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폐교서 트인 지역 회생의 '물꼬' [컬처노믹스: 이런책방]

최아름 기자, 이민우 문학전문기자 2024. 8. 23. 20:0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대한민국 문화혈관 복구 프로젝트 6편
현장 탐방 1편: 이런책방의 연결고리
인구 4만여명의 경남 하동군
폐교한 초등학교 운동장 한 켠
이런책방 만든 협동조합원들
하동 곳곳 연결하는 서점의 역할

청년은 일자리를 따라 움직인다. 서울에 일이 있으니 서울로 가고 지방에 일이 없으니 지방을 떠난다. 경남 하동은 인구소멸지역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오히려 서울에서 돌아오거나 지방을 떠나지 않은 청년들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선 책을 매개로 또다른 사람과 경제를 잇는 컬처노믹스(Culturenomics)가 한창이다. '이런책방'에 가봤다.

경남 하동에 있는 이런책방은 폐교한 축지초등학교 운동장 한켠에 있다.[사진=더스쿠프 Lab.리터러시]

경남 하동군의 인구는 올 6월 기준 4만1150명이다.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5만명이 넘던 인구가 점차 감소해 2014년 4만명대로 내려앉았고, 지금은 그것마저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단순히 사람만 줄어든 게 아니다. 하동군은 전국 기초지자체 228곳 중 57곳뿐인 소멸 고위험 지역(0.2 미만) 중 하나다. '소멸위험지수(20~39살 여성 인구수/65살 이상 인구수)'는 0.5 미만일 때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하는데, 하동군의 수치는 0.119였다(2024년 3월 기준). 노인 10명당 젊은 여성 인구가 1명이 겨우 넘을 정도로 균형이 깨져 있단 거다.

이렇게 '텅 비어가는' 지역엔 흥미로운 서점 하나가 있다. '이런책방'이다. 2023년 8월 한 폐교(옛 축지초등학교)의 운동장 한편에 둥지를 틀었다.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는 '이런책방'의 창업자는 총 6명. 그중 2명만 하동 청년이고, 나머지는 서울 등 다른 도시에서 왔다.

이들은 왜 이곳에 모인 걸까. 여섯명의 사장 중 한명인 양지영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원래는 로컬여행콘텐츠를 만드는 협동조합에 있었어요. 폐교 건물에 있었던 회사였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퇴사했죠. 그렇게 퇴사한 사람들끼리 운동장에 모여서 책을 읽다가 '책방을 하면 좋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임대료가 비쌌다면 엄두도 못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렴하게 빌려주는 '공간'이 생기니 무엇이든 저질러볼 기회가 생겼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고즈넉한 서점을 내는 건 말 그대로 해볼 만한 일이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책을 팔아서 생존하기 어렵다는 건 서점을 연 청년들도 잘 알고 있다. 책을 7000원에 받아와 1만원에 팔려고 해도 누군가가 '고객'으로 서점에 와야 한다. 하지만 하동은 인구소멸지역이다. 서점 수익으로 생존이 어렵다.

일단 돈을 안 들이는 방향으로 서점을 준비했다. 협동조합원이 된 여섯명의 사장은 책장을 직접 만들고 서점을 꾸렸다. 사장들이 꿈꾼 건 관광객에게 유명한 서점은 아니었다. 하동 사람들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곳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보시다시피 서점이 작아요. 사람 서너명 들어오면 꽉 차거든요. 그러니까 서점 앞 운동장을 많이 활용했어요. 우리끼리 플리마켓을 하려던 걸 주민들을 초대하기도 하고요."

폐교 운동장은 동네의 마당이 됐다. 때론 야외 영화관이 되기도 했다. 하동 주민들도 조금씩 '이런책방'에 관심을 가졌다. "우리가 망할까 봐 주민분들이 걱정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서 책을 많이 주문해 주기도 하셨구요. 지난번에는 지역 축제가 있어서 책을 들고 부스를 만들었어요. 거기서 만난 하동 학생들이 있는데 우리를 인스타그램에서 봤다고 좋아하더라고요. 책방에도 오겠다고 했더니 정말 아이들이 마을버스를 타고 왔어요."

하동의 이런책방이 꿈꾸는 건 이같은 '연결'이다. 주민들을 위해 일부러 중고도서 위탁판매도 시작했다. 주민들이 가지고 있던 책을 서점에 팔고, 또 그 중고책을 판 돈으로 다른 새책을 사서 본다. 책을 매개로 서로가 만난다.

"지방은 서울과 달라서 조용하고 지루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지난번에 찾아온 청소년들을 위해서 책을 재밌게 읽는 법도 가르치려고 준비 중이구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이런 게 지역에 생동감을 주잖아요. 또 도시에서 온 사람들은 '이런책방'을 보면서 이런 삶도 있구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거예요."

2023년에는 두 명의 책방지기가 하동에서 결혼했다. 서점에서 스냅촬영을 했다. 협동조합원이 모두 모여 결혼 스냅 사진을 함께 찍었다. 그 사진 속 책방지기들은 모두 행복하다. 지역소멸을 서점 하나가 막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함의는 있다.

누군가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곳'이라는 걸 알아차린다면 인구 소멸 방지의 물꼬 정도는 틔울 수 있지 않을까.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런책방엔 조금씩 사람이 모여들고 있다. 컬처노믹스(Culturenomics)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이민우 문학전문기자
문학플랫폼 뉴스페이퍼 대표
lmw@news-paper.co.kr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