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한국계高, 106년 고시엔 정복하다

양준호·이승배 기자 2024. 8. 2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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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토국제고 '꿈의무대' 첫 우승
日고교야구서 연장접전 끝 2대1 勝
창단 25년만···외국계 학교로도 최초
고교생 138명 중 야구부원만 61명
한국어 교가 또 한번 日전역 생방송
尹 "재일동포에 용기" 축하 메시지
교토국제고 재학생들이 23일 일본 효고현 한신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제106회 일본전국고교야구선수권에서 모교의 우승이 확정되자 응원 도구를 들고 감격해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일본 아마추어 야구계에서 꿈의 경기로 통하는 ‘여름 고시엔(甲子園)’ 결승전에서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졌다. 학생들이 주 3~4시간씩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어로만 진행하는 수업도 여럿인 재일 한국계 교토국제고 학생들이 부른 노래다.

23일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소재 한신고시엔구장. 여름 고시엔으로 더 잘 알려진 제106회 일본전국고교야구선수권에서 첫 우승의 기적을 쓴 교토국제고 학생들은 더그아웃에서 교가를 제창한 뒤 그라운드로 달려나가 환호했다. 3루 관중석을 가득 메운 응원단에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교토부 대표인 교토국제고는 도쿄도 대표 간토다이이치고를 연장 접전 끝에 2대1로 이겼다. 창단 첫 우승이자 외국계 학교 최초 우승이다.

연장 10회 초 무사 1·2루에 주자를 두고 공격하는 승부치기에서 안타와 볼넷, 외야 뜬공 등을 묶어 2점을 냈고 10회 말 구원 등판한 니시무라 잇키가 1점만 내주면서 승리를 확정했다. 2점을 먼저 뽑았지만 10회 말 바로 무사 만루에 몰리면서 코너에 몰리기도 했다. 유격수 땅볼로 1점을 허용한 뒤 볼넷으로 맞은 1사 만루. 안타 하나면 역전패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니시무라는 1루 땅볼로 3루 주자를 잡았고 마지막 아웃카운트는 헛스윙 삼진으로 채운 뒤 포효했다.

교토 지역 고교가 고시엔(여름) 우승을 한 것은 1956년 헤이안고 이후 68년 만에 처음이다. 32개 학교가 나오는 봄 고시엔에 비해 47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별로 1개교(훗카이도와 도쿄도 2개)씩 49개교가 출전하는 여름 고시엔이 더 큰 행사로 꼽힌다.

교토국제고는 본선 1차전에서 7대3으로 이긴 뒤 2차전부터 8강전까지 3경기 연속 4대0 승리를 거뒀다. 이달 21일 준결승전에서는 아오모리야마다고에 2점을 먼저 내주고 끌려가다 3대2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 대진은 일본 현 수도인 도쿄와 옛 수도 교토 소재 학교 간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는데 교토가 트로피를 가져갔다.

교토국제고는 재일 교포들이 민족 교육을 위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1947년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가 전신이다. 1958년 한국 정부의 인가를 받았고 2003년 일본 정부의 정식 학교 인가를 받아 현재의 교토국제고로 이름을 바꿨다. 중·고교생을 모두 합해 학생 수가 160명가량인 소규모 한국계 학교이며 일본 학생들의 지원이 갈수록 늘어 현재 재적 학생의 65%가 일본인이고 한국계는 30%가량이다. 학생들은 입학하면 주 3~4시간씩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어로만 진행하는 수업도 있다.

교토국제고는 학생 모집을 위해 야구부를 창단해 1999년 일본 고교야구연맹에 가입했으며 고교생 138명 중 야구부 소속이 61명이다. 교토국제고 운동장은 길이가 최대 60m에 불과해 외야 연습을 할 수 없다. 다른 연습 구장을 빌려서 훈련해왔다. 그런데도 일본 고교야구 선수들이 한 번 밟기도 어렵다는 여름 고시엔에 최근 들어 거의 매년 진출했다. 2021년 처음 본선에 진출해 4강에 올랐고 이듬해 1차전 석패에 이어 지난해는 본선에 나서지 못했다. 창단 25년 만인 올해 첫 결승 진출에 우승까지 내달리며 일본 야구 역사를 새로 썼다.

이날 경기에서도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승리 직후 한국어 교가를 부르는 모습이 공영방송 NHK를 통해 일본 전국에 생중계됐다. 고시엔에서는 출전 학교 교가가 연주되며 NHK는 모든 경기를 방송한다. 고마키 노리쓰구 교토국제고 감독은 “대단한 선수들에게 감탄했다. 전원이 강한 마음을 갖고 공격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야구 팬으로 잘 알려진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열악한 여건에서 이뤄낸 기적 같은 쾌거는 재일 동포들에게 자긍심과 용기를 안겨줬다’는 글을 올려 교토국제고의 우승을 축하했다. 이어 ‘고시엔 결승전 구장에 한국어 교가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역시 야구는 위대하다. 많은 감동을 만들어낸다’고도 적었다.

정부는 교토국제중·고를 비롯해 일본 재외한국학교 네 곳에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정부는 교토국제중·고에는 교원 인건비, 운영비 등 명목으로 매년 10억 원 이상의 국고를 지원하고 있으며 올해도 16억 원 수준을 지원할 예정이다. 대통령실 측은 “다음 달 학교에서 특이소요 지원을 신청할 경우 국고 지원 비율(70%)에 해당하는 금액(3억 9000만 원)을 우선적으로 추가 지원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양준호·이승배 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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