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된 日 고시엔구장서 새 역사 쓴 한국계高

이승훈 특파원(thoth@mk.co.kr) 2024. 8. 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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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국제고, 3441팀 중 1위
결승전 연장 접전 끝 2-1 승
지역 주민·이웃학교 학생 등
수천명 달려와 폭염 속 응원
"열악한 환경서 한여름 결실"
日언론들 일제히 대서특필
尹 "기적같은 쾌거 용기 줬다"
우승기 든 교토국제고 일본 내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 학생들이 23일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결승전에서 간토다이이치고를 물리친 뒤 우승기와 상패를 들고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이날 교토국제고는 연장 10회 승부치기 끝에 2대1로 승리했다. 뉴스1

정확히 여섯 번. 올여름 일본 고등학교 야구선수들의 꿈의 무대인 '고시엔(甲子圓)' 구장에서 한국어 교가가 제창된 횟수다. 교가 제창은 경기가 끝난 뒤 승리 팀에 주어지는 특권이다. 여섯 번의 승리 끝에 재일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여름 고시엔'으로 불리는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하며 기적의 역사를 썼다. 23일 교토국제고는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소재의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제106회 여름 고시엔 본선 결승전에서 도쿄도 대표인 간토다이이치고를 상대로 연장 접전 끝에 2대1로 승리했다. 올해는 일본 전역에서 3715개 학교(3441개 팀)가 참가했지만 49개 학교만 본선에 올랐다. 교토 대표의 우승은 1956년 헤이안고 이후 68년 만이다. 또 교토국제고는 한신 고시엔 구장 건설 100주년에 열린 여름 고시엔 우승팀으로 남게 됐다.

경기는 결승전답게 초반부터 팽팽한 투수전으로 이어졌다. 교토국제고는 5회 초 2사 1, 3루, 6회 초 1사 2, 3루 기회를 잡았지만 후속타 불발로 점수를 내지 못했다. 간토다이이치고는 6회말과 7회말에 연속 득점 기회를 가졌지만 후속 타자가 땅볼로 물러나 득점에 실패했다.

팽팽하던 투수전은 연장으로 이어졌다. 연장 10회초 무사 1, 2루에 주자를 두고 공격하는 승부치기에서 교토국제고는 안타와 볼넷, 외야 뜬공 등을 묶어 2점을 냈다. 간토다이이치고는 10회말 내야 땅볼로 1점을 내고 이어서 1사 만루의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구원 등판한 교토국제고의 니시무라 잇키가 후속 타자를 땅볼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며 우승을 확정 지었다.

우승 직후 한신 고시엔 구장 3루 측 관중석에 마련된 응원석에서는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2800석을 가득 채운 응원단은 경기 승리 직후 선수들과 함께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를 함께 불렀다.

응원단장이자 교토국제고 3학년인 야마모토 신노스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끈끈한 팀워크가 우승을 만들어 낸 비결"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고마키 노리쓰구 교토국제고 감독은 우승 인터뷰에서 "선수들에게 감탄했다"면서 "연장전에서 정신력과 기세만은 절대로 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는데, 모두가 강한 마음을 갖고 공격해서 좋은 결과를 냈다"고 말했다.

이날 선수들 못지않게 경기장을 빛낸 것은 뜨거운 응원이었다. 특히 교토를 대표해 선발된 학교인 만큼 교토 지역의 끈끈한 우정이 눈부셨다.

전통 있는 야구 명문고의 경우 학교 내에 응원악단이 있어서 이들이 응원가를 연주해준다. 하지만 중·고등학교를 합쳐 전교생이 160명 남짓인 교토국제고에 이러한 응원악단이 있을 리 없었다. 이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 교토산업대부속고 학생들이다. 자기 학교가 아닌데도 교토의 명예를 걸고 싸우는 학교를 응원하기 위해 80여 명이 빨간 옷을 맞춰 입고 땡볕 아래에서 북을 치고 트럼펫을 연주하며 힘을 보탰다. 교토 지역 주민과 다른 학교 학생들도 응원석을 채웠다.

일본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교토국제고의 우승 소식을 속보로 내보냈다. 특히 대회를 주최한 아사히신문은 호외까지 발행하며 대서특필했다. 아사히신문은 "축복받고 있다고 할 수 없는 환경에서 기른 수비와 타격으로 한여름의 고시엔에서 결실을 거뒀다"고 짚었다. 마이니치신문은 열악한 환경에서 교토국제고의 '선택과 집중'에 기반한 훈련을 선전 비결로 꼽았다.

교토국제고는 한국계 민족학교이지만 학생 수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1999년 야구부를 설립하고 K팝과 K요리 관련 과목을 신설하면서 일본인 학생도 적극 모으고 있다. 정원 160명에 학생의 90%는 일본 국적이다. 고교 과정 138명 중에서 야구선수는 61명에 달한다.

이번에 우승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거뒀지만 교토국제고 야구팀 상황은 열악 그 자체다. 운동장은 정규 규격의 절반에 불과하고 훈련용 야구공에 테이프를 감아서 쓰는 형편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작은 독지가들이 교토국제고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신한은행 창업자인 고 이희건 명예회장이 설립한 한일교류재단에서 학교 기숙사 개보수를 위해 1억원을 기부하는 등 재일동포들의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열악한 여건에서 이뤄낸 기적 같은 쾌거는 재일동포들에게 자긍심과 용기를 안겨줬다"며 "야구를 통해 한일 양국이 더욱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니시노미야(효고현)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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