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월남민, 85세의 자서전
이후남 2024. 8. 24. 00:01
이명현 지음
21세기북스
“여기가 이남인가요?” 38선 표지판을 지나서 마주친 노인에게 저자와 가족들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저자가 살던 고향은 평안북도 신의주 인근. 김일성 치하에서 감옥을 들락거렸던 아버지의 유언대로 북한을 떠나 월남민이 된 것은 1947년. 당시 여덟 살 소년은 이제 85세가 됐다.
이 책은 이명현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자서전. 김영삼 정부에서 5·31 교육개혁안을 만들고, 교육부 장관을 지낸 그의 삶은 알려진 것만으로도 극적으로 여겨지는 대목이 여럿이다. 전차표 판매나 학교 소사 같은 일을 하며 독학으로 대학에 입학한 것, 군사정권 시절 해직 교수가 된 것을 비롯해서다. 책에 보면 미국 유학 시절에는 모친의 별세 소식을 1년 뒤에야 듣기도 했다.
저자는 이런 기억들을 담담하고 간략하게 전한다. 링컨을 존경한 소년이 철학에 관심 갖게 된 과정, 아시아 처음으로 세계철학자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한 일, 김태길 교수를 도와 계간 ‘철학과 현실’을 창간하고 연구재단을 만들어 지금까지 이어온 활동 등도 담았다. 자서전과 함께 그의 85세를 기념해 나온 ‘철학과 현실, 현실과 철학’은 철학계 74명이 집필에 참여해 철학의 다양한 주제를 망라한 네 권 분량 책이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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