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물 튀김에 표고밥…힐링 밥상 ‘자작자작 산채반’

2024. 8. 24.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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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
‘자작자작 산채반.’ 인제 자작나무 숲 마을 한 음식점의 메뉴 이름이다. 이전에 없던 창작요리다. 여러 사람이 힘을 보탰지만, 실질적으로는 한 사람이 주도한 작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유작(遺作)이 되고 말았다.

산나물을 기존 방식과 다르게 요리해서 젊은 소비자들이 더 쉽게 접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인제 지역에는 나물이 많은데 경제성이 문제다. 값도 제대로 못 받고 도매시장에 넘기거나 택배판매, 혹은 집에서 소비하는 게 고작이다. 지역 산채 음식점 8곳의 산나물 메뉴도 전국이 다 비슷한 정식 아니면 비빔밥이라 차별성이 없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고 ‘인제, 산나물을 다르게 하다’라는 슬로건 아래 민관합동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천혜의 산나물 특구, 한 해 100t 수확
인제 특산물인 산나물과 명란젓을 색다르게 요 리해 보자고 여러 사람이 뜻과 기술을 보태 개발한 ‘자작자작 산채반’ 한상차림. [사진 이택희]
인제군은 설악산·점봉산·방태산 등 해발 1400m가 넘는 고산과 준령으로 둘러싸여 면적의 90% 이상이 산지이며, 숲이 울창한 청정지대다. 휴전선을 끼고 있는 남한 최북단 지역이기도 하다. 자연이 잘 보전된 산에 저절로 자라는 나물들이 지천인 천혜의 산나물 단지를 지식경제부는 2011년 산나물 특구로 지정했다. 재배 나물도 72ha 면적에서 한 해 100t을 생산한다. 주요 작물은 취, 곰취, 산마늘, 파드득나물(시장 명칭은 참나물), 눈개승마, 아스파라거스, 더덕, 두릅, 땅두릅 등이다.

음식평론가 황광해(1957~2024) 선생은 기후와 생태 위기가 점점 고조되는 문명사적 전환기에 미래 대안식품이자 건강식품으로 떠오른 나물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2019년에는 서울 살림을 접고 인제로 생활 근거를 옮겨 산나물연구소를 차렸다. 음식평론가로서 나물과 남한 최북단 지역 특산 식품 연구에 여생을 바치기로 작정한 것이다. 특히 지역 농림산물의 소비자 접점 확대와 다변화를 통해 농촌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는 방안을 여러 갈래로 고민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건강에 위기가 왔다. 병원에서는 회복이 어렵다는 절망적인 판정까지 했지만, 기적처럼 깨어났다. 인제로 돌아오자 몸이 온전하지 않은데도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산나물 음식 개발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방향은 정해져 있었다. 산나물과 인제 특산물로 색다른 요리를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나 미래세대가 좋아할 만한 메뉴를 개발한다.

황 선생 아이디어로 창작에 들어간 음식은 산나물 튀김과 용대리 명란젓 덮밥 한상차림이다. 두 가지 핵심과제를 풀어야 했다. 조리 기술과 기술을 익혀 판매할 식당이다. 기술은 황 선생이 친한 요리사를 재능기부 수준으로 동원했다. 원료에 집요한 일식 요리사로 경기도 이천에서 ‘우동 선’을 운영하는 김장용(61) 대표다. 음식점은 인제군 마케팅센터에서 군내 업소를 대상으로 공모해서 한 곳을 뽑았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황 선생과 김 대표 중심으로 네 차례 조리 테스트를 거쳐 음식의 틀을 잡고, 선정된 음식점 요리사에게 세 차례 기술지도를 했다.

지난 3월 24일 그 음식점에서 첫 시식회가 열렸다. 음식을 업으로 삼은 여러 분야 관계자 40여 명이 모였다. 그 자리에 참석했다. 5월 2일에는 식품 전문가 20여 명이 참석한 2차 시식회를 했다. 시식회 의견들을 반영해 최종 조율과 테스트를 거쳐 5월 24일 처음 손님에게 상을 차려냈다. 음식 이름도 창작했다. 여러 후보 가운데 자작나무 숲이라는 장소성과 튀김이 입 안에서 부서질 때 나는 소리의 의성어를 연결해서 지은 ‘자작자작 산채반’을 황 선생이 낙점했다.

튀김 기름기 싫으면 산채 장아찌 덮밥
‘자연 담은 고기밥상’의 김학묵 대표가 산나물을 튀기고 있다. [사진 이택희]
8월 2일 찾아가 다시 맛을 봤다. 산채 튀김은 곰취, 취나물, 망초(풍년초), 가지, 표고, 더덕을 얼음 섞은 반죽 입혀 튀겼다. 덮밥은 일본식 간장소스 넣은 표고밥에 된장국물 간을 한 수란을 올리고 명란젓과 더덕 튀김을 고명으로 얹었다. 그리고 나물 장아찌 3종(곰취·산마늘·궁채), 명태회 무침, 생 곰취를 잘게 썰어 띄운 오이냉국 반찬과 간장으로 한 상을 차렸다. 재료는 인제산을 90% 이상 사용한다. 품목별 직거래 농장도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값이 1만 6000원인데,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 걸 손님들도 알아 비싸다는 말은 없다고 한다. 대신 올 때마다 먹을 수 있냐고 묻는 손님이 더러 있고, 첫선 후 3개월 만에 주력메뉴로 발돋움하고 있다고 한다.

기술을 전수받은 ‘자연 담은 고기밥상’의 김학묵(54) 대표는 산채반 수련을 거듭하다가 새로운 음식을 하나 더 창작했다. 산채반의 동생 격인 ‘산나물 장아찌 덮밥’이다. 표고밥에 여러 가지 산나물 장아찌를 넣고 일본식 간장소스와 들기름으로 비빈 다음 채 친 무·가지 볶음을 고명으로 올린다. 들기름은 익산 처가에서 농사 지은 들깨로 짜온다. 3찬에 표고된장국 곁들여 한 상을 차린다. 그날 3찬은 배추김치, 깻잎나물, 노각무침. 된장국 대신 곰취 띄운 오이냉국을 올렸다. 튀김의 기름기 싫어하는 손님들은 산채 장아찌 덮밥을 고른다고 한다.

음식점은 원대리 애견 동반 리조트인 ‘자작나무스테이’ 안에 있다. 자작나무 숲길 산책로 출발점(동시에 종점) 중 하나다. 흔히 ‘내린천’이라고 알려진 래프팅의 명소 소양강 상류에서 원대교 건너 지천 계곡을 따라 자작나무 숲 가운데로 올라가는 길에 있다. 미산계곡에서 오대산·계방산 물줄기를 모아 흐르는 내린천은 인제 현리에서 점봉산 곰배령에서 내려온 방태천과 만나 이름을 소양강으로 바꾸면서 인제읍 합강을 지나 소양댐으로 흘러간다. 이 강물이 흘러가듯 황 선생은 ‘자작자작 산채반’을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고 지난 7월 17일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전 중앙일보 기자. 늘 열심히 먹고 마시고 여행한다. 한국 음식문화 동향 관찰이 관심사다. 2018년 신문사 퇴직 후 한동안 자유인으로 지내다가 현재는 경희대 특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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