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물 틀고 기절…"딸이 안에 있어요!" 어머니 절규에 기적 생존[르포]

부천(경기)=최지은 기자 2024. 8. 23. 15: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화장실서 머리 위로 물 뿌리며 버티던 간호대 학생…긴박했던 순간, 모정이 구조대원 불렀다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 등 5개 기관 33명은 23일 오전 11시부터 약 1시간30분 가량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합동감식에 들어가는 관계자들./영상=최지은 기자


"딸이 방 안에서 기절했는데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으니 사람 없는 줄 알고 구급 대원들이 내려갔나 봐요. 프런트에 계속 전화해서 사람 있으니 문 부수고 구해달라고 해서 찾았어요."

23일 오후 2시20분쯤 경기 부천시 원미구 중동의 한 호텔 인근. A씨는 전날까지 해당 호텔에 묵었던 딸 B씨를 옆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B씨는 19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부천 호텔 화재' 당시 해당 호텔 806호에 머물고 있었다.

출입문을 열자 눈앞은 회색 연기로 가득했다. 바로 맞은편 방 호수조차 보이지 않았다. B씨는 문을 닫고 화장실로 들어가 머리 위로 물을 틀었다. 간호학 전공 수업에서 "일산화탄소가 물에 녹는다"는 사실을 배운 기억이 떠올라서다. B씨는 호텔 인근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 실습을 하기 위해 이 호텔에 숙박하고 있었다.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현관문을 열려고 했으나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문고리는 열기에 달아올라 잡기도 힘들었다. 결국 다시 화장실로 돌아갔다가 곧바로 기절했다.

딸과 연락하던 A씨는 연락이 끊기자 호텔 프런트로 쉴새 없이 전화를 걸었다. 다른 가족들은 호텔 인근의 학원 번호를 수소문했다. 호텔 프런트 관계자가 전화를 받아 B씨가 여전히 방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구조를 요청해 B씨는 무사히 구조됐다.

B씨는 "불이 난 직후 안전 방송이나 비상벨 등이 소리를 듣지 못했다"며 "오늘은 어제 두고 온 물품을 찾을 수 있나 싶어 유류품 신청을 하고 돌아가려 한다"고 밝혔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해당 호텔은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상돈 부천소방서 화재 예방 과장은 23일 현장 브리핑에서 "호텔이 2003년도에 완공됐는데 당시는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사라진 창문 유리와 검게 그을린 창틀…7명 목숨 앗아간 화마의 흔적
23일 호텔에는 전날 화재의 여파가 남아있었다. 810호의 창문은 유리가 다 사라진 채 주위가 검게 탔고 유리로 된 복도 창문은 깨져있었다. 호텔 정문부터 주차장까지 노란색 폴리스라인이 겹겹이 쳐져 있었다./사진=최지은 기자

23일 호텔에는 전날 화재의 여파가 남아있었다. 810호의 창문은 유리가 다 사라진 채 주위가 검게 탔고 유리로 된 복도 창문은 깨져있었다. 호텔 정문부터 주차장까지 노란색 폴리스라인이 겹겹이 처져 있었다.

호텔 주위에서는 옅은 탄내가 풍겼다. 화재를 직접 목격했다는 인근 숙박업소 관리자 김모씨(43)는 "인근 대학병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자주 묵는다"며 "남녀 투숙객 2명이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뛰어내리길래 괜찮은 줄 알았는데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당시 우리 건물까지 불길이 넘어올 것 같아 건물 사이에 물을 뿌려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또 다른 목격자는 "어제 손님들이 '어디서 연기 냄새가 난다'고 하기에 우리 가게 문제인가 싶어 나와봤더니 옆 건물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며 "화마가 밖으로 새어 나오진 않았고 연기가 자욱했다. 도로가 다 통제돼 이튿날 오전 2시까지 집에 가지를 못했다"고 밝혔다.

23일 호텔에는 전날 화재의 여파가 남아있었다. 810호의 창문은 유리가 다 사라진 채 주위가 검게 탔고 유리로 된 복도 창문은 깨져있었다. 합동 감식에 참여한 소방 관계자가 전날 화재로 깨진 창문을 망치로 부수고 있다./사진=최지은 기자

1시간30분여 진행된 2차 합동 감식…일부 유가족 현장 찾아 울분 토하기도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 등 5개 기관 33명은 23일 오전 11시부터 약 1시간30분 가량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사진=최지은 기자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 등 5개 기관 33명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약 1시간30분 가량 2차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오석봉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장은 "오늘 화재 감식 내용과 CCTV(폐쇄회로TV), 목격자 등 참고인 진술 등을 바탕으로 19명의 사상자를 낸 화재의 정확한 원인을 밝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오전 9시20분쯤 진행된 소방 당국 브리핑에서는 "전기적 요인이 유력한 원인으로 생각된다"는 발표가 나왔다.

일부 유가족은 화재 현장 앞을 찾아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한 중년 여성은 현장을 방문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화재 현장으로 들어가자 "당신이 뭔데 여기 와서 웃고 가느냐"고 소리치며 눈물을 쏟았다. 다른 남성은 여성을 진정시키려 힘껏 껴안은 뒤 현장을 벗어났다.

경찰은 숨진 이들의 부검을 통해 사망 원인을 규명하는 한편 호텔의 법령 위반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다.

지난 22일 오후 7시34분 부천 원미구 중동의 한 모텔 객실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지고 1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807호에서 에어매트 위로 뛰어내린 남·여 투숙객 총 2명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나머지 사망자 5명은 모두 연기 흡입으로 질식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천(경기)=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