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제 수준 중앙 권한 이양, 우리 사회 퀀텀점프 하게 할 것”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이 23일 오전 특별대담을 갖고, “수도권 일극주의를 극복하고 중앙과 지방이 동행하면 한국 사회가 저성장·저출산의 늪을 벗어나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담은 한국정치학회가 이날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위기의 세계, 변환의 한국 : 미래을 위한 정치와 정책’이란 주제로 연 하계 국제학술대회 중 한 행사로 진행됐다. 한국 제1도시 서울시장과 제2도시 부산시장이 공개대담을 한 것은 처음이다. 대담은 박 시장과 오 시장의 모두(冒頭)발언, 양 시장의 토론, 질의응답 순으로 2시간30여 분간 진행됐다.
먼저 모두(冒頭)발언에 나선 박 시장은 “수도권 일극주의는 운동장을 넓게 쓰는 축구가 성공하는데 스타 플레이어 1명에 의존하는 축구를 하려는 것”이라며 “저성장, 저출산 등 우리 사회가 현재 직면한 양적, 질적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수도권 일극주의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려면 과거 정부들이 했듯 예산 찔끔, 떡 조금 나눠주는 방식이 아니라 과감하게 떡시루를 주고 권한을 넘기는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 시장도 모두발언을 통해 “전국을 4개 초광역권으로 재편하고 중앙 정부의 권한을 대거 이양, 한국 사회를 ‘퀀텀점프’(Quantum Jump,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현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장이 지방으로의 권한 이양을 국가발전전략으로 내놓은 것은 처음이다.
그는 “수도권·영남권·호남권·충청권 4개 초광역권에 국가의 행정사무·예산권을 연방제 수준으로 넘겨주고 지역 발전 전략을 재량껏 구사하게 하면 각 권역이 싱가포르·아일랜드 등과 같은 강소국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이 ‘4대 강소국 프로젝트’는 10년이 지나면 1인당 국민소득 10만달러 시대를 열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모두발언과 토론, 질의응답에서 ‘수도권 일극주의’, ‘중앙·지방 격차확대’ 문제가 많이 언급됐다. 오 시장은 “극단적으로 중앙정부는 외교·안보만 하고 나머지 권한은 지방으로 다 이양하는 정도까지 가야한다”면서 “유능한 기획재정부 공무원의 4분의 3을 지방으로 내려보내 지역발전을 이끌도록 하겠다는 등으로 발상의 획기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또 “90년대 잘 나가던 일본 반도체 산업이 하나의 회사가 전·후공정 전체를 다 하려다 망했듯이 현재의 수직적, 중앙집중적 질서 중심으로 가면 한국의 미래는 어둡다”며 “국가경영모델을 수도권 외에 확실한 거점 도시를 육성하고 그 주변 지역이 네트워킹 되는 수평적, 분산적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또 “미국은 수도권 등 전통도시 중심의 국가경영을 한 EU와 달리 조지아·네바다·텍사스 등 새로운 혁신 거점들을 만들어 왔다”며 “그 덕분에 2008년 EU와 비슷했던 미국의 GDP가 현재는 그보다 2배 이상 규모가 커졌다”고 말했다. 오 시장도 “(미국) 캘리포니아 GDP는 영국이나 프랑스보다도 높다”면서 “지역이 재량껏 발전 전략을 펼 때 강국을 제치고 경제적으로 훨씬 더 부강해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현재의 정치체제와 외교·안보 상황에 대해서도 토론이 오갔다. 대담 사회를 맡은 조화순 한국정치학회장은 “한국 정치가 선거란 민주주의의 절차적 뼈대는 남아 있지만 대의 정치 자체가 마비돼 있고, 정치인들 스스로 민주적, 제도적 절차를 무시하는 등 제도적 취약성이 굉장히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 원인과 해법에 대해 물었다.
오 시장은 “그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이해 관계가 크다면 목숨까지 걸게 된다”며 “중앙 권력을 지방으로 이양한다면, 권한을 분산시킨다면 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현재 한국 정치는 국민들을 짜증나게 만들고 있다”며 “여야가 정쟁은 과잉하고 협치는 과소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각 정당 안에 청년당을 만드는 등 청년 정치 지도자를 훈련시키고 키워내는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대안을 얘기했고, 오 시장도 “정치 인재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중국처럼 완전히 체계적이진 않지만 흐릿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보는데 좀 더 보완해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최근 광복절 기념식 사태에서 불거진 한일관계 문제와 관련, 오 시장은 “외교 관계의 기본 원칙은 국익과 실리”라며 “한일관계는 한미일 3국 관계의 역학 구조 안에서 작동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한미일 관계는 중국과의 관계를 실리적으로 풀어가는 모멘텀이 되기도 하고, 최근 실제 중국의 태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조짐이 읽혀진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일본 문제를 정치적 프레임을 걸어 옛날 방식으로 논쟁하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의 정치의 격을 한 단계 떨어뜨리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들 두 시장은 국가와 도시의 미래 비전에 대해 모두 ‘행복’, ‘삶의 질’을 꼽았다. 오 시장은 “한국의 경제력, 문화력, 군사력 등 어느 측면에서든 국제사회가 평가하는 데 비해서 국민들 스스로 느끼는 행복도는 굉장히 낮다”며 “삶의 질 1등 국가를 만드는 게 비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행복국가, 행복도시를 지향해야 한다”며 “그런 나라, 도시가 되려면 단순 복지 개념으론 안 되고 건강·의료·교육·학습·스포츠·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시설을 촘촘히 해 그 서비스를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하면서 무엇보다 그를 통해 좋은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게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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