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기 맞추려 비숙련공 대거 투입" 31명 사상 아리셀 참사, 결국 '인재'(종합)
납품 차질에 주요 공정 비숙련공 투입…불량품 나와도 '나몰라라'
[화성=뉴시스] 양효원 기자 = 31명 사상자가 발생한 화성 리튬배터리 공장 화재는 업무상 과실과 안전관리 미흡이 만들어 낸 '인재(人災)'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종민 경기남부경찰청 화성서부 화재 사건 수사본부장은 23일 브리핑을 열고 "이번 사고는 지연된 납품 일정을 맞추기 위한 무리한 제조공정 가동 결정에 따른 비숙련공 대거 투입과 불량률 급증 미조치, 발열 전지 선별작업 중단 등이 원인이다"며 "또 비상구 설치 규정 미이행 등 소방 안전과 관련한 총체적 부실이 피해를 키웠다"고 말했다.
아리셀은 생산 목표 달성을 위해 지난 5월 이후 인력공급업체 메이셀로부터 근로자를 다수 받았다. 이들은 충분한 교육 없이 주요 제조공정에 투입됐고, 이는 불량률 급증으로 이어졌다.
불량 리튬배터리는 결국 사고 원인이 됐다.
화재 장소의 비상구 등 소방시설 역시 문제 투성이였다.
화재가 발생한 3동 2층(리튬배터리 완제품 검수장)은 모두 3개의 출입문을 통과해야만 비상구에 도달하는 구조다. 이 가운데 일부 비상구 문은 피난 방향이 아닌 발화부로 열렸다.
또 비상구로 연결되는 대피로에는 전지트레이를 적치하는 등 장애물도 많아 다수 피해자가 발생하는 원인이 됐다.
◇주요 공정에 비숙련공 투입
아리셀은 2024년 1월부터 방위사업청과 34억원 상당 리튬배터리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납품 일정은 2월(8만3724개), 4월(8만3733개), 6월(6만9280개), 8월(6만9292개) 등이다.
아리셀은 2월분은 정상 납품했으나 4월 납품을 위한 국방기술품질원 품질검사에서 국방규격 미달 판정을 받았다. 납품은 중단됐고 재생산에 착수했으나 5월부터 매일 70만원 상당 지체상금이 부과됐다. 지체상금은 화재 발생일인 6월24일 기준 3800만원에 달했다.
이러한 상황 속 6월분 납기가 도래하자 아리셀은 5월10일 '하루 5000개 생산'이라는 무리한 목표를 설정했다.
납품 일정을 맞추기 위해 결정한 무리한 제조 공정 가동은 메이셀로부터 신규 근로자 53명을 받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충분한 교육 없이 주요 제조 공정에 투입됐다.
이들이 투입된 공정은 메쉬 절단과 라미네이션, 와인딩, 시팅 등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리튬배터리 내외부 단락 원인(폭발)이 될 수 있는 주요 작업이었다.
비숙련공이 투입된 뒤 아리셀 리튬배터리 불량률은 3~4월 평균 2.2% 수준이던 게 5월 3.3%, 6월 6.5% 수준으로 급증했다.
시팅 공정 과정에서 케이스가 찌그러지거나 핀홀(실구멍)이 생기는 등 기존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불량품도 나왔다.
아리셀은 불량률이 급증하고 기존에 없던 불량품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근본적 해결책을 찾지 않았다. 대신 케이스를 우레탄 망치로 억지 결합하거나 핀홀을 재용접해 양품화하는 생산을 강행했다.
그 결과 5월16일 리튬배터리 발열 현상이 일어났다. 원인은 미세단락으로 추정됐고, 아리셀은 정상 전지와 분리했다.
그러나 아리셀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별도 안전성 검증 없이 발열이 일어나는 배터리 선별 작업을 중단했다. 분리해 보관하던 발열배터리도 양품화했다.
결국 6월22일 마지막 작업 단계인 전해액 주입이 끝난 발열배터리 1개가 폭발했다. 아리셀은 원인 분석이나 적정한 조치 없이 생산라인을 계속 가동했고, 폭발 배터리와 같은 시점에 전해액을 주입한 배터리들은 24일 오전 9시19분 사고 장소로 옮겨졌다. 이후 1시간여 만인 같은 날 오전 10시30분께 31명 사상자를 낸 폭발 화재가 일어났다.
◇비상구는 어디에…안전 체계 총체적 난국
불량 배터리를 양산해 발생한 폭발로 31명 사상자가 나왔다. 대규모 피해자가 발생한 원인으로는 상시 사용 불가 비상구와 안전교육 미비가 지적됐다.
사고가 난 곳은 출입구 1곳과 비상구 1곳이 있었다.
출입구는 불이 난 곳 바로 뒤에 있어 대피가 불가능 했다. 작업자들은 비상구로 나와야 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상구 존재를 알지 못했다.
게다가 비상구는 3개의 출입문을 통과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데, 이 출입문을 열기 위해서는 정규직만이 가진 '아이디'가 필요했다.
화재 당시 현장에는 '37초'의 골든타임이 있었다. 폭발이 일어나고 연기로 뒤덮이기 전 37초 안에 대피했다면, 23명은 생존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들은 출입문, 비상구와 반대편 건물 구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자들이 발견된 곳에서 출입문까지는 23m, 비상구까지는 60m였다.
경찰 수사 결과 골든타임 내 '대피'를 유도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과 아이디 유무 문제가 드러났다.
화재 직후 대피한 비정규직 노동자 3명은 근처에 있던 정규직이 비상구로 향하는 문을 열면서 함께 대피했다. 나머지 정규직 1명은 발화 이후 출입문으로 나갔다. "대피 하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직사각형 모양 사무실은 오른쪽 끝 문 2개를 통과하면 비상구가, 왼쪽 끝에는 출입구가 있는 형태다. 사무실 중간에는 가벽이 세워져 있다.
출입문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문이고, 비상구는 아이디를 필요로하는 2개의 문을 지나야 한다.
리튬배터리 위험성과 대피 필요성, 비상구 존재를 몰랐던 비정규직 근로자 23명은 발화가 시작된 출입문 바로 앞에서 점점 멀어져 반대편으로 향했다. 이때 오른쪽으로 대피했다면 비상구가 있었지만, 가벽이 시선을 차단했다. 이들은 아이디도 없었다.
누구나 언제든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비상구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부에 따라 문을 닫아버린 셈이다.
아리셀은 인력 공급 업체를 통한 근로자 채용과 작업 내용 변경마다 진행해야 할 사고 발생 시 긴급조치와 대피요령에 대해 교육하지 않았다. 또 불이 난 3동 건물은 2급 소방안전관리 대상이었지만, 계획서를 작성하거나 훈련도 전무했다.
◇인재(人災)가 만든 대형 사망 사고
아리셀은 방위산업부에 34억원 상당 배터리를 납품하기 위해 국방기술품질원을 속이는 방법을 썼다.
국기원 검사 과정에서 검사용 시료를 바꿔치기하거나 시험 데이터를 조작하는 방법이었다.
국기원은 지난 4월 검사자가 미리 선정해 봉인한 '샘플 시료전지'를 아리셀 관계자들이 별도 제작한 '수검용 전지'로 몰래 바꾸는 모습을 폐쇄회로(CC)TV에서 포착했다.
수사 결과 아리셀은 2021년 최초 군납 물량 수검부터 '수검용 전지'를 별도 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용량검사 통과를 위해 시료를 바꿔치기하고 조작된 데이터를 활용해 검사를 통과한 뒤 군에 납품했다.
아리셀이 이렇게 납품한 배터리 물량은 2021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47억원 상당에 달한다.
이러한 업무방해 범행은 박중언 아리셀 총괄 본부장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 오랜 기간 다수 관계자가 공모한 조직적 범행이었다.
결국 아리셀의 업무방해 행위는 들통났고, 이는 납품 불가로 이어졌다. 납품 불가는 무리한 생산 공정 강행 결정을 불러왔고 비숙련공이 투입된 공정은 불량품을 생산해 대규모 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됐다.
경찰과 노동부는 6월24일 각각 수사본부를 꾸려 압수수색과 피의자 소환 등 수사를 벌여왔다.
현재까지 경찰에 입건된 관계자는 박중언 아리셀 본부장을 비롯한 18명(업무상과실치사 6명·업무방해 11명·건축법 위반 1명)이다.
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박순관 대표와 박 본부장, 메이셀 대표자 3명을 입건했다.
경찰과 노동부는 이날 박 대표와 박 본부장 등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종민 수사본부장은 "화재 발생 원인을 확인, 책임 관계자를 입건하고 책임이 중한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며 "화재 사고 보강 수사와 함께 장기간 조직적으로 이뤄진 군납전지 납품 관련 업무방해 사건에 대해 집중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y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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