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센징' 핍박, 폐교 위기도 극복…한국계 교토국제고, 77년의 '기적'
여름 고시엔(甲子園)으로 불리는 일본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교토국제고에 윤석열 대통령과 조태열 외교부 장관 등이 연이어 축하 메시지를 보내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교토국제고는 1947년 우리 선조들이 차별과 수모를 겪으면서도 후대들에게 민족교육을 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설립한 학교다. 현재는 재적학생 약 70%가 일본인 학생이어서 한일 미래세대들이 함께하는 교육의 장으로 통한다.
교토국제고는 23일 오전 10시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간토다이이치고와 고시엔 결승전에서 연장 접접 끝에 2대1로 승리했다. 1915년 시작돼 올해로 106회를 맞은 여름 고시엔에서 외국계 학교의 우승은 역사상 처음이다. 경기 후에는 고시엔 전통에 따라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졌고 이 장면은 일본 공영방송 NHK를 통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다. 야구부 61명 중 한국계는 3명에 불과하지만 모든 선수가 "동해바다 "거룩한 우리 조상" "대한의 자손" 등의 한국어 교가를 제창했다.
우리나라는 1945년 8월15일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일제로부터 해방됐다. 당시 교토에 거주하는 재일동포들은 '교토조선인교육회'를 설립했고 민족교육의 필요성에 따라 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이때만 해도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멸시했고 차별적 관리 대상으로 봤다.
하지만 재일동포들은 갖은 수모와 핍박을 이겨내고 자손들에게 민족교육을 시킨다는 일념으로 민간 창고를 빌리거나 자신들이 소유한 건물을 개조해 학교를 설립했다. 1947년 5월 교토조선중이 설립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교토조선중은 1958년 교토한국학원으로 변신했지만 일본에서 정식 학교 대접을 받지 못했다. 1999년엔 학생 수가 줄고 재정난이 겹치면서 폐교 위기까지 겪었다고 한다. 당시부터 일본인 입학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바꿨고 정원 확보를 위해 야구부를 창단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03년 일본 정부의 정식학교 인가를 받아 현재의 교토국제학원 모습이 갖춰졌다. 교토국제학원은 교토국제중고로 나뉘며 현재 전교생은 159명에 불과하다. 교토국제고 전교생 138명 중 야구부가 61명이다. 작은 규모에도 야구부 창단 25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게 됐다.
현재 교토국제고는 전교생에게 한국어는 물론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교육하며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다. 교토국제고 학생 약 70%가 일본인인데 최근 들어 K팝 등 한류의 영향을 받은 일본인 입학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교토국제고는 미래 한일 양국 간 교육 교류·협력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백승환 교토국제고 교장은 전날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인터뷰에서 "이번 결승전을 통해 한국계 학교로서 정말 작은 힘이나마 미래 발전적 한일 우호증진의 계기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우승해 재학생들이 선수로서 성장하고 학교가 발전하고 재일동포 사회에 감동을 드리겠다"고 했다.
조태열 장관은 이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교토국제고는 한일 양국 간 화합의 상징이자 우정의 가교"라면서 "이번 우승은 선수 여러분과 감독·코치의 땀과 열정으로 거둔 쾌거이자 교직원과 동포사회가 보여준 뜨거운 성원의 결과"라고 축하했다.
윤 대통령도 "열악한 여건에서 이뤄낸 기적 같은 쾌거는 재일동포들에게 자긍심과 용기를 안겨줬다"며 "야구를 통해 한일 양국이 더욱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역시 야구는 위대합니다. 많은 감동을 만들어 내니까요"라고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당을 초월한 축하의 메시지가 나왔다. 윤 대통령을 향해 '친일' 공세를 이어온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고시엔에서 우승한 교토국제고와 김성근 감동이 이끄는 최강야구팀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싶다"고 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눈물로 축하드린다"고도 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교토국제고의 우승은 꿈과 미래를 향해 열정을 불태우는 젊은이들이 쏘아올린 한일관계의 새로운 서사의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이승주 기자 gre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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