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발보다 귀한 검정 고무신

2024. 8. 24. 00: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검정 고무신, 전북 고창, 1973년 ⓒ김녕만
발보다 신발, 그땐 그랬다. 발바닥에 묻은 흙이야 닦으면 그만이지만 새 신발에 흠집이 나는 건 싫었다. 방학 내내 엄마를 졸라서 새로 산 타이어표 검정 고무신. 차마 신기가 아까워 맨발로 걸어도 날아갈 듯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검정 고무신은 생김새가 똑같아서 친구들의 신발과 바뀌기 쉽고 새것은 종종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래서 새로 고무신을 사면 신발 안쪽에 살짝 자기만 아는 표시를 해두었다. 그래도 가끔 새 신발을 신고 학교에 왔다가 신발이 없어지는 바람에 덩그러니 신발장에 남아 있는 낡은 고무신을 신고 훌쩍거리며 집에 가는 아이도 있었다.

워낙 모든 게 귀하던 시절이라 새 신발에 얽힌 추억은 많다. 웬만큼 해지지 않고서는 새로 사주지도 않거니와 새로 살 때는 발이 쑥쑥 큰다는 이유로 으레 손가락 하나 들어갈 정도로 큰 걸 사주었다. 새것은 헐렁한 데다 딱딱하기까지 하니 발뒤꿈치가 까지기 일쑤였고 그러다 이윽고 신발이 발에 잘 맞을 때쯤 되면 그땐 너무 닳아서 구멍이 뚫리곤 했다. 어쩌다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친구들이 있어도 부럽지 않았다. 사실 시골에서는 고무신이 더 편했다. 물에 젖어도 탁탁 털어 신으면 그뿐이고 낡은 고무신은 낭창낭창하고 말랑말랑하여 발도 편하고 마음도 편했다. 친구들과 냇가에서 놀다가 송사리를 잡으면 물 채운 고무신에 집어넣었다가 집에 돌아갈 땐 다시 놓아주었다. 또 누구 신발이 더 빨리 흘러가는지 시합하다가 갑자기 센 물살을 만나 빠르게 떠내려가도 헌 신발일 경우엔 뒤쫓아가는 마음이 덜 다급했다. 게다가 헌 고무신은 엿장수 아저씨의 엿 한 가락과 바꿔 먹으니 마지막까지 쓸모 있었다.

사진 속 아이는 지금 새 검정 고무신을 공손히(?) 모시고 걷고 있지만 아마 이듬해에는 발에 착 맞는 헌 신발이 되어 행여 잃어버릴세라 조바심내는 일도 없을 것이다. 요즘처럼 물건 귀한 줄 모르는 이 시대엔 가질 수 없는 추억이다.

사진가 김녕만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