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당과 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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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든 대통령은 과소평가된 투사
지난달 고심 끝에 대선후보 사퇴
정치적 야망보다 민주주의 앞세워
한국에도 사욕 버릴 지도자 있을까
」
그러나 3년 반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그의 업적은 대단하다. 그는 기울어 가는 미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막대한 정부 재원을 인프라, 제조업, 에너지, 육아와 같은 분야에 장기 투자했다. 미국의 저명 언론인 파리드 자카리아에 의하면 이러한 투자로 5만6000개의 인프라 프로젝트를 출범시켰고, 15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2년 연속 4% 이하의 실업률을 달성했다. 이를 위해 그는 능란한 정치력을 발휘해서 코로나19부양법안, 인프라법안, 인플레감축법안, 반도체와과학법안 등 다수의 중요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획기적인 중요 법안들을 이처럼 다수 통과시킨 것은 린든 B 존슨 행정부 이래 처음이라는 평가다.
국제정치 무대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다양한 도전들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미국의 리더십을 유지해 나갔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했을 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예상과는 반대로 바이든 대통령은 단호하게 대응했다. 러시아에 미국 역사상 최강의 경제제재를 가했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러시아를 제재하는 연합전선에 50여 국가들을 규합했다.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 독재 국가들의 도전에 대응해 미국의 60여 동맹국들이나 우호 국가들과 연합하여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지탱해 나가고자 힘썼다.
위의 업적만으로도 바이든 대통령이 과소 평가되었다는 말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가 대단한 정치인이었다는 것을 보여준 더 중요한 이유가 따로 있다. 그것은 그의 후보직 사퇴 결심이었다. 트럼프 후보와의 TV 토론에서 열세를 보인 후 그에 대한 사퇴압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오로지 자신만이 트럼프 후보를 누르고 승리할 수 있다고 확고하게 믿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 21일 후보 사퇴 발표 하루 전 그는 깊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마이크 도닐론 수석 전략가와 스티브 리체티 백악관 선임고문으로부터 대선 상황을 보고받고 오랜 시간 동안 혼자 고민 후 사임을 결심했다. 그때까지도 그는 자신이 민주당 후보로 지명을 받고 대선에서 몇몇 경합주에 집중한다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승리하는 경우, 당이 분열되고 자신의 출마가 민주당 상·하원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가장 결정적인 사퇴 이유였다고 한다. 결국 그는 “당과 국가를 위하여”, “개인적인 야심을 포함한 그 어떤 것도 우리의 민주주의를 구하는 길을 막을 수 없다”며 사임했다.
사실 최근 수년간, 미국 정치와 국제 정세의 흐름은 비관적이었다. 특히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과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당선 이후 세계 도처에서 포퓰리즘, 극단주의 세력의 득세 등 ‘민주주의의 후퇴’를 보면서 세계사의 흐름이 방향을 틀었다고 생각했다. 이러다가 2차대전 직전 1930년대의 대혼란기로 되돌아가는 것 아닌지 우려가 앞섰다. 그리고 그러한 흐름의 핵심에 미국 정치의 분열과 민주주의의 후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이든이라는 한 개인의 결단이 미국 정치의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더 나아가 세계사의 흐름까지 바꿀지 궁금해졌다. 그의 결단 이후, 젊은 유색인종 여성 정치인인 카멀라 해리스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 미국 중부의 서민적이고 가식 없는 백인 남성, 팀 월즈가 부통령 후보가 되면서 증오와 분노가 아니라 관용과 즐거움(joy)의 정치를 내세우고 있다.
개인적 야심보다 당과 국가를 앞세운 바이든이라는 한 정치인의 결단으로 미국 민주주의가 활기를 되찾을까? 그로써 미국은 다시 한번 회복력(resilience)을 과시하며 상승세를 되찾을까? 그리고 이것이 전 세계에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미치면서 세계 역사의 흐름까지 바꿀 수 있을까? 한국에는 당과 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버릴 정치 지도자가 과연 있는가?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를 보며 느낀 생각들이다.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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