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초점] '제2의 플레이브' 노리는 버추얼 아티스트들
플레이브 성공 사례 있으나, 가상인간 대중성·팬덤 확보는 아직 숙제
쏟아지는 버추얼 아티스트, 국내 가상인간 시장 확대 이끄려면
국내 연예계에 제2의 플레이브가 탄생할 수 있을까. 한동안 국내 엔터 시장에 봇물터지듯 출사표를 던졌던 버추얼(AI 가상인간) 아티스트들이 본격적인 시장 확대에 나섰다.
최근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올해 3분기 버추얼 아티스트 나이비스(nævis)의 데뷔를 공식화했다. SM의 첫 버추얼 아티스트로 데뷔를 앞둔 나이비스는 모션과 목소리 모두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로, 2D와 3D로 구현된 버추얼 캐릭터를 기반으로 활동을 예고한 상태다.
지난 6월 에스파의 단독 콘서트에서 깜짝 무대를 공개하며 K팝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나이비스는 앞서 에스파의 세계관 속에서 에스파를 돕는 조력자 캐릭터로 존재감을 드러낸 뒤 에스파의 미니 3집 '마이 월드'의 수록곡 '웰컴 투 마이 월드'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며 목소리를 드러낸 바 있다. 이 가운데 본격적인 데뷔를 앞두고 에스파의 콘서트에서 스크린을 통해 깜짝 등장한 나이비스는 노래와 퍼포먼스를 소화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SM과 함께 국내 대형 기획사로 손꼽히는 하이브도 최근 첫 버추얼 걸그룹을 론칭했다. 하이브의 자회사 수퍼톤은 지난 6월 4인조 버추얼 걸그룹 신디에잇을 선보였다. 만화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2D 캐릭터로 구현된 신디에잇은 데뷔 싱글 'MVP'를 발매하고 본격적인 활동 포문을 열었다. 이들은 론칭 당시 기존 K팝 가수들과 활동명 및 콘셉트 유사 논란이 불거지며 홍역을 치렀으며, 기존 하이브 산하 아티스트에 비해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으나 대형 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하이브가 모회사인 만큼 아직까지는 향후 행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 중이다.
최근 국내 엔터 업계에 도전장을 내민 버추얼 아티스트는 비단 나이비스와 에스파 뿐이 아니다. 버추얼 걸그룹 메이브·이세계아이돌·이터니티 등을 비롯해 모델·인플루언서 등으로 이름을 알린 오로지·한유아·로지·이솔 등 현재 국내에서는 상당수의 버추얼 아티스트들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전 세계적인 AI 기술의 발달 속 데뷔 '붐'을 맞이하며 연예계에 새 가능성을 제시했다. 가상인간의 연예계 데뷔에 유의미한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당시 코로나19 전파 위험성이 높아지면서 기존 아티스트들의 활동 폭이 눈에 띄게 제약된 상황 속,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현실 아티스트보다 합리적인 단가, 낮은 리스크로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지닌 버추얼 아티스트들은 활동에 날개를 달았다. 이전까지 국내 연예계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가상인간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 역시 가상인간들의 잇따른 데뷔에 발판이 됐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고, 신선함으로 승부수를 던졌던 가상인간에 대한 대중적 흥미 역시 눈에 띄게 낮아지면서 가파른 데뷔가 이루어졌던 시기에 비해 버추얼 아티스트 시장은 다소 침체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 가운데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가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며 버추얼 아티스트 시장은 다시 한 번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플레이브가 거둔 성과는 실로 놀라운 수준이다. 첫 싱글 초동 판매량 7만5,000여 장을 기록하며 출발한 이들은 데뷔 1년여 만인 지난 2월 발매한 미니 2집 '아스테룸: 134-1'으로 초동 57만여 장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입증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MBC '쇼! 음악중심'에서 쟁쟁한 그룹들을 제치고 1위를 꿰차는가 하면, 서울 송파구 올림픽홀에서 개최한 첫 팬콘서트를 매진시키고 각종 출연 행사들에서는 숱한 팬들을 동원하며 현실 그룹들 못지 않은 화력을 보여줬다. 최근 하이브 재팬과 협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예고한 플레이브는 오는 10월 잠실실내체육관 입성까지 앞두고 있다. 국내 버추얼 아티스트 시장에서는 단연 압도적인 기세다.
하지만 버추얼 아티스트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진 지금, 플레이브를 제외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할 만한 인물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는 현재 국내 버추얼 아티스트 시장의 한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제작사의 입장에서 버추얼 아티스트는 실제 연습생을 육성해 데뷔시키기까지 필요한 비용적·심리적 부담이 적고, 데뷔 이후 발생 가능한 리스크에서 자유로우며 국내를 비롯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서 성과를 거둘 경우 기대되는 수익이 실존하는 스타들에 비해 훨씬 높다는 이점이 있지만, 이를 위해선 대중의 심리적 허들을 넘어 팬덤을 구축해야 한다는 큰 숙제가 존재한다. 성공 확률은 높지 않지만 플레이브처럼 성공 궤도에 오르기만 한다면 메리트가 확실한 탓에 대형 기획사에서도 버추얼 아티스트의 성공 사례를 만들기 위한 도전을 거듭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대중은 버추얼 아티스트를 일부 팬덤이 영위하는 '하위 문화'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만큼 팬덤 구축까지의 벽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가운데 자본력과 시장 노하우를 갖춘 대형 기획사를 중심으로 신인 버추얼 아티스트들이 대거 출격을 예고하면서, 과연 이들의 등장이 국내 버추얼 아티스트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지에 업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의 성공을 위한 핵심은 결국 버추얼 아티스트에 '휴머니즘'을 어떤 방식으로 녹여내냐에 있다. 실존하는 아티스트들 못지 않게 자연스러운 움직임 등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진화 역시 중요하지만, 결국 이를 넘어 대중의 마음을 관통하는 것은 '휴머니즘'에 있다는 것이다. 플레이브를 탄생시킨 블래스트의 이성구 대표는 "과연 휴머니즘이 없는 버추얼 아티스트가 팬들에게 매력적인 IP가 될 것인가"라는 의문을 던졌다. 이 대표는 "기술은 복잡하지만 그 안에 있는 내용은 진솔해서 '사람냄새'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플레이브를 준비했다. 그게 플레이브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이라 본다"라고 말했다.
업계 역시 이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AI 기술력으로 대중에게 차별점을 각인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차별화 된 콘텐츠와 대중과의 적극적인 소통, 실존하는 아티스트들 못지 않은 실력이나 확실한 강점이 갖춰져야 쏟아지는 버추얼 아티스트 시장에서 플레이브 못지 않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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