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동갑내기 임산부의 서로 다른 선택[오늘과 내일/김윤종]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꽃을 가져왔습니다.”
20일 세종시 조치원읍에 있는 신안저수지. 저수지 주변에는 꽃다발과 화분 등이 놓여 있다. 한 동네 주민은 “그 아기를 추모하고 싶었다”며 “자주 다니던 곳에서 비극이 발생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닷새 전인 15일 이곳을 산책하던 주민들은 저수지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영아(嬰兒) 시신이 물 위에 떠 있었기 때문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건진 아기 시신에는 탯줄이 붙어 있었다. 경찰이 일대 폐쇄회로(CC)TV 영상을 조사하자 하루 뒤 21세 김지수(가명) 씨가 자수했다. 홀로 사는 김 씨는 양수가 출산 예정일보다 일찍 터져 집에서 혼자 출산했다. 출산 후 아기가 숨을 쉬지 않아 겁이 나 저수지에 아기를 버렸다고 진술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아기 유기한 엄마, 아기 지킨 엄마
비슷한 상황의 21세 박수진(가명) 씨가 있다. 부모와 연락이 거의 끊어진 그는 서울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했다. 남자친구를 만났지만 임신을 하자 떠났다고 한다. 홀로 낙태와 출산을 고민하다가 임신 막달이 됐고, 병원에서 지난달 말 출산했다. 박 씨는 병원을 나선 후 아기를 유기하려 했다. 그러나 온라인 검색 중 미혼모 지원센터를 알게 돼 전화를 걸였다. 상담원은 즉시 박 씨가 사는 곳으로 출동해 아기를 보호하는 한편으로 박 씨를 설득하고 상담했다. 박 씨는 마음을 바꿔 최근 아기의 출생신고를 마쳤다.
동갑내기인 이들은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 등으로 출산과 양육에 갈등을 겪고 있는 ‘위기 임산부’다. 하지만 두 여성은 180도 다른 행보를 보였다. 이들의 엇갈린 결과에서 시행 한 달 된 보호출산제 등의 사각지대와 보완점이 드러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달 19일부터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기 시행됐다. 전자는 의료기관이 아기의 출생 사실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통보받는 제도다. 후자는 임신, 출산을 원치 않는 여성이 익명으로 진료를 받고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친모가 갓 태어난 자녀 2명을 살해한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등 태어난 후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아동이 방치되는 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다.
제도 시행 후 두 여성의 차이는 1차적으론 ‘공간’에서 비롯됐다. 김 씨는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집에서 홀로 출산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유기했다. 반면 아기를 버리려던 박 씨는 지원센터를 찾았고, 주변의 도움을 받았다.
보호출산 자체보다 상담이 중요
근원적으로는 ‘상담’이 이들의 차이를 만들었다. 미혼모 지원시설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이를 버리거나 입양 보내고 싶어 하다가도 막상 상담을 하면 직접 양육을 선택하는 미혼모들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보호출산제를 먼저 도입한 선진국들이 임산부가 익명 출산을 신청해도 관련 절차 진행보다 상담부터 신경을 쓰는 이유다. 2013년부터 보호출산제를 시행 중인 독일은 출산 전후로 체계적 상담과 지원에 초점을 맞춘다. 위기 임산부 발굴을 위해 비대면 인터넷 상담, 24시간 긴급상담 등을 시행 중이다. 그 결과 2014∼2018년 독일 내 위기 임산부의 40%는 상담 과정에서 익명 출산을 포기하고 직접 양육 등을 택했고, 22%만 익명 출산을 진행했다.
국내도 보호출산제 시행 후 한 달간 419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안심하긴 이르다. 상담조차 하지 못한 채 김 씨와 유사한 상황에 내몰리는 산모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 국내 미혼모는 연간 2만 명이 넘고,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 2123명(2015∼2022년) 중 최소 249명이 사망했다.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키울 수 있는 사회, 첫걸음은 위기 임산부 발굴과 상담에 있지 않을까.
김윤종 사회부장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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