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마일리지 3조인데…항공권 구매는 별따기, 사용처도 더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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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까다로운 항공사 마일리지
약 3조5000억원. 국내 대형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쌓인 미사용 마일리지 규모다(6월 말 기준). 하늘 길이 막혔던 코로나19 팬데믹 때의 영향으로 이만큼 많은 미사용 마일리지가 모였지만, 정작 사용법은 잘 모르는 소비자가 많다. 알더라도 항공사가 설정한 사용 조건이 까다로워 제때 보너스 항공권 구매나 좌석 업그레이드를 못하는 경우가 적잖다. 라운지 등의 부가 서비스, 자체 쇼핑몰이나 제휴 업체·플랫폼 등 자투리 마일리지 사용처를 소비자가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라 불만의 여론도 높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정숙영(58)씨는 최근 국내 대형항공사의 마일리지 사용을 시도했다가 포기했다. 소멸 전에 쓰고 싶은 마일리지가 있어서 여름 휴가철 해외여행에 쓰려 했는데, 알아보니 성수기엔 마일리지로 발권이 안 돼서다. 정씨는 “1년 전부터 여유 있게 예매하면 마일리지를 쓸 수 있다지만, 휴가는 갑자기 계획하는 경우가 많으니 쓰는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며 “나처럼 잘 모르는 중·장년층 이상 세대는 매년 날려먹는 마일리지가 많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이 미국 경쟁당국의 승인만 남겨둔 가운데 정씨처럼 마일리지 사용을 고민 중인 소비자가 늘고 있다. 특히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는 두 항공사의 기업결합이 확정된 후 공정거래위원회 심사로 전환율이 결정되는데, 낮아질수록 소비자에게는 손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에 대해 3월 민생토론회에서 “두 항공사의 기업결합 과정에서 단 1마일의 마일리지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겠다”고 할 만큼 초미의 관심사다.
아시아나 마일리지, 합병후 전환율 결정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두 항공사의 이연수익, 즉 미사용 마일리지는 약 3조5000억원에 달한다. 대한항공이 2조5278억원, 아시아나항공이 9758억원이다. 2019년 상반기 말보다 각각 15.2%, 38.3% 증가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항공기 운항이 제한되면서 소멸 예정 마일리지의 유효기간을 최장 3년 연장한 게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두 항공사는 2008년 7월 이후 적립한 마일리지에 대해 10년의 유효기간을 두고 있다. 하지만 마일리지 사용법을 제대로 몰라 어려움을 겪는 소비자가 여전히 많은 상황이다.
또 국내선과 국제선의 성수기 기준이 저마다 다르므로 항공사 공지를 통해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좌석 업그레이드는 운항 구간에 따라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어 여행 마니아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용처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예매 때 또는 예매 후 마일리지로 이코노미 좌석을 비즈니스 좌석 또는 비즈니스 스마티움 좌석(일등석)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대한항공도 프레스티지 좌석 등으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항공사가 운영하는 마일리지 쇼핑몰도 이용할 만하다. 대한항공 마일리지 몰에선 일용품이나 간단한 선물 등을 마일리지로 구매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도 다음 달 10일부터 자체 마일리지 몰을 도입하고 제휴 브랜드를 계속 확대할 계획이다. 항공사가 직접 운영하는 쇼핑몰 외에 제휴 업체·플랫폼도 이용할 수 있다. 대한항공 고객은 이마트와 교보문고, 11번가, 트립닷컴 등에서 돈을 내는 대신 마일리지를 쓸 수 있다. 대한항공은 최근 GS리테일과도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해 향후 GS25 편의점 등에서 마일리지를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예컨대 항공사들이 마일리지 사용처를 줄이고 있어 자투리 마일리지를 쓰기가 갈수록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은 다음 달 10일부터 모두투어와 CGV, 에버랜드, 캐리비안베이 등과의 제휴를 중단, 이들 제휴처에서 마일리지를 쓸 수 없게 된다. 대한항공도 6월 서울신라호텔 등 일부 제휴처의 서비스를 종료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다음 달 28일부터 일부 기종 운항 노선의 비즈니스 스위트 좌석 마일리지 업그레이드 서비스도 종료한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2월 마일리지 제도를 개편하려다가 여론에 밀려 기존 제도 유지를 결정했지만, 이후 마일리지를 통해 발권할 수 있는 일등석 등의 숫자가 줄어든 게 아니냐는 의문이 일각에서 나온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마일리지 구매 가능 좌석을 산술적으로 줄이지 않았다”며 “팬데믹 이후 항공권 수요가 늘어난 반면 운항 노선은 줄면서 공급 부족처럼 체감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항공사 마일리지는 소비자가 잘 모르는 사용처가 많아 각 항공사가 더 상세한 안내를 수시로 해줄 필요가 있다”며 “또 소비자 선택권을 위해 자체 마일리지 몰 상품과 제휴 업체·플랫폼을 (줄이기보다는) 꾸준히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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