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발보다 귀한 검정 고무신
2024. 8. 24. 00:06
워낙 모든 게 귀하던 시절이라 새 신발에 얽힌 추억은 많다. 웬만큼 해지지 않고서는 새로 사주지도 않거니와 새로 살 때는 발이 쑥쑥 큰다는 이유로 으레 손가락 하나 들어갈 정도로 큰 걸 사주었다. 새것은 헐렁한 데다 딱딱하기까지 하니 발뒤꿈치가 까지기 일쑤였고 그러다 이윽고 신발이 발에 잘 맞을 때쯤 되면 그땐 너무 닳아서 구멍이 뚫리곤 했다. 어쩌다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친구들이 있어도 부럽지 않았다. 사실 시골에서는 고무신이 더 편했다. 물에 젖어도 탁탁 털어 신으면 그뿐이고 낡은 고무신은 낭창낭창하고 말랑말랑하여 발도 편하고 마음도 편했다. 친구들과 냇가에서 놀다가 송사리를 잡으면 물 채운 고무신에 집어넣었다가 집에 돌아갈 땐 다시 놓아주었다. 또 누구 신발이 더 빨리 흘러가는지 시합하다가 갑자기 센 물살을 만나 빠르게 떠내려가도 헌 신발일 경우엔 뒤쫓아가는 마음이 덜 다급했다. 게다가 헌 고무신은 엿장수 아저씨의 엿 한 가락과 바꿔 먹으니 마지막까지 쓸모 있었다.
사진 속 아이는 지금 새 검정 고무신을 공손히(?) 모시고 걷고 있지만 아마 이듬해에는 발에 착 맞는 헌 신발이 되어 행여 잃어버릴세라 조바심내는 일도 없을 것이다. 요즘처럼 물건 귀한 줄 모르는 이 시대엔 가질 수 없는 추억이다.
사진가 김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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