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반찬의 나라'와 헛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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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인이 감동하는 한국 밥상
푸짐한 낭비보다 효율성 필요
」
한국은 ‘반찬의 나라’다. 외국인들이 감탄할 만큼 식재료도 다채롭고 조리법·양념으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우리 고유의 일상식 상차림 ‘반상’은 반찬 가짓수에 따라 3·5·7·9·12첩으로 나뉜다. 여기서 첩이란 밥·국·김치·조치(국물이 적은 찌개나 찜)·장류 외 반찬을 말한다. 가장 간단한 3첩 반상만 해도 한 끼 식사에 밥을 제외한 6개의 음식이 오른다.
한국의 웬만한 식당에서 서빙하는 분들은 손님이 식탁 위 반찬 그릇을 멋대로 옮기는 걸 탐탁지 않아 한다. 축구장에서 축구선수들의 포지션이 따로 있듯, 식탁 위에는 정해진 반찬 위치가 있어서 이 대형이 흐트러져 혹여 그릇 놓을 공간이 모자라거나 남는 꼴을 싫어한다. 그만큼 늘 반찬이 많다.
지난해 10월 세계적인 아트북 출판사 파이돈을 통해 영문 요리책 『한식 The Korean Cookbook』을 출간한 최정윤·박정현 셰프가 350개의 한국 가정식과 레시피를 소개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도 반찬이다. K푸드를 세계에 소개하는 데 맹활약 중인 두 사람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식 문화의 본질 중 하나인 ‘밥’과 ‘반찬’을 제대로 소개하는 게 이 책의 진짜 가치라고 생각했다”며 “흔한 영어 메뉴판처럼 반찬을 사이드디시(side-dish·곁들임 요리)로 쓰지 않고 ‘반찬(Banchan)’이라는 한글 발음 표기와 함께 ‘밥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요리(dishes to accompany rice)’라는 설명을 붙였다”고 했다.
문제는 식사가 끝난 후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다. 공평하게 젓가락이 가더라도 반찬 가짓수가 많으면 남길 확률도 높다. 그렇다고 가짓수를 줄이는 건 억지스럽다.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운 밥상에는 구색 맞추기도 필요하다. 각자 먹을 만큼만 덜어가라고 셀프 바를 운영해도 늘 욕심이 앞선다.
지난해 전남 강진의 한 식당에 들렀다가 반찬이 너무 맛있어서 조금 더 달라고 했더니 정말 눈곱만큼만 더 주셨다. “할머니 인심, 참 야박하시네” 슬쩍 빈정댔더니 할머니가 정색하시며 한 말씀 하셨다. “밥은 서너 숟가락 남았는데 새로 내온 반찬만 많으면 뭐해. 남길 게 뻔한데 서울 사람들은 꼭 시골 인심 타령을 하더라고.”
지난 9일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방식이 전 세계에 교훈이 될 것이라며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 대부분을 가축 사료와 퇴비, 바이오가스 등으로 재활용하는 한국의 시스템을 소개했다. 현재 미국의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률 비율은 40%다. 한국은 20여 년 전부터 음식물 쓰레기를 땅에 묻는 것을 금지하고 일반 쓰레기와 분리 배출하는 것을 의무화한 덕에 재활용률이 98%에 달한다.
그런데 WP와의 인터뷰에서 조너선 크론스 미국 브랜다이스대 공학과 조교수가 말한 것처럼 “음식물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음식물 쓰레기가 덜 나오도록 해서 낭비를 줄이는 것”이다. 식재료 낭비, 가계 지출 낭비, 자원 낭비…. 후한 인심, 푸짐한 상차림도 좋지만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이제 헛인심보다 ‘먹을 만큼만 적당히’에 익숙해질 때다.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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