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운명 좌우할 파월의 선택은?…오늘 밤 잭슨홀 연설[오미주]

권성희 기자 2024. 8. 2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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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목되는 미국 주식시장]

미국 월가엔 경기 확장은 나이가 들어도 죽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경제 성장세가 죽는 건 오래 지속됐기 때문이 아니라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통화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준은 지난 2년간 경기 침체가 초래되더라도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해왔다. 이제 인플레이션은 안정권으로 내려왔고 경제도 침체에 빠지지 않았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AP=뉴시스
경기 확장을 죽이는 건 연준?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현재 경제는 연준이 승리를 선언할 만한 상황으로 보이지만 앞으로 몇 개월간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많은 경기 침체가 처음에는 지금처럼 연착륙(소프트랜딩)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착륙에 성공한 것은 1995년 한 번뿐이었다. 당시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선제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금리를 3%에서 6%로 급격하게 올렸다가 이후 6개월간 다시 5.25%로 인하했다.

경기 확장을 죽이는 건 연준이라는 월가의 격언과 달리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으면서 동시에 경기를 침체에 빠뜨리지 않는, 역사적으로 극히 드문 과업을 달성할 수 있는지 여부는 향후 수개월간 통화정책과 경제지표에 달려 있다.

23일 오전 10시(한국시간 23일 오후 11시)로 예정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잭슨홀 연설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착륙과 경착륙(하드랜딩)의 변곡점에 서 있는 미국 경제의 운명을 좌우할 통화정책의 향방을 파월 의장의 이번 연설을 통해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가 잡고 경제도 살릴까
미국 소비자 물가지수 전년비 상승률/그래픽=김현정

파월 의장은 2년 전 잭슨홀 경제 심포지엄에서 인플레이션을 낮추는데는 고통이 따른다며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의 사례를 들었다. 볼커 전 의장은 1980년대 초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는데는 성공했지만 경제는 침체에 빠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2022년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리는 중에도 경제는 성장세를 지속했다. 글로벌데이터 TS 롬바르드의 이코노미스트인 다리오 퍼킨스는 WSJ와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이 하락한 현재 상황에서 경제도 소프트랜딩에 성공한다면 "역사상 최고의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준은 1970년대와 같이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고공행진을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았을 뿐만 아니라 경제에 별다른 타격을 가하지도 않았다"며 "이것은 완벽한 소프트랜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WSJ는 파월 의장이 경기 연착륙에 성공한다면 연준 역사상 2명의 걸출한 위인인 볼커 전 의장과 그린스펀 전 의장의 장점을 모두 취했다는 명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인플레이션을 뚝심 있게 낮춘 볼커 전 의장의 강인함과 1990년대에 인플레이션 없이 장기간의 경제 호황을 이끌었던 그린스펀 전 의장의 능숙함이다.

파월, 잠 설치고 아내와 외식도 못해
하지만 올해 71세인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을 낮추면서 지금까지 경제를 침체에 빠뜨리지 않고 이끌어온 공로를 인정받기는커녕 민주당과 공화당 양쪽에서 큰 압력을 받으며 경기 연착륙을 성공시켜야 하는 어려운 기로에 서 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인사들은 파월 의장이 금리를 빨리 내리지 않고 있다며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면 파월 의장의 책임이라는 점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2018년에 파월 의장을 연준 의장으로 지명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다시 대통령이 되면 행정부가 금리 정책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준의 독립성을 제한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할 명분을 갖게 된다.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경제가 활주로에 부딪히거나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밤잠을 설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처럼 비칠까봐 연착륙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좋은 결과"라거나 "우리가 모두 원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최근 아내와 식당에서 밥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지난달 사업가들을 대상으로 열린 한 행사에서 "식당에 가면 옆 테이블 사람들이 언제나 내 말을 듣고 있다"고 토로했다.

변곡점에 도달한 미국 경제
미국 실업률 추이/그래픽=김현정

파월 의장은 지금까지는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이라는 연준의 2가지 책무를 잘 수행해왔지만 이제 경제는 변곡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저소득층은 코로나 팬데믹 때 각종 지원금으로 쌓아둔 저축이 바닥 나며 지출 압박을 받고 있고 노동시장에서는 기업들의 채용이 둔화되고 있다.

BCA 리서치의 수석 글로벌 전략가인 피터 버렌진은 WSJ에 "기업들의 채용 규모가 훨씬 더 많이 감소한다면 실직자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 7월에 4.3%로 올라간 실업률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

파월 의장이 연착륙에 성공할 수 있는지 여부는 데이터에 드러나지 않은 수면 아래에서 실제 경제가 어떤 상태인지와 금리 인하가 신규 대출과 지출을 촉진해 경기 약화를 어느 정도 방어해줄 수 있는지에 달렸다.

연준이 2022년 초 금리 인상을 시작하기 전에 많은 대출자들은 이미 낮은 고정금리로 만기 10년 이상의 대출을 받아놓았다. 이런 대출이 만기가 도래해 연장되면 연준이 금리를 올해 안에 1%포인트를 인하한다고 해도 대출자로선 금리가 크게 높아진 것처럼 느끼게 된다.

금리 얼마나 빠르게 내릴까
미국 기준금리 추이/그래픽=윤선정

이미 연준은 지난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통해 인플레이션 상승 리스크와 노동시장 약화 리스크가 균형을 이룬 만큼 오는 9월에는 금리를 인하해 과도하게 경제 제약적인 통화정책을 완화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금리를 얼마나 인하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투자자들이 파월 의장의 잭슨홀 연설에 주목하는 이유도 금리 인하 사이클의 규모와 속도에 대해 힌트를 얻기 위해서다.

시카고 상품거래소(CME) 금리 선물시장에 따르면 오는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가 0.25%포인트 인하될 가능성은 75.0% 반영돼 있다. 0.5%포인트 인하 전망은 25.0%이다.

올해 말까지 3번 남은 FOMC에서 총 금리 인하 폭에 대한 전망은 1%포인트가 44.7%로 가장 높고 0.75%포인트가 33.9%, 1.25%포인트가 18.9%이다. 1.5%포인트의 대규모 금리 인하 전망도 2.6% 반영돼 있다.

올해 말까지 금리를 1%포인트 낮추려면 올해 남은 3번의 FOMC 중 한 번은 빅컷(0.5%포인트 인하)이 있어야 한다.

연준이 취할 수 있는 2가지 경로
연준이 금리 인하 속도를 결정하려면 현재 금리가 얼마나 긴축적인지 가늠할 필요가 있다. 즉, 현재 금리가 경제 성장을 촉진하지도 않고 둔화시키지도 않는 중립 금리보다 얼마나 높은지 판단이 필요하다. 중립 금리는 정해져 있는 수치가 아니라 경제 상황을 보고 추정해야 한다.

WSJ는 연준이 2가지 경로를 취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첫째는 금리를 0.25%포인트씩 완만하게 인하한 뒤 내년 초 경제 상황에 따라 금리 인하 규모와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둘째는 금리를 0.5%포인트씩 큰 폭으로 인하해 내년 봄까지 현재 5.25~5.5%인 금리를 중립 수준으로 여겨지는 3%대로 빠르게 낮추는 것이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잭슨홀 연설에서 이 2가지 경로 중 무엇을 더 선호한다고 명확히 밝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는 9월6일에 발표되는 8월 고용지표를 확인하고 금리 인하 규모와 속도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중앙은행이 점진적으로 움직이는 이유는 점진적 금리 변동이 선택의 여지를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점진적 변동의 단점은 일이 일단 벌어지면 선택의 사치를 누릴 수 없게 된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물 밑 경제는 이미 악화됐는데 경제지표만 보고 점진적으로 금리를 인하했다 경제가 침체에 빠져버리면 통화 정책적 선택의 여유를 갖기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권성희 기자 shkw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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