서의 일상은 엄정한 규율 속에서 살아가게 하더라도, 직업교육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이루어지면 좋을 것이다. 현재 우리 교도소에서도 제빵·제과·용접·미용·보일러시공 등 직업훈련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대상자나 횟수, 교육하는 기술의 수준 등의 측면에서 제한이 많다고 한다. 예산, 시설 등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원하는 수형자에게 보다 고급 기술을 취득할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확대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어야 재범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범죄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선량한 시민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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