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국제고 감독, 지도자 첫발엔 ‘헝그리 정신’ 두산 신성현 있었다
사상 첫 고시엔 정상에 오른 교토국제고 야구부 고마키 노리쓰구 감독과 전직 두산 베어스 선수이자 현 전력분석원인 신성현 사이 특별한 인연이 주목받았다. 이들의 만남은 20년 가까이 교토국제고를 지켜온 고마키 감독의 지도자 생활의 시작점이나 다름없었다.
고마키 감독은 지난 3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인 유학생이었던 신성현을 만난 것이 지도자로서 첫걸음”이었다며 “그의 헝그리 정신이 인상 깊었다”고 밝혔다. 고마키 감독은 은행원 시절 교토국제고 야구부 연습을 도운 것을 시작으로 2008년 야구부 감독으로 정식 임명돼 지금까지 감독 자리를 지켜왔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1999년 고시엔에 첫 출전한 교토국제고는 당시 교토의 야구 명문 세이쇼고를 만나 0대 34의 참패를 당했다. 공교롭게도 교토국제고에 패배를 안겼던 세이쇼고의 1학년 주전 선수가 고마키 감독이었다. 그는 25년 뒤 교토국제고 감독으로서 선수들을 정상의 자리에 올렸다. 고마키 감독은 어떤 인연으로 교토국제고의 지휘봉을 쥐게 되었을까.
학창 시절 야구 선수였던 고마키 감독은 대학 졸업 후 평범하게 은행에 취직했지만, 지인 소개로 휴일 틈틈이 교토국제고 야구부 연습을 돕게 됐다. 야구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아예 은행을 그만둔 그는 2008년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고, 부임 첫해 부원 12명으로 지역 대회 3위까지 올랐다. 교토국제고는 2008년에서 2023년 사이 졸업생 가운데 프로야구 선수 11명을 배출했다.
신성현은 그가 막 지도를 시작한 시절, 기억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한국인 유학생이었던 신성현에 대해 “일본어를 한마디밖에 할 줄 몰라 지도가 어려웠다”며 “몸짓으로 지도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신성현을 가르친 것을 통해 좀 더 내 서랍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며 “그게 제 지도 생활의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신성현을 가르치며 인상 깊었던 건 일본에서 프로가 되어 돈을 벌겠다는 헝그리 정신”이라며 “힘든 연습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했다. 요즘 애들한테는 없는 헝그리 정신이었다”고 떠올렸다.
덕수중학교를 졸업한 신성현은 부모님의 권유로 한국계 민족학교인 일본 교토국제고등학교에 진학했다. 2008년 일본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 4라운드로 히로시마 도요카프의 지명을 받았고, 이후 귀국해 국내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를 거쳐 한화 이글스, 두산 베어스에서 활동했다. 지난해 8월 유니폼을 벗고 현재 두산 2군 전력분석원으로 활동 중이다.
신성현 분석원은 연합뉴스에 “내가 재학 중이었을 때 고시엔 본선은 범접할 수 없는 무대였다”며 “열악한 환경에서 대단한 성적을 낸 후배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또 “졸업한 후에도 고마키 감독님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며 “지금은 집중해야 할 시기라 일부러 연락드리지 않았는데, 대회 후 인사드릴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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