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방송 정쟁에 과학은 실종…상임위 분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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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개원 3개월에 과학기술 법안 처리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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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방위, 거대 야당 밀어붙인 방송 4법만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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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과학 상임위에 세부 소위원회도 있어
여의도에서 과학기술이 실종됐다. 지난 5월 말 22대 국회가 개원한 이후 지금까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에 과학기술 관련 법안은 단 한 건도 처리되지 않았다. 과방위가 방송 4법 강행처리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 등 여야 간 극심한 정쟁에 매몰된 탓이다. 개원 후 지금까지 114건의 법안이 과방위에 계류됐지만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야당이 밀어붙인 방송 4법이 전부다. 지난 3개월 동안 과방위 전체회의가 18차례 열렸지만, 과학기술법안 소위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인공지능(AI)기본법, 소프트웨어진흥법, 전기통신사업법 등 과학기술과 산업 육성에 필수적인 법안은 물론, 25조원 규모의 과학 분야 연구개발(R&D) 예산 심사도 철저하게 외면받고 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라는 이름의 순서에서 알 수 있듯이 과방위의 우선적 기능은 과학기술 정책이다. 국가 미래와 직결되는 과학기술을 최우선으로 다루자는 뜻이다. 과방위 소관 기관의 분포를 보면 이런 취지가 더욱 명확해진다. 과방위 전체 산하 81개 기관 중 과학기술 관련이 90%를 차지하는 반면 방송 및 통신 분야는 10%인 8개에 불과하다. 10%가 90%를 무력화하고 있는 셈이다.
방송을 둘러싼 과방위 내 소모적 정쟁과 이로 인한 과학기술 외면은 22대 국회만의 일은 아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과학기술과 방송이 한 상임위에 묶여 있는 기형적 구조 때문이다. 가령 22대 국회 과방위원 20명 중 언론인 출신이 절반을 넘는 11명에 달한다. 반면 과학기술인 출신 의원은 3명에 불과하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지난해 민주당에 의해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후보자로 추천됐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임명 거부로 결국 사퇴했을 정도로 여야 갈등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중심을 잡아야 할 위원장부터 이런 판에 과방위에서 차분하고 생산적인 과학기술 정책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주요 선진국들은 의회에서 과학기술을 독립적으로 다루거나, 다른 분야와 묶더라도 과학기술에 중점을 두고 있다. 미국 하원에는 ‘과학우주기술위원회’(Committee on Science, Space, and Technology)라는 이름의 상임위가 있고, 그 아래에 에너지, 환경, 연구 및 기술, 우주항공 등 특화된 소위원회들을 두고 있다. 일본은 중의원(문부과학위)과 참의원(문교과학위) 모두 과학을 교육과 같이 담당하고 있으며, 방송 관련 정책은 총무위원회가 심의·감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17, 18대 국회에선 과학과 방송을 별도의 상임위에서 다루기도 했다.
의회에서 여야 간 정쟁이 벌어지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국가 미래가 위협받을 지경에 이른다면 곤란하다. 이참에 국회는 과학기술을 독립 상임위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마침 제약회사 연구소장 출신인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비례 초선)이 과학과 방송을 분리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미디어위원회를 새로 만들어 과방위에서 방송 분야를 떼어내자는 내용이다. 최 의원은 “상임위원회 운영이 방송통신에 집중돼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심의 기능이 약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같은 당 안철수 의원도 “방송 이슈로 여야 간 극심한 대립이 이어지면서 과학기술 입법 논의가 소홀해지고 있다”고 동조했다.
정쟁에 치이는 과학기술 정책 및 법안을 이대로 둘 순 없다. ‘쟁점 법안이 더 급하다’는 변명은 국회의원의 책무를 잊은 말이다. 잘못된 제도를 바꾸라고 정치가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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