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쉰소리'인 세계에서 영어로 시를 짓다...캐시 박 홍 '몸 번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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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부모는 집에서 한국어만 썼다.
한인 타운 교인, 친구, 식구들의 '짧고' '거칠고' '깨진' 영어는 역설적으로 그에게 새로운 언어적 화두로 다가왔고, 소녀로 하여금 "한국어로 된 시를 꿈꾸"(수록 시 '동물원' 부분)도록 했다.
집에서 쓰는 한국어와 집 밖에서 쓰는 영어 사이의 괴리는 "이상한 짬뽕이 된 것 같았다"('통과의례' 부분)고 느끼게 한다.
시집엔 영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이 나란히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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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마이너 필링스' 저자...
2002년 미국서 나온 첫 시집
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부모는 집에서 한국어만 썼다. 부모의 서투른 영어와 한국어를 들으며 자란 소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으면서도 학교에 가기 전까지 영어를 거의 몰랐다. 한인 타운 교인, 친구, 식구들의 ‘짧고’ ‘거칠고’ ‘깨진’ 영어는 역설적으로 그에게 새로운 언어적 화두로 다가왔고, 소녀로 하여금 “한국어로 된 시를 꿈꾸”(수록 시 ‘동물원’ 부분)도록 했다.
불안, 짜증, 수치심 등 아시아인으로 백인 사회에서 느낀 차별의 감정을 들여다본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캐시 박 홍의 시집 ‘몸 번역하기’(Translating Mo’um)가 국내 번역됐다. 2002년 미국에서 출간된 작가의 첫 시집으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그가 겪어온 언어와 몸의 경계, 분열, 충돌을 파고든다.
백인-영어 중심 사회에서 한국어는 “쇳소리, 쉰소리, 미개함, 제3세계의 냄새”로 여겨진다. 집에서 쓰는 한국어와 집 밖에서 쓰는 영어 사이의 괴리는 “이상한 짬뽕이 된 것 같았다”(‘통과의례’ 부분)고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간극은 오히려 그 틈 사이에서 디아스포라의 몸과 언어를 펼쳐내는 시인만의 독특한 시학으로 거듭난다.
시집엔 영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이 나란히 실려 있다. 영어 원문에는 로마자로 표기한 한국어가 자주 등장하지만(oma, appa, bap, uyu: 엄마, 아빠, 밥, 우유), 그 뜻을 설명하는 각주는 따로 달지 않았다. 이는 영어 사용에 있어 언제나 그 발음과 문법, 적절한 단어 사용에 대해 ‘시험 당해온’ 시인이 입장을 바꿔 영어 사용자들에게 시험을 내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어 네이티브라면 즉각 해석이 가능할 테지만 영어 사용자라면 우왕좌왕하게 되는 독해를 통해 한국 독자는 언어적 힘의 이동에 따른 쾌감도 맛볼 수 있다.
시집의 맨 마지막에 이르러 시인은 ‘몸(body)’의 표준 로마자 표기가 Mom임을 밝힌다. ‘몸 번역하기’가 곧 ‘엄마-모어 번역하기’이면서 동시에 ‘마음 번역하기’도 함을 일러두는 것이리라.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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