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준비 드는 시간 확 줄면서 통통해진 사람들 급격히 늘었다 [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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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규모의 경제와 비만 증가
닭둘기. 도시에 흔히 보이는 비둘기 중에서 유난히 통통한 녀석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이 다가가면 날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뛰어서 피한다. 이렇게 통통한 비둘기를 굳이 닭둘기라고 부르는 것은 과히 좋은 의도는 아닐 터. 날지도 못할 만큼 미련하게 많이 먹는다는 뜻이겠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비둘기는 과연 미련한 새일까? 아니다. 비둘기는 경제적 환경 변화를 알아챌 만큼 지능이 높다.
비둘기뿐만 아니라 모든 새들에게 있어서, 지방을 축적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존 확률에 영향을 미친다. 우선 지방층이 두꺼워지면 밤에 얼어 죽을 확률이 낮아진다. 겨울에도 밖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 새들에게 이는 무척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방 축적이 지나쳐서 몸이 무거워지면 포식자로부터 빠르게 도망가기 어렵게 되므로, 다른 동물의 먹잇감이 될 확률은 높아진다. 새의 몸무게는 이 두 가지 확률이 균형을 이루는 수준에서 결정된다. 밤에 얼어 죽지 않을 정도로 통통하되, 위험을 피할 정도로는 날렵해야 하는 것이다.
자 이제 비둘기보다 훨씬 두뇌 용량이 큰 인간의 비만 문제를 들여다보자. 도시 비둘기가 닭둘기로 변한 20세기 후반에 사람들은, 특히 미국인들은, 급격히 몸무게가 불었다. 1960년대 초 20세 이상 미국인들 중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사람들은 전체의 46%, 즉 절반 정도였다. 그런데 2010년에 이르면 전체 성인 네 명 중 세 명이 정상 체중을 넘는 상황이 된다. 33%가 과체중, 그리고 무려 42%가 비만이었다. 정도는 다르지만 다른 선진국에서도 평균 체중의 증가가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이렇게 갑자기 다들 무거워진 것일까? 비둘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현상은 의외로 단순한 비용-편익 구조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 “음식값이 싸졌으니까 더 먹는다”는 것이다. 값이 싸진 재화나 서비스를 더 많이 소비한다는 것은 경제학의 철칙이다. 너무 단순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하버드대의 데이비드 커틀러 교수 등 세 명의 경제학자가 2003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 단순한 법칙이 미국의 비만 문제 악화의 근원이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면 조리 과정에 들어가는 시간 비용이 지난 수십 년 사이에 극적으로 줄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1인 가구 비중의 증가와 함께 요즘 대형마트에는 햇반, 라면 등 상대적으로 역사가 긴 ‘인스턴트’ 식품들을 넘어서, 집에서 파우치를 뜯어 데우기만 하면 조리가 끝나는 국, 찌개 등의 즉석식품들이 넘쳐난다. 조리와 식사가 끝나고 나면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 분야에서도 혁신이 일어났다. 가족이나 친지들과 모임을 하고 나서 밤늦게까지 접시를 닦다 보면 식기세척기라는 발명품이 얼마나 고마운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미국에서 1965년에 전업주부는 식사준비와 뒷정리를 하는 데만 하루 평균 두 시간 이상을 보냈다. 30년 후인 1995년에는 이 시간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 물리적으로 힘이 덜 들뿐더러, 경제적 기회비용도 절반으로 낮아진 것이다. 결국 이렇게 시간 비용이 절약되다 보니 사람들이 뭔가 먹고 싶은 생각이 날 때마다 쉽게 먹을 수가 있게 되었고, 이것이 비만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이 기간 중 미국인들이 섭취한 열량이 높아졌는데, 한 끼에 먹는 칼로리가 많아진 것이 아니라 간식을 먹는 빈도가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재료가 싸진 것보다는 식사준비의 시간 비용이 낮아진 것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식재료는 싸졌는데 준비시간은 그대로라면 한 번에 많이 먹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식사준비 시간이 왜 이렇게 줄어들 수 있었을까? 다시 한번, 여기서도 아주 단순한 경제이론이 작동하고 있는데, 다름 아닌 규모의 경제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다. 예를 들어 김치의 생산과 소비라는 측면에서, 집집마다 김치를 담그던 상황과 요즘처럼 공장에서 만들어진 김치를 마트에서 사다 먹는 상황의 생산성을 비교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배추를 씻고 절이는 단계부터 시작해서 김칫소를 만들고 배춧잎을 한 장씩 들춰 양념 넣고 버무리고, 작업이 다 끝난 뒤 통에 나눠 넣고 새빨개진 그릇들을 씻는 것까지. 집에서 한다면 1년에 기껏해야 두세 번쯤 할 수 있는 엄청난 노동이다. 그런데 공장에서는 하루에 100명, 1000명이 먹을 김치를 만들면서 규모의 경제를 적극 활용하고, 대량의 김칫소를 뒤섞거나 만들어진 김치를 포장하는 작업 등은 기계가 사람을 대신한다. 생산성을 따져서 비교해보는 것이 거의 무의미할 만큼 격차가 심하다. 이러한 생산성 향상이 김치뿐만 아니라 우리 식생활 전반에 걸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 음식을 값싸게 대량생산하고 나면 그 음식의 맛을 유지하면서도 변질되지 않게 소비자들의 식탁에까지 이동을 시켜야 하는데, 이 분야에서도 지난 수십 년간 끊임없는 기술혁신이 일어났다. 특히 냉장보관이나 유통과 관련된 기술, 급속냉동이나 건조 기술 같은 것이 중요했고, 집집마다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이 보급된 것도 큰 몫을 했다. 이러한 기술혁신을 배경으로 식재료를 가공하는 큰 기업들이 생겨나고, 대량생산된 음식물이 널리 유통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더 짧은 시간에 식사를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생산비가 이만큼 낮아진 마당에,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많이 먹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던 셈이다.
일반적인 경제문제에서는 미덕이 되는 ‘효율성’이 비만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개념이 되었다. 20세기 후반에 식생활의 효율성이 너무 높아져서 비만이 사회문제가 되어버렸다는 것. 평균 섭취 칼로리가 과해서 ‘살 빼는 약’이 미래의 ‘게임 체인저’로 손꼽히고 있다는 것. 가히 효율성의 역설이라 부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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