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논, EOS R1 및 R5 마크 II로 '전문가 시장 주도권' 회복할까
[IT동아 남시현 기자] DSLR(디지털 일안 반사식 카메라) 시대에서 캐논의 입지는 절대적이었다. 필름 카메라 시절까지만 해도 니콘 F시리즈가 시장의 대세였고, 자동 초점 렌즈도 1986년 니콘이 먼저 낼만큼 주도권에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2003년에 시장의 주도권이 바뀐다. 니콘은 1999년 니콘의 첫 DSLR인 D1을 출시한 이후, 2004년까지 D1H, D100등 준 전문가용 제품에 주력했다.
반면 캐논은 2003년에 최초의 1000달러(2003년 기준 환율로 103만 원대) 이하의 DSLR인 EOS 300D를 출시했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DSLR을 쓸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1년이 지나 니콘도 1000달러 이하 제품인 니콘 D70을 출시했지만, 이미 EOS 300D가 DSLR 시장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난 이후였다. 캐논은 필름에서 디지털카메라로의 전환기에서 주도권을 잡았고, 이어서 2005년에는 보급형 풀프레임 DSLR인 EOS 5D를 출시하며 전문가 시장까지 다 가져온다. 이때를 계기로 니콘과 캐논의 입지가 바뀐다.
한편, 소니는 캐논과 니콘이 양분하고 있는 시장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IDC 일본이 2010년에 집계한 전 세계 디지털 카메라 시장 점유율에 따르면, 캐논은 2009년과 10년 모두 19%, 소니는 2010년에 17.9%로 2위 사업자였다. 니콘은 12.6%로 3위 사업자다. 하지만 고부가가치 시장인 DSLR 부문에서 캐논의 시장 점유율은 44.5%, 니콘이 29.8%, 소니는 11.9%에 불과했다.
2013년, 소니 A7의 등장으로 판도 뒤집혀
캐논이 전문가 및 입문자 시장을 장악한 가운데, 2013년 소니가 시장의 판도를 뒤집는 제품을 출시한다. 바로 풀프레임 미러리스의 등장이다. 미러리스 카메라는 DSLR의 핵심 부품 중 하나인 거울을 없앤 형태로, DSLR과 비교해 크기를 극단적으로 줄이면서도 화질은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화상 데이터를 전자식으로 구현해 DSLR 대비 배터리는 열세였지만, 가장 중요한 이미지 품질은 차이가 없었다.
미러리스는 2008년 마이크로 포서드 마운트로 처음 등장했고, 소니 A7 출시 이전까지는 입문자를 위한 DSLR의 대안 카메라 정도 입지였다. 하지만 소니는 전문가용 이미지 품질을 갖추면서도, 형태는 작고 가볍게 만들어 시장 역전에 나섰다. 처음에는 십수 년 간 DSLR을 써온 전문가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킬 수 없었지만, 세대를 거듭하며 많은 전문가들이 소니 미러리스로 전향했다.
일본 BCN 랭킹이 발표한 일본 내 2018년 풀프레임 미러리스 시장 점유율을 살펴보면, 첫 A7 출시인 2013년부터 2018년 7월까지 소니 풀프레임 미러리스의 시장 점유율은 99% 이상이었다. 캐논과 니콘이 미러리스를 출시한 10월에 들어서야 점유율이 소니의 점유율이 약 67%까지 내려왔지만,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DSLR과 렌즈를 팔고 소니 카메라로 옮겨간 터라 앞으로도 역전은 요원하다.
2024년 현재 일본 내 미러리스 카메라 판매량 점유율은 소니가 49.7%, 캐논이 20.2%며, 니콘이 12.6%를 유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후지, 파나소닉, OM 시스템이 갖고 있다. 실제로 현재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러리스는 캐논, 니콘에 앞서 생태계를 갖춰온 소니 제품이고, 지금은 상업 시장 등에서도 소니 미러리스가 캐논 및 니콘보다 더 넓게 쓰이고 있다.
캐논, 소니에 빼앗긴 전문가 시장 재패 노린다
과거 핵심 사업자였던 캐논 입장에서는 재기의 발판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소니가 캐논보다 5년이나 앞서 풀프레임 미러리스를 팔아온 만큼 경쟁 자체는 어렵다. 캐논이 이제 막 전문가용 렌즈군을 확충하는 시점에 이미 소니는 전문가를 한 차례 완성 후 2세대 제품을 내놓으면서 보급형 렌즈까지 다 갖추고 있었다.
그나마 캐논 입장에서 남아있는 역전의 한 수는 여전히 미러리스로 전환하지 않은 전문가들이다. 초기 미러리스는 수십 년 간 완성도를 가다듬은 DSLR과 비교해 수준이 부족했고, 배터리 성능이나 렌즈군도 빈약했다. 게다가 DSLR에 익숙하거나 이미 고가의 렌즈군을 다 갖춘 사용자들은 다시 돈을 들여 미러리스로 전환할 필요가 없었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교체의 이유를 못 느껴 그대로 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번에 출시한 캐논 R1이 이런 입장의 전문가들을 위한 제품이다. 캐논 EOS R1은 2420만 화소 이면조사형 CMOS 센서를 갖췄으며,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카메라 내에서 최대 9600만 화소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상용 감도는 ISO 102400, 확장 감도는 최대 409600 수준을 지원한다.
연속 촬영은 전자식 기준 초당 최대 40매를 지원하며, 기계식으로는 12매 지원한다. 초점은 디직스 X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듀얼 픽셀 CMOS AF II의 성능을 끌어올렸다. 트래킹 성능은 교차 피사체 대응, 상반신 검출, 머리 영역 추정까지 지원하며, 운동 액션과 최대 100명의 등록 인물 우선 촬영 등을 지원한다. 또한 최대 20프레임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전 연속 촬영 모드, 플리커 방지, 전자식 연속 촬영 시에도 플래시까지 쓸 수 있다.
뷰파인더는 0.9배율 0.64인치 944만 화소 OLED가 사용됐고, 디스플레이는 210만 화소 170형 스위블 LCD가 사용됐다. 외부 인터페이스는 USB 3.2 2세대 급 USB-C형을 갖췄고, 랜 포트 및 HDMI 단자, 마이크 및 헤드폰 단자, 터미널 단자 등이 있다. 동영상은 외부 연결 없이 6K 60프레임 RAW 기록을 지원하며, 4K DCI, 2K-D 파인, 2K-D, FHD 파인 등의 방식도 선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필요로 했던 방진방적 성능은 이제 캐논 EOS 1D 시리즈와 같다.
함께 출시된 EOS R5 마크 II는 4500만 화소 CMOS 센서를 갖췄으며, EOS R1에 준하는 AF 성능과 초당 최대 30매의 연속 촬영 성능, 카메라 내 1억 7900만 화소 업스케일링 지원, 최대 8K 60프레임 RAW 영상 녹화를 지원한다. 가격은 EOS R5 마크 II가 549만 원대, EOS R1이 11월에 800만 원대로 출시한다.
EOS R1, 넘어오지 않은 마지막 전문가 겨냥해
캐논과 니콘 모두 소니 A7 출시 이후 5년이 지나서야 DSLR을 내려놨다. A7 등장 이후 몇 년간 두 기업 모두 전문가 시장만큼은 미러리스를 쓰지 않을 거라 생각해 계속 DSLR을 출시했다. 패착이었다. 그나마 소니가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기 전에 문제점을 깨달아 2018년에 들어 제품을 내놨고, 이 시점이 DSLR의 마지막 장이었다.
후지오 미타라이 캐논 최고경영자는 2020년 출시한 캐논 1DX 마크 III가 마지막 DSLR이 될 것이라 주력 DSLR의 단종을 예고했었고, 니콘 역시 2020년에 D6를 마지막으로 DSLR을 단종시켰다. 캐논은 EOS R1, EOS R5 마크 II를 통해 전문가용 풀프레임 카메라 시장의 새로운 대안이 되길 원하며, 마지막까지 DSLR을 붙잡고 있는 극소수 전문가들의 마음을 돌리려 한다. 캐논이 EOS R1을 통해 DSLR 시절의 입지를 되찾을 수 있을까? 모두를 설득하긴 엿부족이나, 최소한 일부는 넘어갈 것 같다.
IT동아 남시현 기자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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