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 같은 연구실서 뭘 하겠나…서울대 박차고 나온 화학교수가 향한 곳은
고분자 합성연구 최태림 교수
서울대서 스위스 ETH로 옮겨
최고대우 받는 연구자이지만
이런저런 비용 떼고나면
대학원생 챙겨주긴 역부족
스위스 연구공간 한국의 2배
박사후연구원 급여도 3.5배
최태림(47)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재료과 교수의 얘기다. 그는 지난 2022년 국내 최고 대학인 서울대의 교수 자리를 박차고 스위스 ETH로 적을 옮겼다. 국내 대학 강의를 위해 한국을 찾은 최 교수는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원생들에 대한 한국의 연구여건은 너무 열악하다”며 “이대로 가면 한국 과학계는 큰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1999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사,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 제일모직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다 2008년부터 서울대 화학부 교수로 일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연구자다. ETH에서 그를 영입하기 위해 ‘삼고초려’했다. ETH는 세계대학 순위에서 톱 수준에 위치한 학교다. 영국 QS랭킹에서는 세계 7위를 차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양자기술 석학과의 대화 시간을 위해 지난해 1월 ETH를 찾기도 했다. 최 교수는 “고분자를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해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많다”며 “저는 활용보다는 고분자를 어떻게 합성할 지를 연구하는 기초연구자”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그럼에도 최 교수의 대학원생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대학원생과 박사후연구원 등 20여명이 좁은 공간에 몰려 120cm 너비의 책상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며 “닭장에 갇혀 연구를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들에 대한 대우도 높여줄 수가 없었다. 최 교수는 “8억원이란 돈을 받았지만 간접비를 떼고 나면 실제 쓸 수 있는 6억원 정도로 많은 돈을 줄 수 있는 여력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생과 박사후연구원들에 대한 대우는 곧 교수의 연구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최 교수는 “교수 역시 뛰어난 학생들과 상호작용하며 연구의 영역이 넓어진다”며 “일방적으로 지도하는 역할이 아닌 함께 성장한다”고 말했다. 결국 그들에 대한 대우를 높여줄 수 없다보니 세계 수준에 걸맞는 뛰어난 학생이나 박사후연구원들을 영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설명이다.
ETH에서는 당장 학생과 박사후연구원들이 쓰는 공간이 2배로 늘어났다. 책상 너비도 180cm로 커졌으며 최 교수에게 할당된 연구공간 역시 서울대의 약 3배다. 박사후연구원에게 주는 급여도 한국보다 약 3.5배 높일 수 있었다. 최 교수는 “상황이 이렇다보니 저에게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는 학생이나 박사후연구원들의 수준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벌어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사태는 그에게 한국을 떠나는 일이 옳은 결정임을 더 확신케 하는 일이었다. ETH에서는 일정 연구비를 보장해준다. 연구비 제안서를 쓸 필요도 없고 경쟁하지 않고도 연구를 할 수 있다. 최 교수는 “한국에서 정교수인 연구자들도 미국 주립대 수준에서 제의가 오면 당장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한다”며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으로 떠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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