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대운하, 경제 도약인가 외교 위기인가[가깝고도 먼 아세안](36)
2024. 8. 23. 16:00
2023년 8월 캄보디아를 38년간 철권 통치해온 훈센이 아들 훈마넷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주었다. 영국 명문대학 경제학 박사 출신인 훈마넷이 이끄는 캄보디아가 어떻게 변화할지 이목이 쏠렸다. 훈마넷은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뉴욕대학 경제학 석사와 영국 브리스톨대학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캄보디아가 친서방 정책으로 전향하지 않겠는가 기대였다.
중국과 손잡은 크메르 민족주의
훈마넷의 국정 운영 첫 선택은 중국을 통한 경제 부흥이었다. 훈마넷이 총리에 취임한 직후인 2023년 9월, 캄보디아는 중국 국유기업 중국도로교량공사(CRBC)와 17억달러(약 2조3000억원) 규모의 ‘푸난 테초(Funan Techo) 운하’ 건설 계약을 체결했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180㎞ 떨어진 태국만까지 운하를 연결하고, 수문이 있는 3개 댐과 11개 교량, 208㎞ 보도 등을 건설하는 대형 사업이다. 운하는 폭 100m, 깊이 5.4m로 건기에는 최대 3000t 화물선을 수용할 수 있고, 강 수위가 높아지는 우기에는 5000t 화물선까지 드나들 수 있다. 2028년 완공을 목표로 한 푸난 테초 운하는 캄보디아 정부가 51% 지분을 확보하지만, 17억달러 모두 중국 투자금으로 집행한다. 중국도로교량공사가 건설해 40~50년간 운영하다가 캄보디아 정부에 돌려주는 방식이다.
2024년 8월 5일 푸난 테초 운하 기공식을 보도한 캄보디아 언론 크메르 타임스에 따르면 훈마넷 총리는 푸난 테초 운하를 “역사적인 사업”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항만·도로 인프라가 부족한 캄보디아는 전체 수출입 물량의 33%를 베트남 호찌민 항구를 통해 처리하고 있다. 물류 자주권 확보를 위해 국운을 걸고 진행하는 사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캄보디아가 베트남과 다양한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세제 혜택을 일부 누리고 있지만, 국가 발전의 원동력을 이웃 나라에 의존하고 있어 캄보디아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훈마넷 총리는 푸난 테초 운하 건설을 두고 “우리의 코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고까지 언급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운하 건설을 통해 500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베트남을 통하지 않은 교역을 통해 운송비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또한 운하 운영 첫해에는 8800만달러 수입이 예상되며 2050년까지 5억7000만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는 청사진을 내놨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낙관인 전망이라는 의견이 많다. 호주 싱크탱크인 로이연구소(Lowy Institue)는 ‘캄보디아 정부의 전망은 연평균 8.1% 성장을 전제로 한 비현실적인 수치’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환경과학 전문 매체인 몽가베이(Mongabay) 역시 ‘일반적인 중국 일대일로 자금은 연이율 5~10%’라며 캄보디아가 제대로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우려를 밝혔다. 중국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인프라 사업을 전개했다가 심각한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스리랑카·라오스의 사례가 캄보디아에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베트남 겨냥한 푸난 테초 운하
베트남은 캄보디아의 운하 사업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캄보디아의 운하 건설은 베트남 남부 메콩 델타 지역 환경에 재앙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콩강은 중국에서 발원해 미얀마-태국-라오스-캄보디아-베트남 순으로 흘러내린다. 상류 국가인 캄보디아에 대운하가 건설되면 물길과 강물 유입량이 변화해 베트남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24년 5월,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 센터는 ‘캄보디아 운하 건설은 건기에는 베트남에 물 부족을, 우기에는 홍수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트남 메콩 델타 지역은 베트남 전체 쌀 수출 물량의 95%, 과일 생산량의 70%, 수산물의 60%를 책임지고 있는 식량의 보고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와 중국·라오스에 건설된 수력발전 댐들의 영향으로 민물이 줄어들고 있다. 폭염이 심했던 지난 4월에는 식수에까지 바닷물이 섞여 염류화 되는 비상사태를 겪었다. 이 때문에 베트남은 지속해서 외교부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캄보디아 운하 건설에 대한 공동 환경영향평가를 하자고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캄보디아 정부는 운하 건설에 따른 영향은 미미하고 운하 건설을 예정대로 진행한다며 강경한 자세로 나오고 있다.
중국 군사력에 의존한 크메르 민족 부흥
캄보디아 운하 건설은 군사적으로도 민감한 이슈다. 베트남 입장에서는 ‘푸난 테초’라는 운하의 이름부터 신경 쓰인다. ‘푸난’은 서기 1~6세기에 지금의 태국과 베트남 남부지방까지 영토를 차지했던 캄보디아 대제국의 이름이다. ‘테초(Techo)’는 캄보디아어로 ‘강력한’이라는 뜻이니 푸난 테초는 ‘위대한 푸난제국’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푸난 테초 운하 사업은 캄보디아가 ‘중국의 힘을 빌려, 베트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크메르 민족 중흥’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180㎞ 해안까지 이어지는 이 운하는 중국 해군이 실질적으로 주둔하고 있는 캄보디아 림(Ream) 해군기지와도 곧바로 연결된다. 림 해군기지는 중국의 해외 2호 해군기지가 됐다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캄보디아 정부는 자국 영토에 ‘외국 군사기지 설립을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헌법을 근거로 이를 부정하지만 믿는 이는 없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1300t급 초계함 2척은 2023년 12월 림기지에 정박한 이래 현재까지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이 전투함은 대함 미사일 발사 장치에 속사포는 물론 헬기 착륙장,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기능까지 갖췄다. 푸난 테초 운하가 건설되면 이 전투함은 운하를 따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까지 몇 시간 내에 이동할 수 있다. 캄보디아와 베트남이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을 때 중국군이 개입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6세기 푸난 제국에서 9~15세기 크메르제국까지 1000년이 넘게 인도차이나반도 대부분을 장악했던 캄보디아였다. 하지만 지금은 태국과 베트남의 틈바구니에서 국가 발전은 정체되고 있다. 푸난 테초 운하 사업은 훈센-훈마넷 부자 세습 정권이 정말 캄보디아 민족 부흥을 위해 중국의 도움을 받고자 추진한 것일까? 철권 통치로 야당 국회의원들을 탄압해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바람에 이반된 민심을 크메르 민족주의 자극으로 덮으려는 속셈은 아닐까? 캄보디아 경제 발전을 위해 운하가 필요하다면 베트남과 함께 환경영향평가를 반영해 사업을 해야 한다. 그것만이 베트남과의 분쟁을 피하고 메콩강에서 전쟁의 씨앗을 거둬들일 수 있는 길이다.
호찌민 | 유영국 <베트남 라이징>·<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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