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흰쌀밥 먹는 건 가속노화 쪽으로 풀 액셀 밟는 것"
‘저속노화 식사’ 전도사,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100세 시대라지만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9988234(99세까지 팔팔하다가 2~3일만 앓고 죽는다)’다. 식사법만으로 건강하게 심지어 천천히 늙을 수 있다니 귀가 솔깃해진다. 이런 대중의 심리를 반영한 듯 이달 출간한 정 교수의 『저속노화 식사법』(테이스트북스)은 저속노화 식사의 핵심과 실천법을 종합한 완결판답게 8월 첫째 주 예스24 건강·취미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일명 ‘저속노화 쌤’으로 유명한 정희원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 저속노화 식사를 ‘MIND 식사’라고도 하던데 기본 개념은 뭔가요.
A : “Mediterranean-DASH Intervention for Neurodegenerative Delay의 머리글자 조합이에요.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장수식으로 유명한 지중해식(Mediterranean) 식사와 고혈압을 예방하는 대시(DASH) 식사의 장점들만 뽑아 정리한 거죠.”
A : “초가공식품, 단순당, 정제곡물, 붉은 고기, 동물성 단백질을 줄이고 통곡물, 콩류, 푸른잎채소를 충분히 먹자. ‘이것만 먹어라’ 같은 엄격한 규칙이나 비싼 식재료도 없어요. 울타리가 넓어서 기본 원칙만 지키면 한식으로도 충분히 실천할 수 있죠.”
노화속도가 4분의 1로 느리게 진행
Q : 몸이 바로 느끼는 변화가 있나요.
A : “2023년 처음 SNS에 올렸을 때는 ‘연구에 미친 나머지 미쳤다’는 악플이 많았죠.(웃음) 그러다 따라하는 분들이 생겼는데 ‘선순환이 생겼다’는 게 공통 의견이었어요. 다리 부종이 사라지고, 코골이가 없어지고, 수면의 질이 좋아지고, 머리가 맑아지고, 집중력이 높아지고, 건망증이 개선되고, 만성질환으로 먹는 약도 줄고. 뇌의 노화와 몸의 노화는 같이 가니까요.”
Q : ‘밥’만 잘 먹어도 실천이 가능하다고요.
A : “매일 흰쌀밥을 먹는 것은 가속노화 쪽으로 풀 액셀을 밟는 것과 같아요. 소화에 무리가 없는 수준에서 백미에 렌틸콩·귀리·현미 등 다양한 잡곡을 조금씩 더해 먹으면 컨디션이 좋아지는 걸 느낄 거예요.”
정 교수는 고교시절부터 20년간 ‘식단 유랑’을 했다. 재수시절 몸무게가 90㎏까지 나갔고 매일 헬스장에서 6㎞을 뛰고 계단 오르기를 하며 2개월간 드레싱 없이 양상추·오이·당근·토마토를 주식으로 먹고 10㎏를 뺐다. 대학 학부시절에는 탄수화물·가공식품·맥주 등 몸에 나쁜 음식들을 닥치는대로 먹으며 공부하다 시험이 끝나면 단기간 다이어트로 살 빼기를 반복했다. 30대 초중반 박사과정 때는 밤 9시 퇴근길에 떡볶이·순대·맥주를 사다가 급히 먹고 그대로 쓰러져 자는 날이 많았다. 박사과정 마지막해 체중은 첫해보다 10㎏ 증가, 체지방률도 20%를 돌파했다. 서른 다섯에는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시간제한 다이어트와 케톤식(저탄고지) 식사를 더해 몇 달만에 10㎏을 감량했지만 일상에서 케톤식 식사를 유지하는 건 어려웠다. 그리고 만난 게 저속노화 식사다.
Q : 다양한 다이어트와 식사법을 직접 경험한 후 정착한 게 저속노화 식사네요.
A : “이후 제 삶이 정말 달라졌어요. 사람들과 즐길 때는 즐기고, 절제할 때는 절제할 수 있게 됐죠. 무엇보다 좋은 건 뭘 조금 더 먹으면 좋은지, 뭘 덜 먹으면 좋은지 스스로 점검할 기준이 생겼다는 거예요. 당연히 몸의 컨디션도 좋아졌죠. 이 놀라운 경험을 나만 하기 아까워 SNS 포스팅을 했죠.”
Q : 특히 렌틸콩 섭취를 강조하던데.
A : “5대 영양소가 모두 충분히 들어간 ‘완전식품’이고 개인 취향이기도 해요. 10여 년 전부터 여러 종류의 콩을 먹어봤어요. 박사과정 때는 경제적으로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어서 주식으로 렌틸콩만 먹은 적도 있어요. 통조림으로 먹다가 어느 순간 그것도 비싸서 렌틸콩을 삶아 그 위에 카레가루를 부어 먹기도 했죠. 그렇게 오랜 기간 먹었을 때 제일 몸의 컨디션이 좋았던 게 렌틸콩이었어요. 물론 다른 콩들을 먹어도 돼요. 핵심은 주 단백질 급원으로 콩이 좋다는 것. 값도 싸고 양질의 영양소들이 있고 지구도 구할 수 있는 식재료니까.”
Q : ‘지구를 구하는 식단’이라면.
A : “저속노화 식사에 꽂힌 또 다른 이유죠. 올 여름이 아주 더운데, 아마도 앞으로의 여름보다는 시원할 거예요. 가공을 많이 하는 초가공식품이나 투뿔등심처럼 비싼 식재료들은 이동과 생산에서 탄소가 많이 발생하죠. 일본의 오키나와 등 장수지역으로 유명한 곳의 공통점은 탄소발자국이 적고 인공적이지 않은 로컬 식재료들을 주로 먹는다는 거예요.”
A : “제 차가 현대 전기차 아이오닉 출고 1호차인데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은 오래전부터 고민해온 문제에요. 어려서 취미로 지구과학을 공부했는데 고등학생 때는 지구와 우주를 걱정하다 밤을 새운 적도 많아요.(웃음).”
로컬 식재료 활용은 지구도 구하는 식사
Q : 방송이나 책에선 기후위기 언급을 안 하시던데요.
A : “몇 년 전 직함 높은 386세대 선배님과 대화하다 크게 실망한 적이 있어요. ‘요즘 무슨 생각을 하나?’ 묻길래 ‘올해부터 엘니뇨가 시작이라니 여름이 계속 더워지겠죠. 정말 지구의 미래가 걱정돼서 잠이 안 오네요’ 했더니 정신 나간 놈 보듯(웃음) ‘그게 왜 문제지?’ 하더군요. 여전히 기득권을 가진 분들은 기후위기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고, 젊은 층 역시 소수를 제외하곤 무심하죠. 제가 ‘녹색 식단’을 주장하면 ‘의사가 무슨 오지랖이야, 너나 해라’ 이런 댓글들이 달리겠죠. 통계를 보면 현재 한국인은 밥보다 고기를 더 좋아하는데 이런 식습관은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지정학적 변수에 인구·산업구조 변화까지 더해지면 한국의 식량자급은 더 어려워질 테고 결국 로컬과 기후위기 극복이 답인데 다들 너무 무신경하죠.”
Q : ‘저속노화 십계명’ 중 10번째 ‘중용 지키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A : “건강하게 잘 늙기 위해 어느 정도 피할 것들을 정리한 건데 교조적으로 얽매이진 말자는 겁니다. ‘치팅 데이’처럼 일탈을 해도 좋은 게 저속노화 식사의 장점이죠.”
Q : 사실 직장인에게 고깃집 모임은 어쩔 수 없는 일이죠.
A : “‘현재 영국인의 하루 섭취 총 칼로리 중 60%는 초가공식품’이라는 통계가 있어요. 한국도 비슷하겠죠. 2016~2019년 한 연구를 보면 3년 간 주문 양념통닭의 양념이 더 달고 더 짜졌다고 해요. ‘비만촉진환경’ ‘당뇨를 만드는 환경’ ‘가속노화를 만드는 환경’이죠. 도파민을 좇는 식품회사들의 전쟁 때문에 어쩔 수 없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하면 좋겠어요. 저도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고기도 먹어요.(웃음) 대신 밥은 적게, 채소는 많이 먹으려 노력하죠. 혼자 외식을 할 때는 올리브오일을 갖고 다니다 반찬에 듬뿍 뿌려먹죠. 집에 돌아와선 고강도 유산소 운동을 하고, 채소 위주 식사를 하고. 식습관 실천은 장기전이라 ‘저속노화 십계명’ 같은 확실한 닻을 두고 언제든 다시 돌아오는 게 중요해요.”
정 교수는 “노 페인, 노 게인(No Pain, No Gain·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다)”도 이야기했다. “마라톤도, 글쓰기도 노력하는 과정에서 도파민을 얻는 건데 우리는 늘 과정보다 빠른 결과만을 원하죠. 돈으로 살 수 있는 영양제나 약을 더 믿고. 근력을 위해서는 근육 운동을, 뇌 기능을 좋게 만들려면 꾸준히 뇌를 움직여야 해요. 이런 노력들이 축적돼서 노화 속도계를 천천히 가게 하고 그동안 생을 농밀하게 즐기는 거죠.”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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